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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Dec 01. 2023

2. 내 귀는 망가졌다

현재 진행형인 나의 소음 지옥.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심장이 발치에 떨어질 때마다 '이것도 소재로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살만 하지 않을까 싶어,


살려고 시작하는 소음 일지.




<*>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 우퍼 성능이 아주 좋은 스피커를 사용하는 것 같다. 

오후 4시가 지나면 저녁까지 반복적인 베이스 리듬이 느껴진다. 집중이 안 된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밤 12시 15분. 자정이 넘은 시각.


위에서 너무 쿵쿵거려서 도저히 침대에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이 시간에 연락을 할 수도 없고, 너무 화가 나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쩔 줄 몰라하다가 아파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이제는 윗집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나 싶었던 4주 차의 어느 날. 갑자기 드릴과 망치 소리가 시작됐다. 엄청난 발망치 소리까지. 참다못해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피신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윗집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신고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며칠까지였나?' 문의했다. 10월 24일까지였단다.


'아.. 근데 지금 한 달이 지났는데, 오늘도 공사 소리가 나서 저는 카페에 나왔거든요.'

'(황당하다는 목소리) 네? 아, 정말요?'

'제가 재택근무를 하는지라 한 달을 생으로 공사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한 달이 지나니까 이제 좀 힘들어서요.'

'네, 제가 확인해 볼게요.'


잠시 후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다. 윗집은 아직 입주 전이란다.


어라? 그럼 저녁에 내가 들었던 그 모든 발망치 소리와 아이 뛰는 소리는 대체 뭐지????? 낮에는 작업하시는 분들의 발망치와 진짜 망치 소리가 들렸고, 저녁에는 성인이 걷는 소리와 아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윗집이 들어온 줄 알았다.


바닥 공사에 문제가 생겨서 고치느라 공사가 길어졌다고. 실제 이사 오는 건 12월이란다. 아니, 그러면 그동안 내가 저녁마다 들었던 소리는 윗집이 아니라, 윗윗집이었다는 말인가?????





<*>

공사 소리는 멎었다. 그러니 이제 저녁에만 들리던 성인과 아동의 발망치 소리가 너무 잘 들렸다. 아니, 이게 진짜 두 개 층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이렇게 잘 들릴 일인가? 아이가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듯한 천둥 같은 쿵! 소리가 들리는데. 이게 진짜 바로 위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가?





<2023년 11월 17일, 금요일>

밤 11시를 넘긴 시각.


우퍼 성능 좋은 스피커를 쓰는 집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다. 비트가 반복되는 걸 들으니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는 아니다. 이건 도대체 위인지 아래인지도 알 수가 없어서, 그리고 시간도 늦었기 때문에 역시 아파트 게시판에 정중하게 글을 올렸다. 배려를 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고.


범인에 해당하는 세대의 구성원이 이 게시판을 읽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뭐,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고. 제발 볼륨 좀 줄여달라고 애원해야 할 대상이 어디인지조차 몰라, 일단 글을 올렸다.





이제는 내 심장에서 나는 둥둥 소리까지 어디선가 나는 우퍼 음처럼 들렸다. 심지어는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 큰 소리로 플레이하는 광고 속 베이스 음조차도 귀에 거슬렸다. 영화에도 오롯이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귀는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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