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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Dec 03. 2023

3. 안녕, 나의 안식처

현재 진행형인 나의 소음 지옥.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심장이 발치에 떨어질 때마다 '이것도 소재로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살만 하지 않을까 싶어,


살려고 시작하는 소음 일지.




<2023년 11월 18일, 토요일>

생활 소음은 어느 정도 참고 감안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충분히 알고 있고 참고 있다.


주말이니 모든 가족 구성원이 집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절대 조용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가만히 앉아 있을 리 없으니 뛰는 소리가 들릴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참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세 시간이 넘도록 걷고 뛰어다니는 건 정말 너무 하지 않은가.


심지어 발로 바닥을 찍어 가면서. 저건 절대 슬리퍼를 신고 걷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 가족도 집에서 슬리퍼 신고 생활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발망치 소리가 크게 들릴 것 같아서 아랫집을 위해 신고 산다. 의자에도 모두 양말을 씌웠고, 무언가를 들었다 놓을 때도 신경 쓴다. 그런데... 아마도 윗윗집으로 추정되는 저 댁은 지금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쿵쿵거리면서 걷는 건 물론, 가만있다가 아이가 우다다다 뛰지를 않나, 의자인지 어떤 가구를 드르륵 끌지를 않나, 문을 부서져라 있는 힘껏 쾅! 닫지를 않나.


간헐적으로 들리면 참고 산다. 그런데 매일, 몇 시간씩 반복되니 정말 미칠 것 같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한 달 동안 공사 소음을 듣고 사느라 귀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터라, 크고 작고를 떠나 오랜 시간 지속되는 소음이 너무 힘들다.


'아파트 살면 그 정도는 참고 살아야지.'


참고 살고 있다. 하지만 저 소리와 진동이 몇 시간 동안 들린다고 한 번만 상상해 보라. 심지어 이때 나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를 보고 있었다. 그 시끄러운 영화를 뚫고 들렸다는 뜻이다.


덕분에 남편과 마이너 하게 다투기까지 했다. 다툰 것까지는 아니지만, 지금껏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우리인데. 그 순간 나 자신이 바늘이 된 것 같았다.


'생활 소음 정도는 앞으로도 계속 들릴 텐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냐)'

'경비실 통해서 그 소리가 아래아랫집인 우리 집까지 들린다, 정도는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냐?!'

'...'


그리고 잠시 후,


쿵쾅쾅쾅쾅


남편도 인정했다. 그의 귀까지 트이게 만든 것 같아 좀 미안했지만, 이건 안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귀가 트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경비실에 해당 댁에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나는 몇 주 동안 이 고된 환경 속에서 살면서 이런 상황이 닥치면 이런 말을 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말을 해야겠다는 시뮬레이션을 머리에서 계속 돌려왔다. 경비실을 통해 '방금 이런저런 소리가 들렸는데, 그 댁이 맞으시냐? 조금만 주의해 주시면 좋겠다. 우리 윗집은 아직 입주 전이라 아마 그 댁이신 것 같아 연락드렸다. 만약 아니면 죄송하다.' 경비 아저씨께서 잘 기억했다가 전달할 수 있게끔 기분 나쁘지 않게,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준비해 놨었는데.


함께 열이 받은 남편은 본인이 말하겠다며 경비 아저씨에게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아닌가. 장황하게 감정적으로 설명하면 경비 아저씨 입장에서는 뭐라고 전달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그리고 결국은 이렇게 밖에 연락이 가지 않을 거다. '아래아랫집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발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네요.' 물론 이게 핵심이다. 그러나 윗윗집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거다. 아니, 바로 아랫집도 아니고 그 아랫집에서 발소리 들린다고 연락이 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거다.


겉으로는 한숨을 쉬지 못하고. 일단 연락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우리 둘은 바람을 쐬러 나갔다.


집은 편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데, 점점 괴로운 곳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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