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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Dec 06. 2023

4. 집순이에게서 집을 빼앗으면

현재 진행형인 나의 소음 지옥.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심장이 발치에 떨어질 때마다 '이것도 소재로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살만 하지 않을까 싶어,


살려고 시작하는 소음 일지.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아침부터 엄청난 발망치 소리와 함께 가구 같은 물건을 드르륵 끄는 천둥 같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뭐야, 또.


지난 주로 공사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오전 내내 작업하시는 듯한 분들의 발소리와 육중한 물건을 끄는 소리, 망치 소리, 간헐적인 드릴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가라앉길래 오늘의 작업은 이걸로 끝인가 보다, 싶었는데. 웬걸, 5시 조금 전부터 갑자기 집 전체가 우우우우우웅- 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소리인데. 집 전체가 진동하니 진심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진동하는 수조에 갇힌 물고기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건 윗집인가? 아랫집인가? 알 수 조차 없어서 30분 정도를 참다가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 봤다. 현관 앞에 서니 문을 뚫고 엄청난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아, 윗집이구나.


벨을 눌러도 안 나오길래 한 번 더 눌렀더니 작업자분이 나오셨다, 죄송하다며. 지금 상판 작업을 하고 있다고. 아마 그라인더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귀마개가 필요할 정도의 소음이 안에서 들려왔다. 30분은 더 해야 한단다. 하...




<2023년 11월 25일, 토요일>

오후에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천둥 같은 소리가 천장에서 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끊이지 않고 들리는 쿵쾅거림에 윗집에 인테리어 작업자가 또 오셨나 싶었다. 남편이 걱정되어 거실에 나가 보니 역시나, 영화를 뚫고 온 집을 울리는 소리와 진동에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아마도 작업자분들이 또 온 것 같아 올라가겠다는 남편을 말리고 내가 올라갔다.


아, 집주인들이 오셨네. 이사 전에 짐을 미리 옮기러 온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대면에 당황해서 뭐라고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무척 열이 받아 있었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기들은 집에 처음 온 건데 갑자기 아랫집에서 소음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납득하기 힘들 것 같아 최대한 좋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쪽에서도 죄송하다고 하길래 주의 좀 부탁드린다 전하고 내려왔다.


윗윗집에서 들리던 발망치 소리는 애들 장난이었다.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발망치와 아이 뛰는 소리는,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코웃음 치며 바로 뚫고 귀로 들어왔다. 사람 여러 명이 쿵쿵거리며 걷는 소리, 아이 뛰는 소리가 거의 여섯 시간 동안 들려왔다. 그들은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오늘은 참자'며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있었고, 여기에 더해 거실에 있는 남편이 못 참고 쫓아 올라갈까 봐 거기까지 신경을 쓰고 있자니 에너지가 배로 소모됐다. 더욱이 이번에 들어온 작업이 너무 어려워 검색과 집중에 최대한의 에너지를 쏟아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그쪽은 전혀 안 되고 있어 더더욱 절망스러웠다.


저녁이 되자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서 남편에게 나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툭 치면 눈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았다.


오랜만인지 처음인지 모를 머리가 어찔할 정도의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몇 만년 전 수렵 채집하던 우리 조상의 뇌를 그대로 물려받은 점을 고려하면, 나는 지금 목전에 호랑이를 두고 있는 것과 같았다. 죽을 것만 같은 스트레스였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채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매 초, 매 순간이 끔찍했다. 더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저녁 9시. 나가는 길. 엘리베이터에 하필 타이밍 좋게 윗집 가족과 함께 탔다. 견디다 못해 집을 탈출하는 타이밍에 딱 마치고 가다니.


저녁을 먹으며 결국 참지 못하고 엉엉 울고 말았다. 남편은 죄가 없는데. 괜히 속상하게 만들어 너무 미안하다.


이제 집이 지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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