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인 나의 소음 지옥.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심장이 발치에 떨어질 때마다 '이것도 소재로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살만 하지 않을까 싶어,
살려고 시작하는 소음 일지.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밤을 꼴딱 새웠다.
거의 한 달 반을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신체적인 스트레스 반응이 만성화되어 가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느끼면 교감 신경이 활성화된다. 이때 우리 신체는 도망가거나 싸울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즉 투쟁-도피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여러 신체 반응을 유도한다.
우선 심박수를 높여 몸으로 더 많은 혈액을 보낸다. 그래야 다리 근육이 힘을 얻어 더 잘 도망갈 수 있고 팔이 힘을 얻어 더 잘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망을 가든 싸우든, 에너지를 여기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소화 등 현재로서는 불필요한 기능에 투입될 에너지도 근육으로 보낸다. 그래서 소화가 잘 안 된다.
이렇듯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나면 심박수가 올라가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고, 소화가 잘 안 되고, 두통이 생기는 등 여러 신체적 반응이 나타난다. 이는 포식자를 만나면 최대한 빨리 도망가야 했던 수렵채집 시절에는 필요했던 기능이었겠으나, 현대인들은 불편한 통화를 해야 하거나 길 가다 어깨를 부딪힌 사람과 신경전을 벌이는 등 치명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을 겪는다.
* * *
요즘의 나는 스트레스의 신체화 증상으로 인해 온몸이 아프고 삐그덕거리고 무기력하다.
- 가슴 두근거림/과민: 이제는 '쿵!' 하는 소리 한 번에 파블로브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한다. '또 시작되는 건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또 무슨 소리라도 날까 봐 두려움에 떨면서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한다. 조용할 때는 또 소리가 날까 봐 긴장 상태를 풀지 못하고, 소음이 들리면 스트레스와 분노로 인해 진정하지 못한다. 출처가 윗집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들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에 과도하게 예민해졌다.
그래서 나는 요즘 집을 고요한 상태로 두지 못한다. 음악이나 영상을 틀어 놓고 어떤 소리라도 나게 만들어야 한다. 고요한 상태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면 몸이 다시 반응할 걸 알기 때문에. 이미 몸은 긴장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 들어 보려는 발악이다.
- 통증: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목 왼쪽, 경동맥 지나가는 근처인 것 같은데, 그 부근이 아프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욱신욱신한 자극이다. 그리고 귀가 아프다. 물리적으로 아프다기보다는 심인성 증상인 것 같다. 고막이 괜히 아픈 느낌. 게다가 아무 소리가 안 나도 꼭 어디선가 둥둥하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든다.
- 불면증: 긴장 상태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한 달 반을 살다 보니 정말 정신병이 생길 것만 같다. 그리고 밤에 잠을 못 잔다. 하루 종일 그러고 있던 탓에 밤이 되어도 심장이 진정을 않는다. 싱잉볼 소리도 듣고, 스트레스밤으로 아로마 마사지를 하며 명상도 하는데, 전부 소용이 없다. '쿵!' 한 번이면 말짱 도루묵이다. 차라리 귀를 찔러 아무 소리도 못 들으면 좋겠다.
잠을 못 자니 피곤은 하고, 그런데 잠을 자지는 못하겠고. 낮에는 소음 때문에 낮잠을 잘 수도 없고. 심장이 벌렁거려 카페인을 더 마시지도 못하겠고. 예민할 대로 예민하지만, 죄 없는 남편에게 화풀이는 하기 싫어 어떻게든 감정을 누르고는 있는데. 그러려니 너무 힘들고, 속상하고, 슬프고, 우울하다.
그외에도 소화불량, 손발 떨림, 어지러움, 무기력함,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 * *
그래서 요 며칠은 그냥 툭 치면 눈물이 흐른다.
어제 엘리베이터 앞에서 들린 소리에 의하면 오늘도 짐 옮기러 올 것 같던데. 이사도 안 온 집이니 매트 같은 건 당연히 깔았을 리 없고. 어제 '소음이 좀 힘들다'라고 전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슬리퍼를 사 올 것 같지도 않다.
점심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조용하길래 '휴, 다행이다.' 하면서 얼른 일을 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4시가 지나자 다시 천둥 치는 듯한 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늘 외부 일정으로 남편이 집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저녁 9시, TV를 보며 남편과 나는 계속되는 이 발망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하며 꾸역꾸역 저녁을 먹었다. 둘이 서로 이 주제로 대화를 하지 않으려 어쩔 수 없이 귀로 들어오는 이 청각적 자극을 애써 무시하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난 이미 몇 시간 동안 참아대느라 명치가 아팠다. 역시나 밥을 몇 숟갈 뜨니 바로 신호가 왔다. '한 수저만 더 먹으면 너는 바로 체한다.'
10시쯤 되니 가더라. 나도 남의 사생활 따윈 알고 싶지 않다.
일을 끝내고 난 늦은 시각, 잠자리에 누우며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