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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Dec 14. 2023

6. 째깍, 째깍, 째깍

현재 진행형인 나의 소음 지옥.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심장이 발치에 떨어질 때마다 '이것도 소재로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살만 하지 않을까 싶어,


살려고 시작하는 소음 일지.




<2023년 11월 27일, 월요일>

평일이라 오늘은 아마 짐을 두러 오지는 않을 것 같고.


그 외 윗윗집에서 들리던 발망치 소리만 들린다. 지난 주말, 천둥 같은 소리를 겪고 나니 이제 저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들린다. 오후 내내 피아노 소리, 개 짖는 소리, 발망치 소리 등등이 들려온다. 하, 그런데 이 정도만 돼도 들으면서 참고 살 수 있다.


늦은 오후, 갑자기 어디선가 드릴 소리가 들린다. 이건 또 어느 집이야...




<2023년 11월 28일, 화요일>

1시 조금 전이었을까, 오전과는 다른 진동과 쿵쿵거림이 들린다. 아, 오늘도 왔구나...


나는 매일을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윗집이 이사 올 날만 디데이처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나흘 남았네, 이제 사흘 남았네, 아 며칠만 지나면 시작되겠구나 나의 새로운 지옥은.'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오늘은 엄마와 아이만 온 걸까. 다시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고 속이 안 좋아져서, 점심은 거르려다가 커피를 마시려면 뭐라도 욱여넣어야 할 것 같아 점심을 대충 때웠다. 그리고 견딜 수 없어 TV를 좀 큰 소리로 틀고 로봇청소기를 돌렸다. 이 소리들이 조금이라도 덮어주길 바라면서(그러나 진동은 절대 이런 소리로 덮이지 않는다).


매트 시공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설마 이미 한 건 아니겠지? 지금은 이게 제일 무섭다. 설마... 했는데도 저런 수준이면 그 댁도 업체에 사기 당한거다.




<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왜 그렇게 나약하게 구냐'라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매일 디데이를 세며 지내고 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른다. 한 번의 '쿵!' 소리에 심장이 발 밑까지 떨어진다는 걸. 조건반사적으로 불안감이 증폭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신체 반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 이 시간을 다시 견뎌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서 오는 절망감과 암울함 때문이라는 걸.


그런 불안과 두려움에 떨여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몸이 아프다.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하는데, 몸살 기운도 느껴지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우울했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엉엉 울었다. 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너무 억울해서. 슬프고, 또 앞날이 비관적이라서.




<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이사는 분명 내일이라고 했는데, 지난 주말부터 평일에도 거의 매일 오는 것 같다. 이사를 일주일은 하는 기분. 내일은 실제로 엄청난 소리가 들리겠지.


오늘은 오전에 잠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나가다, 점심이 지난 다음에는 조용해서 '이제 돌아가서 짐 싸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오후 4시 정도부터였나(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늦은 오후부터). 오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간헐적으로 아이 뛰는 소리도 들린다.


지난 사흘 동안 마음속에서 낙관과 비관이 치열하게 싸우느라 정신력은 고갈될 대로 고갈되었고, 나는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다. 회사 다닐 때 느끼던 번아웃과는 다르다. 완전히 팔 들어 올릴 힘조차도 사라진 느낌.


앞으로 계속 듣고 살아야 하는 소음과 진동인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 귀마개는 당연히 낄 거고, 어차피 듣고 살아야 할 거라면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 스스로에게의 낙관적 회유. 그리고,


그렇지만 뭐라도 소리가 한 번 들리면 어쩔 수 없이 가슴 부근이 홧홧해지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면서 손이 떨리는 건 자의로 막을 방법이 없어.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그런 소음과 진동을 들으며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속에서 분노가 치밀고 상대가 너무 미워져.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 비관적인 낙담.


이 둘이 하루에도 수백 번 머릿속에서 핑퐁을 한다.


오후 6시가 지났다. 어떻게든 집중해 마저 일을 끝내려 했는데, 떨리는 손이 가라앉지 않아 결국은 이렇게 또 기록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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