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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Jan 08. 2024

11. 주말이 두렵다

해가 바뀌어도 진행형인 소음 지옥.

마음을 다지며 버텨 보려 애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벅찰 때를 위한

계속해서 살아 나가기 위해 쓰는 소음 일지.




<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저녁이 되기 긴장되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떠려나. 어제와 비슷할까, 원래대로 돌아갈까. 중간 그 어디쯤일까.




<2023년 12월 14일, 목요일>

윗집은 11시 이후에는 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마 아이가 자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편지를 준 그날 밤부터 갑자기 12시 넘어서까지 무언가를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화요일 밤에는 새벽 1시 넘어 퇴근한 남편이 윗집의 불이 훤히 밝혀져 있는 걸 직접 목격했고, 나도 소리를 들었다. 어제도 분명 화장실과 거실을 오가며 정리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제 자기 전, 정소현 작가의 <가해자들>을 모두 읽었다. 아이가 소리를 낼 때마다 조마조마해한다는 부분에서 마음이 불편했다. 괜히 아이가 뛸 때마다 엉덩이를 때리며 혼낸다는 말을 들어가지고. 책을 덮고 나자 아이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고, 마치 내가 나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에 기분이 나빴다. 나도 고통받고 있는데.


그렇게 찝찝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는데, 천장에서 크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툭툭, 콩콩, 탁탁하는 소리가 났다. 한 시 넘어서까지 났던 것 같은데.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이사 오셔서 짐 정리하느라 어느 정도 소음이 날 건 감안하고 있다'라고 해서 이러는 건가? '그래? 그럼 짐 정리하는 소리나 들어 봐라' 하고 복수하는 건가?


본인도 힘들었다는데, 그래서 복수하는 건가. 너무 깊이 들어가 왜곡하지 않으려 해도, 자정이 넘어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게 딱 편지를 전달한 날부터였다는 게 무시되지가 않았다.


화장실에서 뭔가를 놓고 긁는 듯한 소리가 날 때마다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도 깊이 잠든 듯했다. 잠이 너무나도 중요한 내 남편의 잠을 방해하는 건 무엇이 되었든 용서할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불편한 마음에 바로 잠들지 못할 것 같아 유튜브를 좀 볼까, 하다가 그러면 또 4시까지 잠들지 못하리라는 걸 알아 귀마개와 안대를 끼고 누웠다. '복수'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한 번 떠오른 뒤로는 그것을 지울 수가 없어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정말 그런 거면 어쩌지? 한 일주일 정도 들어보고 계속되면 또 얘기를 해야 하나? 이제 웬만하면 내가 참고 따로 얘기는 하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 이삿짐 정리라면 언젠간 끝나겠지? 한 달, 두 달 동안 하지는 않을 거 아냐. 아이도 자는데 그렇게 오래도록 밤에 시끄럽게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동안 방해받는 우리의 취침 시간은? 위가 아니라 아랫집인가? 오늘 유독 뛰는 소리가 많이 들리던데 하... 정말 모르겠다. 머리가 너무 혼란스럽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는 와중에, 귀마개를 빼고 여전히 소리가 들리는지, 남편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콩콩대는 소리가 들리면 정말 밤을 새우게 될 것 같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올해는 보름이 남았다.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아이가 쉬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아침에도 뛰는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소파에 앉아서 10분 넘게 끊임없이 뛰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다시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못 참다가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몇 분 후, 다시 참다못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적당히 하라고오오오옥!!' 그대로였다. 아마 이 정도면 들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다시 몇 분이 지난 후, 또 참지 못하고 스트레칭 막대기로 천장을 두드렸다. 사실 천장은 합판일 거라 아무리 때려도 들리지 않겠지만. 일단 내 감정을 어떻게든 하는 게 중요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차올라 어쩌지를 못하다가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불가능했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손님이 왔다고 생각하자. 손님이 왔을 수도 있잖아. 아이 친구들이 왔나?

그래, 엄마가 어디 갔나 보지. 아빠 혼자 애를 보느라 제지시키지 않는 건가?

당신은 '괜히 이사 왔나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했지. 나는 죽을까도 생각했어.

일희일비하지 말자. 쇼펜하우어를 생각해. 조용하면 그냥 조용한 거다, 시끄러우면 시끄러운 거다. 이렇게만 생각하자. 어디 갔나 보다, 한동안은 조용하겠지,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자.

역시 사람에게는 기대를 하는 게 아니었어. 사람은 믿으면 안 되는데. 기대를 한 탓에 실망을 한 거라 지금 나는 더 화가 나는 거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집에서 분노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소리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당장 끝나지 않을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적응할 수 있을까. 내 귀는 이미 망가졌는데.


한 시간 정도 집 청소를 하고 나니 남편이 밖에서 돌아왔다. 소음은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 참지 못하고 막대기로 천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는 말에 남편은 고요히,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분노했다. 그걸 또 진정시키려 나는 열심히 괜찮아진 척을 했고. 같이 화를 내주는 건 너무 고맙지만, 그까지 스트레스받게 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미안해'라는 말이 나왔다. 속상했다. 사실 정말 힘든 건 난데, 나는 왜 이 상황에서도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 미안한 건 맞지만.


오후 세 시 반. 강도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간헐적으로, 지속적으로 발소리가 들려온다. 아까는 정말 통제할 사람이 집에 없었던 걸까. 이유야 어쨌든, 나는 고통받았고 피해를 입었다. 본인들도 직접 겪어보면 좋겠다, 부디. 제발. 직접 겪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래야 '저희도 미소음은 들려요' 따위의 말은 하지 못할 테니까.


통제불능으로 온 감각이 천장에 집중된 채 분노했다 식혔다를 반복하며 주말을 보냈다.

내 주말을 이렇게 망치는 까닭이 뭔가요.

이유 따윈 없겠죠.

왜 주말이 오는 걸 두렵게 만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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