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어도 진행형인 소음 지옥.
마음을 다지며 버텨 보려 애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벅찰 때를 위한
계속해서 살아 나가기 위해 쓰는 소음 일지.
<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어제저녁, 4시간을 넘게 시달리느라 오늘까지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 저녁마다 이렇게 어떻게 사냐.
낮에도 사부작사부작 뭘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밖으로 나갔다. 카페로 향하는 길, 충동적으로 근처 미용실로 향해 머리를 염색했다. 무려 머리 전체를 탈색했다. 나는 멘탈 컨디션이 떨어지면 머리카락에 손을 대는 경향을 보이곤 하는데, 적당히 꿀꿀하면 앞머리를 자르고, 심각한 수준이면 긴 머리를 숏컷으로 치는 수준의 커트를 하거나 과감하게 염색을 하는 등, 티가 많이 나는 변화를 꾀한다. 태어나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전체 탈색을 했다는 부분에서 지금 나의 스트레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어제저녁에 결심했다. 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위층에 전달하기로. 두 장이나 자필로 열심히 써 선물과 함께 문 앞에 놓고 왔다. 30분쯤 지났을까, 위층 사람이 내려왔다. 미안해서 선물은 못 받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쪽도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재택근무를 한다는 말에 나름 아이를 아침에 내보내 저녁에 들어오게 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집에는 이미 매트가 깔려 있고 어른들도 슬리퍼를 신는단다. 주말에는 피해를 주기 싫어 밖에 나가려 하는데, 일요일에는 점심을 먹고 들어오자마자 경비실에서 연락을 받아 솔직히 화가 났었단다. 심적으로 힘들었단다. 아이가 어려서 정말 갑자기 뛰고는 하는데, 궁둥이도 때리면서(애를 때린다고 하면 내가 뭐라고 하냐..) 앉혀 놓으려 하는데 잘 안 된다고.
이해는 한다. 나도 이들이 실제 이사를 오기 전부터 쫓아 올라간 양상이 되어 있던 게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읽은 수많은 사례와는 달리 나름 노력하려는 것 같아 편지 쓰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과장도 없이, 정말 맨바닥에서 뛰고 걷는 듯 우렁찬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나는 아직 매트를 안 깐 줄 알았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원하면 들어와서 직접 들어보셔도 된다고. 그리고 이사 온 지 일주일 밖에 안 되어서 억울하실 수 있지만, 나는 두 달째라고.
상대방은 필요한 조치를 어느 정도 취해 놓았고, 그럼에도 내가 고통받고 있는 것(남편도 귀가 망가져 침대에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단다) 역시 사실이기 때문에. 누가 더 이기적이라거나 잘못했다거나, 할 게 없었다. 우리도 좀 더 적응하려 노력할 테니, 더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나는 어떤 상황이든 사전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곤 한다(과해서 문제지만). 상상 속에서 나는 절대 웃지 않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냥 좋게 좋게 웃으며 대화했다. 인간성을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천국에 가까울 정도로 고요했다. 정말 간헐적으로 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 정도만 돼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말인즉슨, 이게 가능하다는 거잖아... 통제 가능하다는 거잖아. 그동안 제지하지 않았다는 뜻이잖아.
선물이 반려되어 돌아온 건 좀 기분이 나빴지만, 너무 깊이 왜곡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정도의 날만 이어져도 정말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