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 Aug 07. 2024

18. 오랜만의 층간 소음에 대한 단상

사람의 정신이란 참 약하다.


아니, 수정해야겠다. '내' 정신이란 것은 참 약하다. 평화는 이리도 쉽게 흔들리고 깨어지며 부서진다.


한동안 견딜만 했던 윗집의 소음이 심해진 지 어언 일주일. 그간 나는 다시 필요시 약을 먹었고, 신경과에서 받아 온 진정제를 먹었으며,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고, 살아가야겠다는 의욕을 잃었다.


혹자는 '그게 그렇게까지 될 일인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나도 같은 것을 묻고 싶다. 정말, 이렇게까지 동요할 일인가?


단발적인 사건 때문에 동요하는 것이 아니다. 뇌에, 정신에, 트라우마가 남았기 때문이다. 유사시 저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반응을 끌어내는, 자동반사적인 새로운 뉴런 연결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각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우 3~4일의 쉼 없는 쿵쿵거림만으로도 반 년 전으로 쉽사리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허무했다. 나의 몸은 변했고, 이제 어느 곳에서든 비슷한 류의 소리를 들으면 나의 몸과 정신은 반응한다.


이사를 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디를 가야 살 수 있는가? 어디를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내게 이런 상처를 남긴 그들을 증오한다. 저주한다. 당신들은 '아니, 애가 조금 뛰고 사람이 좀 걷는 것 가지고 왜 그렇게 지랄이야'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소리를 지른 후 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진 채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앉기만 하면 졸기 바빴다. 절망했다. 어느 곳에 가서도 앞으로 나는 예전처럼 살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과연 나의 '집'은 어디인가.


즐거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사진: Unsplash의 Hoach Le Dinh


매거진의 이전글 17. 109번에 전화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