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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Jan 31. 2024

17. 109번에 전화를 했다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주말 내내 온몸에 분노가 가득했다.

화에 잠식당한 채로 24시간을 보냈다. 친정에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틀 내내 멍했다. 옆에서 사람이 뭐라고 해도 '응? 뭐라고?' 되묻기 일쑤였고, 유튜브에서 보복소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집착하듯이 읽으면서 '해결이 되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된다' '이건 범죄다' 등등 다양한 의견들을 읽으며 내 머리를 더 헤집어 놓았다. 자발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경미한 트라우마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잠시 휴게소에 내려 남편과 함께 담배를 폈다. 한참 끊었던 담배를 최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정신과 약에, 술에, 담배에. 몸도 망가지고 있다.




<2024년 1월 15일, 월요일>

아직도 나는 화에 잠식당해 있다.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조절 장애일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오전에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가 문득 누군가를 증오하고 저주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내 모습에 눈물이 났다.


'이게 사는 거야?!'


라고 외치며 울었고, 다시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신경과에서 받은 진정제를 먹은 상태였는데도 진정되지 않아 정신과에서 받은 필요시 약을 먹었다. 이대로 누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집안일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희망을 갖지 않으려 했다. 기대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조용한 저녁을 보낸 뒤 나는 무의식 중에 또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한심하다.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니.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오늘은 아이가 집에 있었고 아침부터 열심히 뛰더니 아줌마는 한 시간도 넘게 청소를 했다. 힘 없이 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내 입에서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욕지거리와 저주의 말이 흘러나왔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선생님께 하소연을 했고, 이렇게 매주 리셋되는 상황에 절망감은 더 커졌다. 나름 큰돈 들여 심리상담을 받고 있고, 벌써 전체 과정의 1/3 정도를 진행했는데. 매주 힘든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 보니까 기저에 깔린 정신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건들지도 못하고 있다. 좀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대화를 하고 싶은데.


정신과에서는 약을 증량해 줬다. 매일 술을 마시느라 자기 전 약은 먹지 못했다는 말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겠냐고 선생님이 물었다.


'그냥.. 매일 감정이 바닥 그 아래에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올려보자 싶은 마음으로, 과음은 아닌데 매일 습관처럼 마시게 돼요.'


그 와중에 일적인 부분에서 희소식이 하나 날아왔다. 기뻐하는 법도 잊은 듯한 나는 그저 얼떨떨하게 '어... 이게 왜 됐지?'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우리에게 찾아온 좋은 소식이니 축하하기 위해서 외식을 했다. 하지만 식사 내내 우리는 윗집, 현재 우리의 상황, 내 상태, 지금 시도 가능한 잠재적인 솔루션에 관한 이야기만 나눴다. 세상에 좋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따위 이야기로 우리의 소중한 저녁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속에서 다시 분노가 끓어올랐다.


저녁 11시, 집에 들어왔는데 아이는 열심히 뛰고 있었다. 잘 시간을 넘겨서도 뛰고 있었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안방 화장실 환풍구에 대고 욕을 섞어 소리를 질렀다. 거실 화장실에 있던 남편이 문을 살짝 열어 말렸다.


지친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금세 깊이 잠든 남편 옆에 멍하니 가만히 앉아 있다가 돌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제가 끔찍한 말을 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회개하겠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벌을 받게 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제 가족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얼마만에 하는 기도인지 모르겠다. 교회에 가지 않은 지는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울면서 기도했다. 그러다가 순간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나만 없다면, 나만 사라진다면 다들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방식이 덜 아플까. 덜 아픈 방법이 과연 있을까? 손목에서 맥이 뛰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약간의 공황 상태에 빠진 나는 서재로 가 문을 닫고 109번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안정적인 목소리로 '지금 선생님께서 많이 힘드신 것 같아요. 많이 우시네요. 어떤 일이 그렇게 힘드셨을까요?'라면서 조곤조곤 질문하셨다. 소리 죽여 우느라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청소년기에도 숨이 차 꺽꺽 대느라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울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술 마시고 자기 전 약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그동안은 안 먹었는데, 오늘은 자다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그냥 약을 먹어 버렸어요.'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제가 문제인 것 같아요. 오늘은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서 욕을 담아 소리를 질렀어요. 이거 때문에 우리 집이 피해를 입으면 어쩌죠? 보복 소음으로 돌아오면 어쩌죠? 그러면 제 남편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텐데. 제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서 남편도 너무 힘들어해요.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죄책감까지 느끼더라고요. 다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저만 사라지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장장 40분에 걸쳐서 상담사 선생님은 편안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셨다. 그런 질문들에 답을 하면서 마음이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이런 얘기 계속 들으시면 선생님도 힘드시죠?'

'선생님, 지금 제일 힘든 건 선생님이에요. 괜찮아요.'


이 말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되뇌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무얼 할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침대로 돌아가서 기도하고 누울 것 같아요. 아까 자기 전 약을 하나 먹기는 했는데, 하나 더 먹으면 안 되겠죠?'

'네, 안 돼요. 선생님, 우울증이시라면 꼭 금주하셔야 해요.'

'네, 아는데, 아는데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고 침대로 돌아왔다. 다시 기도를 드렸다.


'잘못한 일에 대한 벌은 받겠습니다. 그 벌을 달게 받고 또 내일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렇게 나는 여전히 소음과 함께 살고 있다.

소리에 공포감까지 생긴 듯, 최근에는 내 집에서 나는 소리에도 귀를 막고 오들오들 떨며 패닉에 빠진 적도 있었다.


지난 게시글은 다음 모바일 메인에 걸렸는지 갑자기 조회수가 폭증해, 두려운 마음에 잠시 숨겨 놓기도 했었다. 내 일로도 감정이 감당 안 되는데, 댓글에 이상한 말이라도 달리면 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국 어떻게든 살게 된다.

실질적으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우울증이나 명상과 관련한 책을 찾아 읽으며 어떻게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저들도 아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고마움도 느낀다. 하지만 포비아까지는 아니지만 소리에 대한, 그리고 그 소리가 촉발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이미 뇌에 각인되어 버린 나는 계속해서 불안장애와 싸우고 있고, 패닉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이성을 챙기려 애쓰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 그걸 브런치에 쓸 소재라고 생각하자. 그렇게라도 순간순간을 잘 넘겨 보자'라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알아주고 보살펴 주기 위해 시작했던 기록이었는데. 수천 명이 어쩌면 자극적이었을 수도 있는 제목을 클릭하고 들어와 읽으며 저마다의 입장에서 저마다의 생각을 했을 것을 떠올리니, 이건 단순 기록이라기보다는 내 한풀이, 하소연, 그리고 공감에의 구걸은 아니었을까 하는 지점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지만, 언젠가 다시 격화된 상황을 겪으며 '기록'과 '자기 위로'라는 핑계로 또 무언가를 쓸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이쯤에서 그만하련다. 나를 너무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 괴로움 속에서도 나는 내 삶을 근사하게 살아내야 한다.


그렇다. 괴로움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삶을 그냥도 아니고 근사하게 챙겨 살아나가야 한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어차피 인간의 삶 자체가 고통이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고, 그렇기에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에 닿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해한다. 물론 그의 논리에 따르면 불행을 없애기 위해서는 행복을 욕망하겠다는 욕망 자체도 느끼지 않는 통달의 경지에 올라야 하지만, 이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고통과 불행을 안고, 행복도 적당히 가끔 욕망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겠지.


말은 아주 청산유수다. 아직 제 마음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시소처럼, 음과 양처럼, 도파민 폭포 다음에는 고통의 폭포가 찾아오는 것처럼. 모든 것은 적당한 균형을 맞추며 돌아간다. 지난 수개월, 몸무게도 한참 빠졌을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지만. 그만큼 좋은 일도 찾아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일단 하루하루를 보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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