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하여 등록한 근대문화유산이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공간이 역사의 현장으로 인정받은 근대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미래의 중요 문화재로 남게 될 등록문화재를 찾아 근대의 시간 속으로 산책하며 글을 쓴다>
[양평 지평양조장(楊平 砥平釀造場)]
분류 국가등록문화재
분 류 등록문화재/기타/산업시설
수량/면적 1동/427.7㎡
지정(등록)일 2014-07-01
소 재 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 551-2
시 대 일제강점기
시골 마을의 작은 술도가로 시작한 지 90여 년.
대물림으로 막걸리 빚어 지평 마을을 술 익는 마을로 만든 양평 지평양조장.
맛있는 막걸리로 유명한 지평막걸리가 익어갔던 그곳이 역사가 되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의 근대문화유산이면서 영화 <건축학개론>과 아이유 화보 사진 촬영지로 유명해진 구둔역을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지평양조장 이정표. 이 이정표가 내 발길을 양평의 또 다른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인 지평양조장으로 이끌었다.
지평막걸리는 서울 경기 지역의 막걸리 애호가들에게 전통 막걸리 맛으로 정평이 나있다.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표를 가린 막걸리 시음 장면을 방영한 적이 있다. 이때 막걸리를 마신 출연자들이 '양평 지X막걸리'(방송이라 상표 일부를 가렸다)의 맛에 놀라는 화면을 보며, 양평 지역의 맛있는 막걸리 '지X막걸리'라면 지평막걸리일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평막걸리는 이미 양평 지역의 맛있는 막걸리로 정평이 났기 때문이다.
막걸리 애호가들은 이 양조장을 1930년에 지은 충청북도 진천의 덕산양조장과 함께, 막걸리를 빚는 최고의 건물로 꼽는다. 이곳에서 빚은 지평막걸리 한 잔 마시고 서로 느낀 술맛을 평하고, 또 한 잔 마시고는 막걸리를 빚어낸 100년 전통의 양조장 건물 이야기를 즐긴다. 장년층은 여기에 나이 들어가며 농익어가는 인생을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지평양조장 지평주조의 옛 양조장 건물. 현재는 이곳에서 술을 빚지 않고 뒤쪽에 보이는 현대식 공장에서 제조하고 있다.
2014년 7월 1일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94호로 지정된 지평양조장은 100년 가까이 술이 익어왔던 양평군 지평면에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1대 사장 이종환 씨가 세운 양조장 건물이다.
지평양조장의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94호 동판
전통주를 제조한 이 건물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막걸리 제조에 가장 알맞은 건축 구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건물 중심부를 위로 올려 창을 높이 둔 구조로, 환기를 잘 되게 하고 벽체와 천장에 왕겨를 채워 보온 효율을 올렸다고 한다. 또한 서까래 위에는 산자(서까래 위에서 기와를 잇기 위해 새끼로 엮은 것)를 엮지 않고 대자리 형식으로 짜고 외벽의 일부에 흙벽돌을 사용하여 막걸리 주조에 최적화한 건물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는 일제 강점기 한식 목구조에 일식 목구조를 접합해 대공간을 구성한 절충식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지평양조장은 당시 탁주 생산 공장으로서의 기능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6.25 전쟁 지평리 전투 당시 지평양조장 건물을 유엔군 프랑스 육군 사령부로 사용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한 표지석
지평양조장 앞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표지판 옆에 다른 표지석이 서 있다. 이 표지석은 또 하나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듯 보인다. 6.25 전쟁 때 지평리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이곳 양조장 건물을 유엔군 프랑스 육군 사령부로 사용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한 표지석이다. 여기에는 프랑스어, 한국어, 영어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 두었다.
- 자유를 위하여 -
1951년 2월 한국전 참전
유엔군 프랑스 육군의 전설
적인 몽클라르 장군께서
지평리 전투를 지휘하시는 동안
이곳을 사령부로 삼다
양조장 내부 모습(문화재청 자료)
시대마다 변해온 주류의 선호에 따라 경영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1925년 이종환 사장이 설립한 지평양조장 이후 현재까지 4대 사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1960년 2대 김교십 사장이 인수한 이후에는 1980년 3대 김동교 사장, 2010년 4대 김기환 사장으로 이어지며 김 씨 가문으로서 3대째 가업으로 자리잡는 동안 전통 제조기술로 빚은 전통주를 제조하여 한국 막걸리 명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평양조장 내부 전시관 모습(문화재청 자료)
말로만 듣던 지평막걸리가 익어가던 양조장에 왔지만 이곳에서는 더 이상 막걸리 빚는 모습이나 술 익어가는 소리와 냄새를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2006년 건물 뒤편에 새로운 현대식 공장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90여 년 동안 막걸리를 제조한 양조장으로서의 역할은 마감하고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매년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2018년 6월에는 춘천에 지평주조 제2공장을 준공하여 현대식 시설로 생산하고 있다. 실제 막걸리 맛의 변화는 없을지 몰라도 혀에서 느끼는 맛뿐만 아니라 지평막걸리 하면 생각나는 100년 된 옛 양조장 건물에서 빚어졌다는 그 감성까지 기억하는 애주가들에게는 아쉬움을 줄 것이다.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막걸리를 빚었던 지평양조장 건물은 이제 술 빚는 양조장의 의미에 더하여 막걸리와 막걸리 제조에 관한 모든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막걸리 박물관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양평군이 지난 7월 국비와 도비의 지원과 군비 등으로 지평 양조장을 1925년 창립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복원 후 이 건물은 전통주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전시시설과 함께 카페 등 휴게공간을 꾸며 막걸리 박물관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