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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May 19. 2023

축의금도 받았으니 이제 결혼하려나?

우정이 담긴 이상한 축의금

결혼하지 않은 딸의 축의금을 내 친구들이 주었다. 이게 뭔 일인가? 축의금을 받았으니 이제 결혼을 하게 되려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다섯 친구들은 고등학교부터 흥사단의 아카데미 활동을 같이 한 죽마고우이다. 고교 때는 물론 재수, 대학 시절을 거쳐 결혼 후에는 가족들과의 모임도 해왔다. 매달 일정한 회비를 몇 십 년째 걷고 있고 집안 경조사 때마다 회비에서 경조비를 전달해 왔다.


얼마 전 대전에서 오랜만에 모여 함께 저녁을 지낸 후 다음 날 아침 동학사 근처 어느 카페에서 빗소리 들으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총무 친구가 결혼하지 않은 딸을 둔 나와 한 친구에게 느닷없이 '아이들 어떻게 되냐? 소식 없냐'라고 물었다. 다른 친구들은 자녀들의 혼인을 다 마쳤다. 얘기를 나눈 후 결혼이 너무 늦어지는 자녀의 축의금을 미리 정산하려는 의도를 알았다. 한 친구의 딸은 아직 30대이니 결국 내 의사를 묻는 것인데...


몇 년 전에도 자녀가 40이 넘으면 축의금 정리하자는 얘기가 나와 그럴 필요 있냐고 하며 넘어갔지만 친구들 마음의 부담도 생각해 이번에는 선뜻 좋다고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딸의 결혼 포기를 선언하는 느낌도 들었지만 늦은 결혼도 있고, 요즘 시대에 당당히 혼자 사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을 일찍부터 했기에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나이 든 딸이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한번 사는 생인데 일반적인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어떤 모습으로든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고, 함께 모은 회비이니 정당하게 받자 하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까지 배려하는 친구들의 마음씀이 고마워 그들의 심적 부담도 덜어 주는 것이 낫겠다고 여겼다.


다음날 친구가 송금했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에게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아내의 심정도 나와 같은 걸까. 머릿속 생각과 달리 둘이서 동시에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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