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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Jun 03. 2023

오늘 아침 현관 앞에 신문이 없다

오늘 아침(6월1일) 한겨레 신문이 현관 앞에 없었다. 여느 날처럼 문을 열고 나서 신문이 오지 않은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신문 구독을 취소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문 밖에 신문이 없는 것을 확인한 순간 착잡했다. 신문 없는 현관 앞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요즘 신문 보는 집이 어디 있다고 호들갑이야?'라 할지도 모르겠다.


1988년 창간호부터 시작해 35 년간 본 한겨레신문은 오랜 기간 본 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신문이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새 신문을 창간하기 위한 국민 주주 모집 소식을 접하고는 동료교사들에게 알려 10여 명이 함께 주주로 참여하면서 한겨레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1988년 5월 15일 아침 백두산 천지의 사진을 1면 머리에 실은 한겨레 창간호를 받았던 그날의 기억이 새롭다.


이 신문은 노태우 정권 시절 수많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정론직필로 언론의 정도를 지켜 국민들의 신뢰를 받다. 세월이 가면서 초창기의 선명하고 날 선 기사들이 무색하게 기사가 실망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나는 한겨레가 다시 초심을 지킬 거라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아침마다 만나왔다.


반복되는 여행으로 며칠씩 집을 비우게 되니 당장 신문이 문제가 돼 일단 구독을 끊어 보기로 했다. 전부터 아내와 종이 신문을 꼭 봐야 할까 하는 문제로 얘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어 이번 기회에 잠시 끊어 보고 구독 여부를 좀 더 고민을 하기로 했다.


대학 다닐 때는 광고 탄압을 받았던 동아일보를 믿고 보았다. 시민 광고를 싣기도 하며 후원했는데 탄압에 굴복한 동아의 경영진이 기자들을 해직시키는 것에 실망해서 보지 않게 되었다. 전두환 독재 시절에는 언론통폐합이란 명목으로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이 거리로 쫓겨나는 등 독재 정권의 통제를 받았던 언론에 대한 불신 속에서 한겨레 신문이 창간된다는 소식이 정말 반가워서 주주 모집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대형 신문사의 물질 공세를 앞세운 구독 요청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35년간 오직 한겨레만을 아침마다 보아왔는데….


나중에 다시 구독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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