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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Jul 11. 2023

부산의 독립운동가 안희제를 기억하는 곳, 백산기념관

ㅡ 부산의 독립운동가 안희제를 기억하기 위해 백산기념관은 꼭 가야 한다


부산시에서 지원하는 부산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인 [한 달 살아보니, 살기 좋은 부산] 1기 참가자로 운좋게 선정되어 1주일 동안 부산 근대문화유산 탐방을 중심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부산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의 미션 중 하나가 '나만 아는 부산 관광지 발굴'이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백산기념관을 다녀온 후 이곳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백산 안희제에 대해 가르치기도 한 나조차도 이런 기념관이 있는지 몰랐고 우연히 발견하게 될 정도로 백산 안희제는 무관심한 가운데 잊혀져 가고 있는 하여 안타까웠다.

백산 기념관 입구

부산 중구의 백산로(동광동)에는 백산 기념관이 있다. 부산의 원도심지 중 가장 번화가인 광복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데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사 시간에 한 번쯤 흘려 들었을 뿐 백산 안희제의 삶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부산 사람은 물론 부산을 찾는 사람들도 카페나 맛집뿐만 아니라 부산의 역사와 인물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권하고 싶다.

백산 기념관 주변 360도 사진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여 선생이 세운 백산상회가 있던 그 자리에 이 기념관을 세웠다.

전시관 입구의 백산 안희제의 흉상

백산 안희제 선생은 일제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민족교육, 민족기업 육성, 항일 언론 등으로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활동한 민족독립운동가였다.

백산상회가 있던 건물(전시물 사진 재촬영)

백산 안희제는 1885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14년 경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하고 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하였다.


백산상회를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장하여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와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백산무역주식회사를 국내 항일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했다.

백산의 애국심을 기리고 후세에 그 뜻을 길이 전하기 위해 이 기념관의 설립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는 민족사상의 고취자요, 민족교육의 선각자요, 민족자본의 육성자이며, 민족언론의 선구자이자, 민족운동의 지도자이다. 사업의 방편인 양 총독부를 비롯한 일본의 관리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으로 위장하여 독립운동을 숨겼다. 당시에는 그를 친일파로 오해하기도 하였다.

백산 안희제와 생가(전시물 사진 재촬영)

 1933년 발해의 고도인 중국 영안 동경성에서 발해농장 경영에 착수하였다. 발해농장은 표면적으로는 농지개간사업을 하는 농장이었으나 실제로는 국외 독립운동기지였다. 그는 1911년 대종교에 입교한 이래 1934년 대종교총본사가 동경성으로 옮겨오자 대종교 주요 인물로 활동하다가 1942년 일경에 체포되었다. 삶의 전부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치다가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3년에 순국하였다.

해방이 된 후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한 후에야 안희제의 독립운동을 위한 활동이 소상히 밝혀졌다.

백산상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서울의 이회영 집안과 함께 망국의 시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가문으로 꼽는 경주 최부자집의 최준이다.

그는 백산의 제안으로 백산상회에 최대 주주로 투자하는 형식을 통해 독립운동자금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속적으로 기부했다. 동생들도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동생 최완은 임시정부에서 재정을 맡아 활동하다가 일제의 모략으로 국내에서 체포되어 결국 옥사하는 아픔도 있었다.(* 일본 경찰이 최준에게 서예를 배우고 싶다면서 글씨를 받아 가 그 글씨를 흉내 내어 최준이 쓴 것처럼 편지를 조작해서 아버지가 와병 중이니 돌아오라는 가짜 편지를 보내어 국내로 잠입한 최완을 체포했다고 한다.)


최준이 해방 후 귀국한 백범 김구와 만난 일화는 유명하다. 최준은 안희제가 임시정부를 핑계 삼아 백산상회의 사업 자금으로도 일부 쓰기도 하고 전달하러 가는데도 많은 비용이 들 거라  짐작하면서 절반이라도 임시정부에 전해지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독립운동자금을 주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백범 김구가 최준을 만나서 최준이 보내준 자금을 독립운동에 소중히 사용했다고 감사를 표하며 그동안 안희제로부터 받은 독립운동자금의 기록을 보여주고 최준의 기록과 대조해 보니 한 푼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다 전달된 것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최준은 백산 안희제를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안희제의 고향인 경남 의령 방향으로 절을 하며 안희제를 기리며 김구 선생과 함께 통곡했다고 한다. 이 일로 백산의 독립운동이 알려지게 되고 재평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역사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근현대사 시간에 이 내용을  가르칠 때마다 울컥하곤 했는데 오늘도 기념관에서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산 시민과 부산을 찾는 모든 분들이 부산의 인물로 백산 안희제를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부산에 가서 광복동, 남포동의 맛집과 BIFF 광장을 찾아갈 때는 이 전시관을 꼭 들러보기를 권한다.

친절하신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 잊고 있었던 독립운동 관련 지식이 한 단계 더 상승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부산시가 숙박비 일부를 지원하는 [한 달 살아보니, 살기 좋은 부산]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쓴 글입니다.)


*기념관 옆에는 부산생활문화센터  '한성1918' 건물이 있고 광복동 쪽으로 내려오면 '부산 영화 체험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위로 올라가면  근현대역사박물관 별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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