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보라색 맛 - 다섯 번째 이야기 "수다"
Chapter 3 보라색 맛(본능과 이성사이)
5. 수다_너와 나의 연결고리
카톡! ‘오늘 일정 공지입니다.’ ‘오늘 오전 11시까지 경영전략 회의자료 제출입니다.’ 출근하자마자 쏟아지는 단톡방 업무 메시지로 아침을 여는 요즘이다. 소통 앱이 생긴 이후로 소통 앱은 진정한 소통 대신 서로의 필요사항을 묻고 답하는 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하나의 집단 내에서도 대화 참여 상대가 각기 다른 대화방이 존재하고 방별로 다르고 다양한 대화들이 오고 간다. 이런 소통의 홍수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마음을 모두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줄어져만 가는 요즘이다.
‘수다 떨다’라는 표현은 ‘여러 사람이 쓸데없는 말을 해 대다.’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쓸데없는’이란 말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쓸데 있어 보이지만 피로하기 만한 대화들만 주고받는다. 알맹이는 빠져있고 겉만 번지르르한 형식적인 대화들 말이다. 우리에겐 쓸데없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맞아, 맞아.’ 맞장구쳐주며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럴 수 있지!’라고 공감받을 수 있는 수다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수다는 정말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아이를 낳고 10개월이 될 무렵, 동네 아기 엄마들과 “우리 신랑은 말이야, 우리 시댁은 말이야.”라든지 “이번에 나온 S사의 젖병소독기가 그렇게 좋다네. 가격은 핫딜 뜨면 겁나 싸게 살 수 있어.”등의 시댁 이야기와 육아 필수 아이템 이야기에 지쳐갈 때쯤, 인터넷에서 지역 맘 카페를 통해 영어회화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에 모인 다섯 명의 엄마들은 ‘영어공부’라는 공통 관심사로 모이긴 했지만, 육아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키려고 애쓰는 엄마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여행과 독서, 음악 이야기까지 더 많은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게 되고 모든 에너지가 아이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수다로부터 탈출하여 그냥 나로서 가질 수 있는 여러 관심사에 관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 내가 이 책을 읽어봤는데, 너무 좋더라. 너도 읽어봐. 추천이야, 추천!” “지난주부터 중국어 모임도 나갔는데, 거기서 추천받은 어플인데 설거지할 때나 자기 전에 틀어놓으면 좋더라.” 늘 육아가 재미없어 다른 쪽으로 에너지를 쏟으면서 부족한 엄마라고만 느꼈던 나에게 육아 말고도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애쓰고 있는 언니들을 만나면서 정말 큰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찐 친구와의 수다 또한 보약 같은 시간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삼겹살을 구우면서 소맥을 말아 털어놓고 그동안 어찌 살아왔냐고 이야기 봇짐을 풀 때면 ‘그래, 이 맛으로 살아가는 거지!’하는 충만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직장에서 있었던 짜증 나는 일들, 직장에선 말할 수 없었던 가정에서의 힘든 일들 그리고 현재 내가 가진 열등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 모든 이야기를 삼겹살 한 점과 술 한 잔에 쏟아내고 나면, 별거였던 일들이 별게 아닌 것이 되어있고, 별게 아니었던 일들이 특별한 것이 되어있다. 이렇게 막 쏟아 내다보면 힘든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고 넘겼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꺼내어볼 수도 있고, 그 찌꺼기들을 수다를 통해 날려버릴 수도 있게 된다.
길어지고 있는 ‘언택트(Untact)’시대가 얼굴을 마주하고 수다 떨 수 있는 시간까지 앗아 가버린 요즘이지만, 우리의 수다는 계속되어야 한다. 묵묵히 해야 할 말들만 뱉어야 하는 현실의 삶 속에서 내 마음도 지켜내고 꺼내어 볼 수 있는 솔직한 수다의 시간 말이다. ‘옳다, 틀리다.’가 아닌 “진짜? 대박! 그랬구나, 네가 많이 힘들었겠네.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할 거고.”라는 식의 쓸데없지만 꼭 듣고 싶은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더 이상 차가운 현실에서의 대화로 내 마음이 식어가지 않게 따뜻한 수다를 계속 주고받으며 늙어가고 싶다. 재잘재잘. 속닥속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