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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25. 2017

"쌀이 목구멍 안쪽을 지나면 설탕과 같다"

[서평] 무네타 테츠오의 <지방의 진실 케톤의 발견>

이미지 출처 - 대전일보

불이 났다. 화재 현장에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많은 수의 소방관들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들이 불을 지른 자들이로구나."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가설을 통계학으로 검증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의사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동맥경화 현장을 조사해 봤더니 콜레스테롤이 많아서, 콜레스테롤을 동맥경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콜레스테롤은 세포막을 보수하고 혈관 벽을 수리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오해는 현재 대부분 해소되었고, 콜레스테롤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의사도 많지 않다.


비슷한 누명을 케톤체가 쓰고 있다는 것이 <지방의 진실 케톤의 발견>의 저자인 산부인과 의사 무네타 테츠오의 주장이다. 산증이 발생한 현장에서 케톤체가 많이 발견되어서 케톤산증이라 이름을 붙이고 케톤체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사실은 인슐린 부족으로 포도당 대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케톤체가 스스로 에너지 대사를 하면서 몸을 구해낸 것이다. 이것이 케톤산증의 정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미 무어와 에릭 웨스트먼의 공저 <지방을 태우는 몸(Keto Clarity)>은 케톤산증이 위험한 것이지 케톤체나 케톤 대사는 위험하지 않다고 하면서 선을 긋는 데 반해, 무네타 테츠오는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책 표지 (저작권자 판미동)


인간은 원래 케톤 대사로 살아간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당뇨병 증세로 고생하는 임산부들을 오랫동안 관찰해 온 저자는 출산 시 제대혈과 산모의 혈액 내에 케톤 농도가 대단히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높은 케톤 수치는 당질 제한 식사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산모에게서 나타났다. 피 한 방울로 케톤 수치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개발됨에 따라, 신생아의 케톤 수치도 측정 가능하게 되었는데, 신생아 역시 높은 케톤 수치를 보였다.

모유는 30%가 지방산으로, 모유를 먹는 아기는 고농도의 지방을 공급받는다. 그러면 지방의 대사 산물인 케톤체가 높은 수치로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51쪽)

저자는 더 나아가 피치 못할 사유로 중절하는 임산부의 양해를 구하고, 융모의 케톤 수치를 측정했는데, 역시 수치가 높았다. 임신 시작 단계부터 태아는 고농도 케톤 상태에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융모와 태반은 모체로부터 아기에게 영양이 전달되는 통로다. 오랫동안 의학계는 전달되는 영양물질이 포도당일 것이라 추측해 왔다. 하지만 저자의 실험 결과, 융모와 태반의 혈당은 표준치를 밑돌았다. 반면, 케톤 농도는 정상치의 20~30배에 이른다.

이미지 출처 - blog.oxforddictionaries.com

달걀은 수분을 제외하면 40%가 지방이고 탄수화물이 거의 없다. 병아리가 달걀 속에서 포도당 대사를 해야 한다면, 살아서 세상에 나올 방법이 없다. 난생으로 태어나는 대부분의 척추동물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인류도 태아 상태에서 케톤 대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동안 케톤 대사는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포도당 대사가 불가능할 때, 인체가 마지막 보루로 에너지를 얻는 비상용 보조 엔진이라는 시각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케톤 대사가 주 엔진이 아닐까? 인체에 혈당을 올리기 위한 호르몬은 다섯 가지나 존재하는데,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은 인슐린 하나뿐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고혈당보다는 저혈당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언제나 몇 배는 높았다. 인체는 저혈당에 대한 대비책에 비해 고혈당 대비책을 마련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먹을 것이 너무나 풍족한 세상을 살아간다. 고혈당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인체가 진화하기에 고혈당 시대의 역사는 너무 짧다. 고혈당 상태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상황에 직면해서 인슐린은 최선을 다하지만, 역부족이다. 그 결과 인슐린 기능 부전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당뇨병이다. 당질의 섭취로 혈중 당 농도가 높아진 것이 원인이니, 당 섭취를 줄이면 해결될 일이다.

이미지출처 - nytimes.com


"쌀이 목구멍 안쪽을 지나면 설탕과 같다"

쌀밥은 달지 않은데 무슨 상관이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탄수화물은 당질 아니면 섬유질이다. 버섯은 대개 섬유질이고, 도정한 흰쌀은 거의 당질이다. 단당류나 이당류가 아니라서 달지 않을 뿐이다. 인체로 들어와서 분해되면, 포도당으로서 대사된다. 그리고 혈당을 높이고, 인슐린을 부른다.

나는 당뇨병이 인체가 당질을 과다로 섭취하는 것에 대응하는 거부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약이 개발되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당질을 많이 먹지 않는 것, 그뿐이다. (194)

동일한 양의 당질을 설탕물 또는 쌀밥으로 섭취하고 나서 시간 경과에 따라 혈당을 측정해 보았다. 설탕물을 마신 경우 식후 30분에, 쌀밥을 먹은 경우 식후 60분에 혈당이 최대치가 되지만, 전체적인 혈당량은 같다. 설탕물은 혈당을 빠르게 올리지만, 혈당이 내려가는 속도도 빠르다. 반면, 쌀밥은 느리지만 꾸준히 고혈당을 유지해 준다.

설탕물을 마시는 것은 어렵지만, 같은 분량의 당질을 쌀밥으로 섭취하는 것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쌀밥이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이다. 밥 한 공기를 150g으로 가정하면, 당질 55g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각설탕 17개 분량에 이른다. 당류는 마약과 마찬가지로 도파민을 분비시켜서 쾌감을 느끼게 한다. 당질은 마약과 마찬가지로 중독을 일으킨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극단적인 당질 제한식은 하루 당질 섭취를 20g으로 제한한다. 건강한 공복 혈당은 100mg/dL 이하여야 한다. 인간의 전체 혈액량은 5L 정도이다. 당질 20g이 한꺼번에 들어가면 단순계산으로도 400mg/dL의 혈당 수치가 나온다. 쿠키 두 개만 먹어도 당질 20g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저자는 고지방-저탄수화물의 당질 제한 식단이 실천하기 어렵다면, MEC, 즉 육류, 달걀, 치즈를 많이 먹는 식이요법이라도 해보라고 권한다. 케톤 식이요법은 쉽지 않다. 당장 당질 제한 식단을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당질의 위험성은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왼쪽의 저탄수화물 식품을 더 많이 섭취하자 (이미지 출처 - www.dietdoc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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