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아쉬운 고백

[책을 읽고]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 고백록>

by 히말

톨스토이에 대한 나의 평가는 꾸준히 상승해 왔다. 작년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전까지, 나는 그를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 한 수 낮은 작가라고 생각해 왔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그를 도스토예프스키에 <버금 가는> 수준까지 격상했으나, 거기까지였다.


거의 라떼 느낌 나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제외) 톨스토이의 단편들을 읽으면서도 그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은 것은, 톨스토이의 삶에 대해 알기 때문이었다. 라이벌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 그가 확실하게 우월한 부분은 바로 그의 삶이었다. 문제는, 나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의 삶이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에 의해 심각하게 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가 레빈을 통해 그린 자신의 이상적이며 미화된 삶의 모습은, 그가 <고백록>에서 내린 결론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라는 사람의 실제 삶은 그렇게 미화된 레빈의 삶보다도 도덕적으로 열악하다. 그러니까, 톨스토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살았던 삶의 모습은 그가 <고백록>에서 내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결론에서 (매우 큰 폭으로) 두 단계 아래에 위치한다.


<고백록>에서 톨스토이는 자신이 평생 고뇌해 온 문제, 즉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농부의 삶이다. 자살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기로에서 수많은 번뇌의 밤을 거쳐 도달한 대답이 그것이었다고, 톨스토이는 매우 거창하게 표현한다. (그보다 훨씬 나중에 나온 책이지만) 알베르 까뮈가 <시지프의 신화>에서 던졌던 문제에 대해, 톨스토이는 나름의 답을 찾은 것이다.


문제는, 톨스토이가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끝까지 셀럽이자 거부, 그리고 (귀족인 양 안 했다고 주장하지만) 귀족의 삶을 살았다. 자신이 쓴 "가증스러운" 소설들의 저작권을 버리겠다면서, 그는 그 저작권들을 아내에게 양도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게 이렇게 웃길 수가. 식탐을 없애겠다고 음식을 냉장고에 넣는 느낌이다.


<고백록>에 쇼펜하워가 등장하는 장면부터, 나는 꺼림칙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쇼펜하워야말로, 말과 행동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대되었던 인물의 대표다. 쇼펜하워 정도는 아니더라도, 톨스토이가 살았던 삶의 궤적 역시, <고백록>에서 그 자신이 내린 결론과 비교해보면, 혐오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다시 강조하지만, 톨스토이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살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였다. 즉, 어떻게 살 것인지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자살하겠다는 얘기였다. <고백록>에 그렇게 쓰여 있다.


자신이 기독교에 회의를 넘어 혐오를 느낀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이 부분을 읽던 나는 상당히 감동 받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 왔던 삶이 악한 것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농부처럼 살아야 한다. 이 표현은 직유가 아니다. 그야말로 농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지금까지의 악한 삶을 되돌리기 위한 노력도 거의 하지 않았다.


<고백록>을 읽은 것을 후회한다. 소설가로서 톨스토이는 여전히 높게 평가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게 평가했던 <인간 톨스토이>에 대한 나의 평가는 내려갈 만큼 내려갔다. 그는 흔한 위선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니, 그는 그냥 보통 사람이었을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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