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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0. 2023

패티 허스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책을 읽고] 롤라 라퐁, <17년>

패티 허스트(Patty Hearst)는 19세였던 1974년, SLA라는 단체에 납치되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납치 후 19개월이 지난 다음에 <발견>되었는데, 수배 중이었다. 그녀는 은행 강도 등 혐의로 35년형을 받았고, 다시 7년으로 감형되었으며, 실제로는 22개월만에 가석방되었고, 나중에는 사면까지 되었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 것은, 그녀가 자신을 납치한 단체인 SLA의 <공생주의>에 감화되어 그들과 함께 활동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졸부로 유명한 허스트 가문 사람이었다. 허스트는 소위 언론 재벌인데, 언론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한 그런 신문으로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이미 문어발 재벌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살 적에, 여행 목적지로 가는 길에 있다는 이유로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에 가본 적이 있다. 황색 언론으로 벼락부자가 된 윌리엄 허스트가 유럽 문화를 동경해서 캘리포니아 어느 산 중턱에 세운 그야말로 성이다. 어이없는 입장료와 제한된 관광 시간에 황당했지만, 나중에 올 일도 없으니 그냥 갔다. 그런데 그 제한된 관광 시간도 필요 없어서 내보내 줄 때까지 기념품 가게에서 죽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졸부라는 개념을 사람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윌리엄 허스트가 딱이다. 그 같잖은 성에 가서 김일성궁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의 자화자찬 영상을 딱 한번만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아무리 강요되었다고 해도, 그런 졸부 집안 출신 여자가 <다 같이 잘 살자>주의에 감화되었다고?



SLA는 Symbionese Liberation Army의 약자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공생주의자 해방군 정도 되겠다. 한글로 공생주의자라고 하니까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도대체 Symbionese라는 단어의 조제 방법은 잘 봐줘도 "불편러" 수준이다.


SLA의 리더는 도널드 디프리즈(Donald DeFreeze)라는 사람이고 이렇게 생겼다. (그런데 이게 진짜 이름이라고?)


SLA는 정말 다 같이 잘살자주의를 제창한 것 같다. 좌파 느낌이 나는 이들의 사상(?)은 페미니즘, 인종차별 반대, 자본주의 반대, 파시즘 반대 등등이다. 어, 그런데 페미니즘?


FBI가 신원을 확인한 공생해방군 단원들은 나이가 스물세 살에서 스물아홉 살 사이였습니다. 신문사 논설위원들은 아연실색하여 이렇게 썼지요. 이 여성들은 디즈니가 만든 만화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보며 자란 세대다. 이들은 우리 딸이자 우리 여동생이며 우리 친구다. (67쪽)


그렇다. FBI가 파악한 SLA 단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이 책은 패티 허스트를 변호하기 위한 보고서를 위탁받은 한 미국인 여성, 진 네베바의 이야기다. 그녀는 패티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 비올렌을 조수로 채용한다. 당연하지만, 네베바의 고용인이 원하는 것은 패티가 세뇌당해서 공생당원이 되었다는, 그러니까 스톡홀름 증후군의 피해자라는 내용의 보고서였다. 그러나 증거 기록들은 자꾸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몇몇 백인 여성들이 원주민들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구출되기를 거부했다. 그중에 머시 쇼트라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그녀를 납치한 원주민들에게 영향을 받은 듯 풀려나고 나서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완전히 변해버려 툭하면 잘난 척을 하고 예의도 지키지 않았어요. (421쪽)


1690년 당시 그녀는 16세였다. 1690년에 미국 땅에 살던 청교도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교육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예의 없고 잘난 척을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조선 시대 여자가 현대로 타임 슬립을 했다가 돌아가면, 조선 사람들에게 딱 저렇게 비치지 않을까?


패티 허스트 사건 당시, 사람들은 SLA가 흑인 단체라고 생각했다. 수백 명의 경찰이 3,000개의 총알을 쏟아 부었던 SLA의 본거지에서 발견된 SLA 멤버들은 대개 중산층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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