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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1. 2023

열하일기에 보이는 헬조선

[책을읽고] 강민경, <장복이, 창대와 함께하는 열하일기>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그를 수행했던 하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대표적인 것은, 낙타라는 희귀한 동물이 지나가는데, 나귀 위에서 졸던 박지원을 하인들이 깨우지 않았다고 나중에 섭섭해 하는 장면이다. 그런 열하일기를, 장복이와 창대라는 두 하인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낙타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박지원은 중국 여행 동안 신기한 것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려고 꽤 노력했다. 그가 나귀 위에서 졸던 이유도 밤새 시내 구경을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여행 내내 적은 메모들을 한보따리 가지고 귀국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값나가는 물건이 아닐까 의심했고,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에게 받은 금송아지라고 허풍을 떨기도 했다.


그만큼, 그에게 청나라 풍경은 신기한 것이었고, 그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동네 어느 곳 하나 시골스러운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다. "창대야, 여기는 중국의 동쪽 긑이다. 촌구석 중 촌구석이지." 나리의 말끝에 한숨이 묻어 나왔다. 중국 사행길은 여러 번 와 봤지만, 중국의 크고 번화함은 볼 때마다 창대를 주눅 들게 했다. "어째 우리 한양보다 더 번듯한 것 같아 속상합니다." (28-29쪽)


책문을 넘어간 시점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청나라 국경 마을이 조선 수도보다 낫다는 이야기다. 조선은 초가집 천지이지만, 중국에는 허름한 집도 벽돌집이다. 조선 사람들은 짚신을 신지만, 중국에서는 하인들도 베로 만든 신을 신는다.


중국에서 가난하여 뜰 앞에 벽돌을 깔 형편이 안 되는 집들도 여러 빛깔의 유리 기와 조각과 둥근 조약돌을 주워다가 꽃, 나무, 새, 동물 모양 등을 아로새겨 깔아 놓은 것을 창대도 본 적이 있었다. (93쪽)


그런 그들 앞에 갑자기 초가집들이 나타난다. 박지원이 말한다. 묻지 않아도 여기가 고려보인 것을 알겠구나. 조선 사람들은 청나라에서도 초가집을 지어 살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갑옷을 입은 강희제


박지원 일행이 중국에 간 이유는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고, 열하까지 간 이유는 마침 황제가 열하의 피서궁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희제, 옹정제에서 건륭제까지 이어지는 강건성세의 마지막을 박지원은 목도한 것이다. 


강건성세는 백 년이 넘게 이어졌다. 백성들에게 조선은 언제나 헬조선이었지만, 강건성세를 살았던 중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살았을 것이다. (그 당시 전 세계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이 내린 황제 강희제를 못 가진 것은 그냥 운빨이라고 해도, 조선이 내내 헬조선이었던 이유는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때도 민초들의 삶은 헬이었다. 성리학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생각, 정도전이 잘못한 걸까.



정조는 "오늘날 글이 속되고 사람들 심성이 망가진 이유가 박지원의 열하일기 때문"이라 지적하고는 반성하는 글을 올리라 엄하게 명하였다. (224쪽)


정조대왕이 하는 짓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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