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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2. 2023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는 영화 <밀정>을 좋아한다. 송강호/김지운이 아니었더라도 좋아했을 것이다. 황옥 경부의 서사는 그만큼 흡인력이 강하다. 이중 스파이 이야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고뇌가 <햄릿>과 비교해서 더 작다고 할 수 없어서다.


이봉창 열사는 어떤가? 그는 위대한 죽음을 선택해서 우리에게 열사로 기억된다. 원래 그에게 민족의식 같은 것은 없었다. 당연하다. 조선 왕조가 그때까지 존속했다면 이봉창을 포함한 거의 모든 백성들의 삶이 더 피폐했을 것이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기분이 나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봉창의 선택을 조선인 차별에 대한 분노의 결과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성공했다면 수억 명의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상해임시정부>라는 소설에서 나는 일제 경찰 신철이라는 인물을 만났다. 여운형을 암살하려고 그를 만난 자리에서 신철은 말한다. 


"당신, 꿈을 꾸고 있군."

"꿈을 꾸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법이지." 여운형이 대답한다.


뜬금없이 신철이 과거 이야기를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동학혁명에 가담했다가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의 돈을 훔쳐 서울에 오고, 경찰 끄나풀이 되었다가 정식 채용된다. 이야기를 들으며, 여운형은 같은 시기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생각한다. 과거를 준비하다가 갑오개혁으로 과거가 없어지고,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다가 을사늑약을 겪게 되는 이야기. 여운형의 삶이 쉬웠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신철에 비해서는 훨씬 나았다.


신철이 여운형에게 손을 내민다.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여운형은 신철이 암살 지령을 실행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신철은 여운형과 악수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암살 지령을 내린 일본 경찰을 찾아간다. 갑자기 권총을 겨누는 그를 향해 일본 경찰이 말한다.


"배신인가?"

"꿈을 꾸는 중이오."


기미독립선언문


실존했던 일제 경찰 신철의 최후가 이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에 부역하던 그가 마지막에 애국이라는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독립선언문을 인쇄하는 장소를 적발했으나, 인쇄를 그대로 묵인해 주었고, 아마도 그 때문에 일제에 버림받고 죽었다.


https://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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