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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5. 2023

<넛지>를 돌아보는 탈러와 선스타인

[책을 읽고] 탈러 & 선스타인, <넛지: 파이널 에디션>

<넛지>는 확실한 베스트셀러였다. 호사다마. 너무 유명해지니 저자들의 의도가 곡해되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에서 <넛지>라는 책을 소개할 때 단골로 쓰던 이야기가 바로 이웃한 두 나라,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장기 기증 비율이었다.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장기 기증 의사를 추정하는 오스트리아의 기증률은 99%에 달했다. 분명, 신박한 발견이다. 그런데 이걸 그대로 실행해도 과연 괜찮을까?


<넛지: 파이널 에디션>에서 탈러와 선스타인은 아주 긴 챕터 하나를 장기 기증 이슈에 몰빵했다. 그들이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은, 장기 기증 의사를 추정하는 방식을 자신들은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장기 기증이 디폴트 옵션으로 변경될 경우, 장기 기증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대단히 높았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심리다. 스스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 장기 기증을 하려고 했는데, 그게 기본 설정이 되면 꽤 기분이 나쁠 것이다.


<파이널 에디션>에서 저자들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기들은 그럴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말한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하게 조사하고 고민했다. 현재 장기 판매가 허용된 유일한 국가, 이란의 사례도 소개하고 있고, 장기 판매를 옹호하는 학자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마법의 손을 가진 시장의 힘을 빌리는 것은 실제로 꽤 괜찮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시신에 대한 장기 적출 권한을 정부가 가지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 그러한 법을 가진 주는 없다. 그러나 조지아와 같은 일부 주의 경우, 의사 판단으로 시신의 안구 적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조치를 실행하자마자, 전년도에 25건이었던 안구 이식이 1,000건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넛지란 강요가 아니다. 그래서 의미 있는 것이다. 소변기 파리 그림을 겨냥해야 할 의무는 없다.


장기 기증 추정은 얘기가 다르다. 자신의 시신이 온전하기를 바란다면, 어떤 행위를 해야 한다. 귀찮음을 온몸으로 저항하는 인간에게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저자들이 지적하듯 장기 기증에는 공여자와 수혜자 외에 제3자가 존재한다. 공여자의 가족이다. 먼저 떠나간 가족의 기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싶은 그들의 욕구를 미신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일부 병원에서 기증받은 시신의 존엄성을 훼손하여 여론의 공분을 산 사건도 있다.


저자들이 개정판을 내면서도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장기 거래 합법화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반사적으로 혐오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앨빈 로스의 <매칭>은 장기 거래 합법화의 장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https://brunch.co.kr/@junatul/231 



장기 기증이 의무가 아닌 반면, 기후 변화 대응은 인류의 집단적 의무다. 의무라고 하기에도 뭐한 것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인류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반신반의하던 많은 사람들이 2023년을 강타 중인 전 세계적 기후 재앙에 생각을 바꾸었을 것이다.


장기 기증의 경우와 달리, 이 문제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며, 또한 타당하다.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 쉬운 해결을 막는 것 또한 시장인데,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시장 실패가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 실패는 정부가 나서서 고쳐야 한다. (정부 실패는 나중의 문제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아직 외계인이 쳐들어오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 인류에게는 세계 정부라는 것이 없다. 국경을 넘어가는 시장 실패를 국경에 막히는 정부가 막을 수는 없다.


기후 변화의 또 다른 측면은 비대칭성이다. 기후 변화로 게릴라 폭우가 빈번해졌지만, 온실 가스 배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안전하다. 재산이 쓸려 나가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국가들이다.


<넛지>란 그걸 실행할 강력한 주체를 가정한다. 아쉽게도, 기후 변화 문제에는 그런 존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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