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권 자기 혁명] 데이비드 앨런의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 <플루토>의 주인공은 로봇 범죄를 전담하는 형사 로봇이다. 어떻게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쉽게 답한다. 인간은 쓸데없는 움직임이 많다고. 다리를 떨거나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은 아무런 쓸모 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행위다. 로봇은 그렇게 비효율적인 행위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인간의 비효율이 비효율만은 아니라는 것이 현대 뇌 의학의 발견이다. 생각 없이 하는 행위도 뇌를 자극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업무를 기계처럼 처리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머릿속이 복잡해서다. 그런데 주변을 정리하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효과적인 정리법을 단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데이비드 앨런의 방법을 꼽는다.
데이비드 앨런의 명저 <Getting Things Done>(아래 GDT)은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라는 제목으로 우리말 번역본이 나와 있다. 흔히 <GTD>라고 줄여 쓰는 이 책 이름은 데이비드 앨런식 정리법을 뜻하는 상용구가 된 지 오래다. 그가 소개하는 자기 조직의 궁극적 해법을 살펴보자.
Getting Things Done, 한 장 요약
GTD의 기본은 '수집, 분류, 실행'이라고 압축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기본적인 체계는 아래 그림과 같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미래의 종교는 데이터를 숭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데이터 처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따라 존재의 가치가 매겨지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서 인간을 바라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데이터의 입력, 처리, 산출로 구별할 수 있다. 정리도 결국 데이터 처리다. 모으기, 분류하기, 처리하기로 요약된다.
우선 모은다. 영수증이든, 약속을 적은 메모지든, 두꺼운 서류뭉치든, 상자를 하나 들고 다니면서 다 모은다. 뭐든지 다 모아 담는 것이 핵심이다. 간단할 것 같지만, 보통 반나절은 걸린다.
다음은 분류 단계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 행동 가능한 사안인가'다. 행동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참고 자료로서 보관하거나, 구체적인 행동이 가능해질 때까지 '배양'하거나, 버려야 한다. 버리는 것이 남는 것이다. 저자는 최소 80%를 버리라고 한다.
만약 행동이 가능한 사안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본다. 예컨대, '제주도 여행'이라면, 그것은 행동 가능한 사안이지만 다음 행동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이런 사안은 프로젝트로 관리하면서 구체적으로 단계별 행동을 정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하위 프로젝트1 - 숙박 예약, 행동1 - 인터넷 검색 통해 후보 3개로 좁히기, 행동2 - 가격, 시설 등 장단점 비교표 작성, 행동3 - 가족회의를 통해 다수결 결정 등이다. 물론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지금 당장 할 것이 아니라 계획 단계로 미루어 두어야 한다. '프로젝트'라고 표시하고 다음 건으로 넘어간다.
구체적인 행동이 가능한 사안이라면, '2분 질문'을 던질 때다. 일을 해치우는데 2분 이상 소요되는지 자문해 보는 것이다. 2분 이내에 가능한 일이라면 지금 해치운다. 2분 안에 읽고 요약할 수 있는 보고서나, 명함을 사진 찍어 휴대폰에 저장하는 일은 지금 당장 해치우고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2분 이상 걸리는 일이라면 위임하거나 나중으로 미룬다. 위임한 일은 점검 목록에 적어 놓고 관리해야 한다. 나중으로 미루는 일은, 구체적인 일시에 해야 하는 것이라면 달력에, 아무 때나 해도 되는 것이라면 '할 일 목록'에 저장한다. 요즘 웬만한 캘린더 앱은 두 가지 다 지원하므로, 앱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왜 GTD인가
GTD가 기존의 자기 관리 시스템과 크게 차별화되는 점은 시스템이 상향식으로 되어 있는 점이다. 대개의 자기관리 시스템은 하향식이다. 큰 그림을 그리고, 그 아래로 세세한 계획을 그려 내려간다. 핵심 가치에서 출발하여, 인생의 지향점을 정하고,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를 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하얀 도화지라면, 하향식이 맞는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 삶은 여러 번 지우고 다시 그리는 유화 캔버스와 같다. 메일 박스는 깨끗하게 비우는 일이 가능하지만, 우리의 삶, 우리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 할 일 목록이 차고 넘치는 것은 기본이고, 언제든지 어디에선가 새로운 일이 날아든다.
그래서 데이비드 앨런은 일단 상향식으로, 당면한 일들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가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원대한 꿈에서 시작해서 세세한 그림을 그리는 하향식 계획도 가능해진다. 하향식의 원대한 계획을 위해서라도 우선은 청소부터 해야 한다.
GTD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실제로 먹힌다는 점이다. 예전에 애널리스트로 근무할 당시, 나는 꿈속에서 일을 할 정도로 일에 치어 살았다. 그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회사 동료 한 사람이 <GTD>를 추천해 주었고,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GTD 시스템을 도입하여 산더미 같이 쌓여 있던 회사 일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은 물론, 사생활에도 GTD를 적용하여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4주마다 처리해야 하는 예결산서 매칭 업무만으로도 허덕이던 내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던 매칭 시스템 자동화 프로젝트를 시작할 정도로 시간 여유를 되찾았다.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즌권을 구입하고, 미술관 나들이를 다닐 시간을 찾을 수 있게 된 것도 GTD의 힘이었다.
GTD를 어느 정도까지 활용할 것인가
고백하자면, 나는 현재 GTD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경력이 몇 차례 바뀌면서, GTD를 새로운 생활에 맞추어 변경하면서 유지하려 했지만, 더 이상 시간 대비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애널리스트 시절처럼 업무에 억눌린 삶을 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엑셀로 관리하던 GTD 시스템을 더 이상 운용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GTD에서 배운 여러 가지 원칙과 습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기적인 정리 습관과 2분 규칙이다. 일 더미가 너무 쌓이면, 그때는 물론 GTD를 가동한다.
현재의 업무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도, 위의 그림에 나와 있는 정리 작업을 했다. 커다란 바구니에 책상 여기저기에 숨어 있던 전임자의 서류와 파일들을 모아 담고, 하나씩 확인하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보관할 것은 보관했다. 그렇게 해서 포대 자루 두 개 분량의 문서를 버렸다. 모든 문서를 읽고 정리하기 위해 7주 계획을 세웠는데, 6주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얻어갈 단 하나의 실천 아이템으로 나는 2분 규칙을 제안한다. 지금도 TED나 유튜브를 보면, 2분이나 3분 이내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처리하라는 내용을 담은 생산성 동영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데이비드 앨런이 2분 규칙을 처음 만든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을 체계화시키고 널리 퍼뜨린 사람은 그가 맞다.
공간이든 시간이든, 정리에 관한 책은 많다. 더구나 몇 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 열풍으로 서점에는 각종 정리법 서적이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딱 한 권의 정리법 책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GTD>를 고르겠다.
2분 규칙은 실천의 힘을 증명하고 즉각적인 심리적 보상을 내려주는 강력한 도구이다. 처리할 일이 포착되었을 때, 2분 내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즉각 처리하고 잊어버리자. 우리의 CPU는 무얼 해야 할지를 기억하며 리소스를 잡아먹기에는 성능이 아까운 진화의 최고급 발명품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