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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 나무

'밥벌이를 하는 자'

[리뷰] 영화 <The Breadwinner>

by 히말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파르바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와 함께 장에 나가서 물건을 판다. 학교 선생이기도 한 아버지는 문맹인 사람들을 위해 글을 읽어주고 써주기도 한다. 저녁에 집을 습격한 탈레반은 아버지를 감옥으로 잡아가고, 남자와 함께가 아니라면 외출할 수 없는 여자들만 남은 파르바나 가족은 음식을 구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The breadwinner>의 포스터는 전형적인 디즈니류의 여자 주인공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미국의 침공 등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더라도 결말만큼은 산뜻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DL17o1JW0AAmcV-.jpg?type=w773 포스터. 디즈니 풍의 주인공의 모습에서 슬픔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영화는 현실을 보여준다. 파르바나는 갖은 고초를 겪은 후에, 착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감옥에서 구해내지만, 그것뿐이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나려면 그들은 또 어떤 고생을 해야 할까. 어두워진 하늘은 이미 폭격기들이 뒤덮고 있다.

파르바나는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한다. 여자들만 남은 가족은 먹을 것을 사기 위한 외출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 차림으로 먹을 것을 사러 왔을 때는 상대도 해주지 않던 식료품점 상인은, 남장을 한 파르바나에게는 껄껄 웃으면서 물건을 내준다. 파르바나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평범한 행위가 왜 그렇게 힘들까.

the-breadwinner.jpg?type=w773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한 파르바나



일을 하지 않는 아버지를 위해 남장을 하고 밥벌이를 하는 쇼지아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한 사람의 '밥벌이를 하는 자'이다. 그녀의 희망은 언젠가 바다에 가는 것, 그리고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돈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바다는 '달이 물을 끌어당기는 신비한 곳'이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벽돌 만드는 일을 하러 가지만, 어린 소녀인 그녀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이러다가는 할머니가 되어서야 바다에 가겠다고, 그녀는 푸념한다.

바다 사진을 보여주며 미래 희망을 이야기하는 쇼지아. 쇼지아 역시 남장 소녀다.



20년 뒤에 바다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헤어지는 두 남장 소녀. 하지만 폭격은 시작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다시 한 번 부서지려고 한다.

파르바나가 들려주는 동화 속 주인공. 나중에 밝혀지는 그의 이름은 술레만, 즉 파르바나의 오빠다. 그의 기억은 시장에서 놀다가 어떤 장난감을 주운 시점에서 멈춰 있다.




소련과 미국, 인류 역사상 최강의 초강대국 두 나라에 차례로 침략당한 나라 아프가니스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나는 낯익은 이름을 발견한다. 제작, 안젤리나 졸리.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세상과 이어주는 그녀를 응원한다.

세계인구의 단 7%만이 대학교육을 받는다. 내게 버거운 삶이란 누군가에게는 꿈과 같은 삶일 수도 있다. 그런 현실이 슬프다. 파르바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난 곳이 20세기 아프가니스탄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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