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크루즈입니다. 트립어드바이저 평점도 압도적이고요. 단점을 말하는 평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들 time of my life라든지, best cruise ever 뭐 이런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네이버 블로그만 검색해봐도 아프로디테 크루즈를 칭찬하는 포스팅은 얼마든지 나옵니다.
크루즈는 처음이라, 비교 대상이 없으니 아프로디테 크루즈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트립어드바이저의 호평 일색 리뷰를 보고 기대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저에게는 단점이 아주 많이 보였습니다.
첫째,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가는 세 시간 남짓의 괴로운 길. 인당 50불에 지상 교통편을 제공해 주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6명 정원의 밴 맨 뒷자리에 배정이 되면 세 시간이 정말 괴롭습니다. 졸고 있는데 차가 덜컹거리면 목이 삐끗할 수도 있어요. 저희 부부는 액땜을 하려고 그랬는지, 픽업 차량이 우리를 맨 마지막에 태우는 바람에, 맨 뒷자리에서 고생을 하면서 갔습니다. 물론 승객 태우는 순서야 기사님 마음이겠지만, 맨 뒷자리에 타게 된 승객은 맘 놓고 졸지도 못합니다.
둘째, 시간낭비. 지상 운송 서비스는 중간에 30~40분 가량 휴게소에 정차합니다. 운전사에 대한 배려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하노이에서 여행객들을 운송해 온 운전사는 하롱베이에서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여행객들을 태우고 다시 하노이로 가야 합니다. 순전히 쇼핑을 권하기 위한 휴게소 휴식입니다. 물론 강압은 전혀 없습니다만, 별로 볼 것도 없는 휴게소에서 30~40분을 멍하니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올 때 들른 휴게소를 갈 때 또 들릅니다. 같은 곳을요!
시간낭비는 하롱베이에 도착해서도 일어납니다. 허접한 웰컴 드링크를 받고 1시간 가량을 선착장 대기실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와이파이도 없고, 근처에 상가도 없어 또 그냥 멍때리는 시간입니다. 책 가져 가시면 좋습니다. 차 안에서는 못 읽어도 승선 전 하선 후 도합 2시간 가량을 그냥 버리느니 책이라도 읽으면 좋겠죠.
셋째, 무개념 승객에 대한 대처가 없습니다. 저희 크루즈에는 총 여섯 커플이 승선했는데, 한 중년 부부 커플이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숭 솟 동굴 관광이 약 20분 정도 늦어졌습니다. 명시적으로 불평한 사람은 없었지만 약속시간에 20분이나 늦게 나타나서 미안해 하지도 않는 그들, 멋졌습니다.
넷째, 관광 가이드. 저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이해는 합니다만, 모든 승무원 중 영어 발음이 가장 파격적인 사람이 하필 관광 가이드입니다. 처음에 웰컴 드링크를 주는 사람 영어가 너무 알아 듣기 힘들어서, "이 사람이 그나마 웰컴 크루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승선해서 관광 가이드를 하더군요. 게다가 관광 장소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어서 대부분의 관광 시간 동안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일입니다.
다섯째, 사람을 무안하게 합니다. 피드백을 솔직하게 써 달라고 해서, 관광 가이드에게 점수를 조금 낮게 줬더니, 곧바로 승무원 한 명이 와서 뭐가 문제냐, 앞으로 고치겠다고 꼬치꼬치 캐묻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선 직전에 사람 무안하게 뭐하자는 건지... 게다가 관광 가이드가 제 피드백에 대해 들었는지, 하선 과정에서 저를 쳐다보는 표정이 좀 이상하더군요. 솔직한 피드백을 달라고 하더니, 정말 원했던 것은 그냥 다 5점 주기를 바랬던 모양입니다.
무안한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샴페인 한 병이 포함된 패키지였는데, 식사 도중에 매니저가 우리에게 와서, 방에 있는 샴페인을 지금 가져오면 식사 중에 마실 수 있도록 서빙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방에 가서 샴페인을 가져 오니, 샴페인을 마시는 커플은 우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왜 다른 사람들은 안 마시냐고 물어봤더니, 패키지가 달라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샴페인은 그냥 캐빈에서 마셔도 되는 건데, 왜 그렇게 진행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프로디테 크루즈가 괜히 최고 평점을 달리겠습니까. 좋은 점이 훨씬 많습니다.
첫째, 음식이 훌륭합니다. 사실 대단히 맛있다라고 말하기는 조금 부족합니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이 5성 호텔급이라서, 분명 대접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트립어드바이저 하노이 식당 1위인 Duong's Restaurant과 메뉴가 대부분 겹칩니다. 아마도 최상급 베트남 요리가 조금 정형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닭고기를 곁들인 바나나 꽃 샐러드, 대나무 쇠고기 요리, 두 가지 버섯으로만 된 스프링 롤 등 대부분의 요리가 겹칩니다.
둘째, 시설이 훌륭합니다. 욕실 온수는 뜨겁고, 수압도 강력합니다. 화장실, 침대 시트, 수건 모두 청결하게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셋째, 서비스 정신이 투철합니다. 결혼기념일이라는 말을 했더니, 저녁 식사 도중에 깜짝 파티를 진행해 줬습니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Nothing's Gonna Chnage My Love for You'가 나오더니, 수박 조각에 촛불 장식을 해서 내 왔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당연히 감동 받았습니다.
넷째, 무엇보다 하롱베이라는 조용한 바다 한 가운데서 고요하고 신비하기조차 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롱베이에서 운행하는 크루즈는 무엇이든 해당되는 사항이겠지만, 시설이 훌륭한 배라서 푹 쉬고 나서 평온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크루즈에 대한 리뷰를 보면, 낡은 배, 청결하지 못한 객실, 불편한 시설에 관한 지적이 많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