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질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4년 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읽었다. 확인해 보니, 나는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쓰지 않았다. <둔필승총>에 겨우 두 줄 짜리 짧은 소감을 남겼을 뿐이다. 믿기 어렵다. 이 책을 읽은 이후, 나는 만나는 사람 거의 모두에게 이 책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뇌과학자가 기록한 자신의 뇌사 이야기다.
일단 스포일러. 저자 질 테일러는 죽지 않았다. 뇌졸중을 이겨내고 살아났으며, 재활에 성공해 TED 강연으로 유명해졌다. 오히려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그녀는 증언한다.
좌뇌 의식의 죽음으로 한때 나였던 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이 슬펐지만, 그와 동시에 거대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질 볼트 테일러는 감당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분노와 감정적 짐들을 지니고 있었다. (49쪽)
좌뇌가 죽어감에 따라 그녀의 의식은 우뇌에 지배당했다.
오른쪽 뇌에는 현재 순간 외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매 순간이 감각들로 채워진다. (106쪽)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소개한 이유는, 좌뇌 스위치가 꺼짐에 따라 그녀가 잠깐 겪었던 <열반>의 경험 때문이다.
좌뇌를 지배하는 신경섬유들의 기능이 멈추면서 더 이상 우뇌를 억제하지 않았고, 내 의식은 세타빌 상태와 놀랄 정도로 흡사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도들이라면 아마도 열반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34쪽)
그녀는 세상 모든 존재와 연결되는 느낌으로 충만했으며, 정신 차리고 빨리 911에 전화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행복감을 잃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다음은 치료, 재활, 그리고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의 가장 큰 깨달음은 좌뇌 일변도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그래야 행복에 더 쉽게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좌뇌가 디테일에 집중하고 모든 것에서 질서와 체계를 찾으려 한다면, 우뇌는 지금 이 순간만을 감각하기에 거시적인 면, 즉 큰 그림 밖에는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두 측면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은 좌뇌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우뇌는 열등한 반쪽으로 여겨진다.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균형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 열쇠다.
그러나 이 책이 내게 가지는 의미는 인생 조언 이상이다. 좌뇌의 지배가 사라지는 순간 그녀가 느낀 그 세계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경험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죽음의 순간이다.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이다. 서글프기도 하지만, 모든 존재에게 공통된 숙명이다. 바로 그 마지막 순간에 존재 상실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대해 공포만 느낀다면, 생명이란 마지막 순간에 너무도 불행하지 않은가.
저자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많은 이들이 증언한 임사 체험을, 과학자들은 도파민 대량 분비에 의한 환각의 일종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우리가 관찰 가능한 영역이다. 언젠가 밝혀질 기전이다. 우리는 기전을 살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을 산다.
죽음의 경험은 어떤 호르몬의 분비가 아니다. 밝은 빛, 따뜻한 곳, 보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임사 체험자들이 말한다. 이 책 저자는 모든 것과 연결되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라 증언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