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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내년 트렌드

[책을 읽고] 김난도 등, <트렌드 코리아 2024>

by 히말

이 책 시리즈가 나온 지 벌써 16년째라 한다. 지금까지 5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처음에는 밑줄도 치고, 책 덮고 생각도 해보고, 뭔가 알아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던 것 같은데, 이젠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2023년 Rabbit Jump가 전혀 생소하지 않은 걸 보면, 작년 책도 목차는 훑어 보았나 보다.)


김난도 교수팀의 트렌드 분석은 분명 대단한 점이 있다. 단순 예측이라기보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느낌이 강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책이 말하는 트렌드는 대개 실제로 일어난다. 물론 그냥 뻔한 얘기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콜롬버스 달걀 같은 경우라고 나는 생각한다.


***


책에서 제시하는 2024 트렌드 아이템을 하나씩 살펴보자.


분초사회. 저자들이 주장하는 2024년 가장 중요한 트렌드. 가성비 말고 시성비를 중요하는 트렌드. 2배속과 유튜브 영화 요약이 대표적인 증거다. 물론 이미 존재하던 것이고, 인간 본성이기도 하지만, 트렌드가 된다는 말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짜투리 시간에만 독서를 해와서, 이 분야에서는 나름 개척자다. 짜투리 시간은 아껴 쓰면서, 그렇게 해서 확보한 큰 시간은 멍 때리거나 게임 하면서 낭비한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이나다 도요시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이 현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조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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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프롬프트.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부터가 챗GPT와 대화 횟수가 확 줄었다. 미드저니 접속 안 한지 6개월도 넘었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인터넷 초창기에 "검색 실력"이라는 게 능력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처럼, AI 프롬프트 실력도 같은 길을 갈 것 같다. 검색 엔진이 향상된 것처럼, AI도 점점 더 인간의 말을 잘 알아듣게 될 것이다.


육각형 인간. 트렌드라기보다, 잠깐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까. 이 트렌드는 갓생, SNS(인스타), 공간적 제약이 사라진 전 세계적 독점과 관련이 있다. 놀이 차원에서 갓생 챌린지 같은 느낌으로 갈 것 같다. 진지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천재에 대한 동경은 인간 본성이다. 나부터가 천재빠다. 셰익스피어, 뉴턴, 모차르트, 호킹...)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가격차별은 거래라는 게 생긴 이후 언제나 있어 왔다. 경제학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적어도 6,000년 전부터는 있지 않았을까? 고도화된 알고리즘으로 가격 차별 해봤자, 우버가 그랬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뿐이다. 오늘날 기업 환경에서 단기적 이익보다 기업 이미지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도파밍.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매년 내세우는 10개 키워드 중 두세 개는 이런 말장난이다. 굳이 생각을 좀 해보면, <쓸데 없이 고퀄>이나 <고인물>과 연관된 현상이다.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보니 이런 말장난도 나오는 거겠지.


요즘남편 없던아빠. 수십 년, 아니 인류 역사 이후 언제나 있어 왔던 민주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물론 최근에 그 속도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나라는 아직도 멀어 보이지만.


스핀오프 프로젝트. 오래된 현상이고 트렌드도 아니다.


디토소비. 역시 오래된 트렌드지만, 이건 사회적, 경제적 함의가 풍부하다. 기업 마케팅 측면에서 중요한 키워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더 강화될 듯. 나만 해도, 일부 유튜버가 추천하는 제품들을 애용하고 있다. 2024 트렌드 중 분초사회 다음으로 중요해 보인다.


리퀴드폴리탄. 이 아이템은 이런 트렌드가 있다는, 내지는 예측된다는 명제 자체에 동의하지 못한다. 서퍼들의 성지가 된 양양시의 사례는 예외적인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 반대, 즉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돌봄경제. 이게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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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에서 사람들이 작품 앞에 멈춰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2019년 조사에 따르면 8초였다. (143쪽)


'분초사회'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테이트 갤러리에서 평균으로 8초라면 꽤 준수하다. 아니, 내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나는 <까마귀와 밀밭>앞에서 30분을 보냈고, <레이디 그레이의 처형>을 20번도 넘게 봤지만, 미술관 하나를 전체로 볼때, 그 앞을 지나간 그림 전체를 평균 내면 8초가 되지 않을 것 같다.


***


p.s. 반박을 좀 많이 했는데, 나는 이 책을 읽는다는 선택을 했다. 즉, 책이 읽을 만하다는 얘기다. 이 책은 이 분야의 선구자이고, 이런 류의 책 출판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트렌드라는 제목을 달고 쏟아지는 수많은 미투 책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퀄이기도 하다. (비교할 만한 사례는 마크로밀 팀의 책이다. 설문조사라는 근거 데이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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