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해보고 싶기는 한데, 꺼려지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스카이다이빙이 그런 경우인데, 자이로드롭이나 스노보드 경험으로 유추해 보면, 굳이 사소한 일에 목숨 걸 필요 없다는 것이 잠정 결론이다.
메리 파이퍼의 책에서 본 내용인데, 마약성 진통제를 줄곧 거부하던 말기암 환자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일찍 마약 중독자가 될 걸."
마약, 과연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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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본 지식부터 챙겨보자.
마약의 역사나 기전도 중요하겠지만, 실용적 차원에서는 효과에 따른 구분이 적절해 보인다.
1. 각성제
교감 신경을 우위로 만드는 약들이다. 잠도 안 자고 일하고 싸우게 하는 히로뽕이 대표적인데, 코카인, 담배, 커피도 이 부류에 속한다.
2. 진정제
부교감 신경을 우위로 올린다. 만사 태평해지게 만드는 양귀비 추출물 계열, 즉 아편, 모르핀, 헤로인이 대표적이고, 케타민, 대마초, 그리고 술도 여기에 속한다.
3. 환각제
나그란드 초원으로 순간이동해서 용 사냥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약물들이다. LSD와 엑스터시가 있다.
나는 커피 중독 상태인데, 유전자 검사 결과 카페인 분해가 빠른 편이라 다행이다. 그리고 안정시 심박수로 볼 때, 평소에는 부교감 신경이 우위에 있으니 하루 커피 한두 잔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를 해본다.
대마초는 의존성과 독성 모두 담배, 술보다 약하므로 안전하다는 주장이 있다. 아래 표를 보면 과연 그렇다. 그러나 요즘에는 대마초의 유효성분인 THC를 농축시켜 강하게 만든 약들도 많이 있다고 하니, 대마초는 안전하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곤란할 것 같다. 암스테르담 거리를 걷다 보면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그게 대마초 냄새라고 한다. 담배 냄새보다는 나았지만, 내게는 꽤 불쾌한 냄새였다. 대마초는 내게 안 맞을 듯.
표를 보면, 헤로인은 과연 영웅이다. 아니면 그냥 헤로인은 헤로인(heroine)일지도.
2009년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연구팀에서 30개국의 화폐를 조사했는데, 미국의 경우 유통 중인 지폐의 90퍼센트에서 코카인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미국 전체 평균이 90%고, LA나 마이애미처럼 마약으로 유명한 도시에서 수거된 지폐는 100% 코카인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12%나 나왔다. 이쯤 되면 일본이 더 위험하다. 미국에서야 카드 쓰면 되지만, 일본에서는 현금 쓸 일이 꼭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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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 시피, 코카콜라는 원래 코카잎 성분이 마케팅 포인트였다. 지금은 당연히 마약 성분이 없다. 코카잎 향만 사용하고, 마약성분이 섞이지 않게 아주 조심해서 만든다고 하니, 코카콜라로 마약 기분을 느껴볼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LSD는 특이하게도 네모난 작은 종이로 유통된다. 띠부띠부 씰 같이 생겼다. 아래 그림처럼 한 조각씩 떼어낼 수 있게 되어 있어, 하나를 떼어 혀 위에 올려 녹여먹는다. 액상 LSD를 종이에 뿌려 말린 제품이니, 종이는 먹지 말자. (LSD보다 종이가 훨씬 안전하니, 이상한 조언이다.) LSD는 세로토닌 흡수를 억제하니, 우울증에 처방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로포폴은 기억중추를 마비시킬 뿐이다. 잠을 자게 하는 게 아니다. 안 해봤으니 모르지만, 아마 술 먹고 필름 끊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프로포폴은 화학적 중독성이 없다. 심리적으로 중독(의존)될 뿐이다. (나도 내 커피 중독이 심리적 수준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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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백미는 마약 정책 부분이다. 네덜란드의 사례가 인상 깊다. 네덜란드는 무려 50년 전에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그래서 지금 네덜란드에서는 안전한 대마초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순도가 이상하거나, 오염된 대마초로 사고를 당할 일도 없고, 대마초를 구하려고 우락부락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이제 대마초 제품 생산에 있어 일가견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대마초가 네덜란드산이라면 품질은 보증된다는 말이다.
불법시장은 자유시장이다. 따라서 독과점으로 수렴한다. 멕시코에서 갱단이 활기를 치고, 사람들 다니는 길에 시체를 전시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의 하나다.
미국에서 시행되었던 금주법의 역사를 살펴보면, 마약 금지 정책의 폐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금주법 당시, 사람들은 불법시장에서 술을 구해야 했다. 그래서 진짜 술이 맞는지, 오염된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했고, 겨우 술을 마시려고 갱단을 상대해야 했다. 술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은 기본이고, 그래서 가격 대비 운반이 쉬운 독주를 마시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었다.
금주법 시행 이후, 독한 술의 소비가 급증하였는데, 1980년대가 되어서야 금주법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독한 술 중독된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에야 회복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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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구인광고다.
“로스 세타스 기동단이 현직 혹은 제대한 군인을 모집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좋은 급여와 식사, 그리고 안전을 제공합니다. 더 이상 학대받거나 굶주리지 마세요. 우리 조직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습니다. 안심하시고 연락주세요.” (176쪽)
세계 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마약 정책이 아니라 그 나라의 경제와 복지 수준이 마약 문제의 심각성 정도를 결정한다. 네덜란드에서 마약 문제가 크게 감소한 것은 포용적 마약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포용적인 사회 복지 제도 때문이다.
멕시코 정부가 포용적 마약 정책을 실시한다고 해서,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는 얘기다. (미-멕 국경을 거꾸로 넘는 사람들이 증가하기는 할 것이다.)
한국이 더는 마약청정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한국은 히로뽕이 대마초보다 흔한 아주 특이한 사례다. 영화 <마약왕>에 나오는 것처럼, 한때 일본에서 유통되는 히로뽕의 80%가 한국산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멕시코보다는 네덜란드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마초 정도는 합법화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마초가 합법이라면, 호기심에 대마에 손을 대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내가 담배를 딱 한 대 시도해보고 그만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