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피쿠로스의 가르침

[책을 읽고] 에피쿠로스, <쾌락>

by 히말

에피쿠로스 하면 쾌락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딸려 나오니 책 이름이 이렇게 된 듯하다. 이 책은 에피쿠로스 전문가인 Cyril Bailey라는 사람이 쓴 <에피쿠로스 현존 유작집(Epicurus: The Extant Remains)>의 그리스어 원문을 번역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나는 현대 그리스어는 못 읽고 고대 그리스어만 읽을 수 있는데, 중간중간 계속해서 나오는 그리스어 원 단어를 읽는 재미도 나름 있었다.)


Epikouros_BM_1843.jpg 패완얼


에피쿠로스의 쾌락


에피쿠로스는 철학의 목적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평화라는 것은 그냥 내가 이해하려고 동원한 말이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복'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행복에 필요한 것이 쾌락인데, 쾌락은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라 정의된다. 필요하지 않은 것, 예컨대 권력을 추구하거나 향유하는 것은 쾌락이 아니다.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추구하거나 충족하는 것, 예컨대 과식이나 탐식은 쾌락이 아니다. 핵심은 필요와 욕심을 구분하는 것이다. (WOW 주사위 굴리기냐.)


충족되지 않더라도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 욕망들은 필수적인 욕망이 아니어서, 얻기가 어렵거나 해악을 낳으리라고 생각된다면 쉽게 해소된다. (122쪽)


이 책 제1장을 보면 당대 라이벌 철학자들이 에피쿠로스를 비방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에피쿠로스가 살던 당시에도 그가 쓰는 '쾌락'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팽배했던 것은 다음 구절에서도 짐작이 된다.


따라서 쾌락이 우리의 목표이자 목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우리 생각에 동의하지 않거나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이 떠올리는 것과는 달리 방탕한 자들이 추구하는 쾌락이나 어떤 것을 즐길 때 생기는 쾌락을 의미하지 않고,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괴로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107쪽)


그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에피쿠로스는 1년에 120드라크마 정도면 사는 데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1드라크마는 일용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이라는 것이 얼마나 검소한 것인지 보여준다.


현대 학자들은 1드라크마의 가치를 대략 45달러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1년에 5,400달러, 하루에 대략 15달러로 산다는 얘기인데, 주거가 해결된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에피쿠로스는 <정원>이라 부르는 공동체에 살았으니, 따로 주거비가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라이벌이던 견유학파 디오게네스도 통나무가 있었으니 가능했을 것이고.


N3176 keerzijde 600dpi.jpg 이거 한 개로 사흘 살기


에피쿠로스의 자연학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란, 종류를 불문한 지식의 탐구다. 에피쿠로스가 가장 많은 저작을 남긴 분야는 자연학이다. 요즘 말로 하면 자연과학이다. 자연과학을 탐구하는 목적도 다르지 않다. 바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다.


천체 현상들에 대한 지식을 구하는 목적은 오직 평정심과 확고한 신념에 있고, 그 밖의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71쪽)


자연에 대한 이해 없이는 마음의 평온, 즉 쾌락에 이를 수 없다고 에피쿠로스는 강조한다.


우주 전체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신화들이 말해주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살아간다면, 가장 중요한 것과 관련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자연학 없이는 온전한 쾌락을 얻을 수 없다. (118쪽)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한 것은, 하나의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에피쿠로스가 동원하는 다양한 설명 방식이다. 그는 확실한 증거 없이 어떤 하나의 설명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한다.


달이 기울었다가 다시 차는 것은 달이 회전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기 환경 때문일 수도 있으며, 다른 천체가 달을 가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요컨대 달이 보여주는 그러한 모습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여러 방식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인간이 무엇을 관찰할 수 있고 무엇을 관찰할 수 없는지를 살펴보지도 않고, 관찰할 수 없는 것까지 관찰하려고 함으로써 어느 한 가지 설명에 매료되어 다른 설명을 모두 배척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78쪽)


그는 달의 차고 기움을 설명하는 여러 학설들을 나열한다. 회전설은 헤라클레이토스, 대기 환경설(연로설)은 파르메니데스, 천체 가림설은 아낙시메네스가 주장했다. 에피쿠로스는 태양의 움직임이나 천둥, 번개 현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이렇듯 여러 학설을 나열하며 그중 어느 쪽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고, 서로 비판하면서도 공존하던 고대 그리스는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그로부터 2,000년이나 지난 미래에 아시아 동쪽 어떤 나라에서는 사소한 의견 차이로 적의 목을 따야 한다는 사람들이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말싸움을 하고 살았다.


사족으로, 다음 구절에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허공'은 마치 암흑물질을 예견한 것 같다.


원자는 허공과 뒤섞이지 않는 단단한 물체이고, 허공은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본성을 지닌다. (149쪽)



에피쿠로스의 정의


에피쿠로스의 정의론 역시 독특한데, 상대론적이며 실용적이다.


그 자체로 정의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정의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 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서로 해를 끼치거나 해를 입지 않기 위해 맺는 협약이다. (124쪽)


불의가 나쁜 이유도 실용적이다. 불의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발각되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에 나쁘다는 것이다. 또한, 협약을 맺을 수 없는 동물의 세계에는 정의도 불의도 없다.


상대론적 정의관은 이렇게 서술된다.


일반적으로, 정의는 상호 간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는 데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하지만 나라마다 서로 다른 상황과 온갖 이유로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이 아니다. (124쪽)


그리스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바르바로이라고 천시하던 그리스 세계에서 이런 주장이 얼마나 파격적이었을까. 물론 에피쿠로스는 아테네가 몰락하고, 그리스 중심적 세계관이 기울어가던 시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망해가는 제국에서는 오히려 망국적 국수주의가 판 치는 것이 더 흔한 일이다.


상대론적 가치관은 단지 정의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게 속한 것이 선하고 유익한 것이든 아니든, 남들이 칭찬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에게 고유한 것으로 여겨 존중한다. 따라서 우리는 남들에게 고유한 것도 우리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132쪽)


anderson-rian-LD8FhvuLiEA-unsplash.jpg 울티마 생각난다


에피쿠로스와 삶의 지혜


에피쿠로스 어록은 아름다운 말들로 넘쳐 흐르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명쾌한 한마디가 또 있을까 싶다.


너는 시간의 주인이 아닌데도, 행복을 뒤로 미루고 우물쭈물하다가 인생을 낭비하며 우리 각자 쓸데없이 분주히 움직이다가 죽는다. (132쪽)


다음은 고르고 골라 몇 개만 추린, 그의 아름답고 현명한 말들이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바른 지식은 우리 삶에 무한한 시간을 더해주는 방식이 아닌, 불멸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삶의 필멸성조차 즐길 수 있게 한다. (103쪽)
육체로는 쾌락의 한계가 무한하며, 무한한 쾌락을 얻으려면 무한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지성이 육체의 목적과 한계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영원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해 완전한 삶을 얻게 해주면, 무한한 시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120쪽)
우리는 가지지 않은 것을 바라다가 가진 것까지 망쳐서는 안 되고, 우리가 지금 가진 것도 전에 우리가 바라던 것이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135쪽)
욕망에 직면할 때마다 이렇게 질문하라. 이 욕망이 이루어진다면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140쪽)
몸에 어떤 고통을 겪게 되면, 그 고통과 비슷한 다른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140쪽)
만일 신이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었다면, 모든 사람은 이미 신속하게 멸망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영원히 서로에게 재앙이 임하기를 기도하기 때문이다. (156쪽) - 웃자고 인용했다.


XL (6).jfif


한 번 죽 읽고, 그다음에 밑줄 치며 읽고, 또 조금 잊고 지내다가 밑줄 정리하며 또 읽었다. 좋은 말씀이 너무 많아 밑줄을 어디에 쳐야 할지 모르겠다. 귀한 가르침이 2,300년을 살아남아 내게 전해진 우연에 감사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둔필승총 2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