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으로 갓생 살기 - 영양제 각론 (8) 비타민 C 메가도스 논쟁
메가도스 논쟁
https://pubmed.ncbi.nlm.nih.gov/23440782/
근거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메타 연구 논문인 상기 논문에 따르면, 비타민 C는 감기의 예방 또는 치료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논문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발췌해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한다.
그가 숨긴 부분에 무슨 얘기가 있는지 알아보자. 이 논문은 비타민 C가 운동 후 피로 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메가도스에 해당하는 하루 1,000~2,000mg의 비타민 C 섭취가 아이들에 있어 감기의 발병 기간을 18%나 줄였으며, 감기 증상의 강도 또한 낮추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결정적으로, 저자는 감기 환자들이 비타민 C 요법을 개별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은 생각일 수 있다(it may be worthwhile)고 결론 내리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비타민 C를 영양제로 섭취한 그룹에서 감기의 증상 기간과 증상 정도가 개선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비타민 C가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타민 C를 감기 치료 목적으로 실험(therapeutic trial)한 경우에 효과가 없었던 반면, 영양제로 섭취한 사례(supplementation trial)에서는 효과가 있었다고 논문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비타민 C를 평소에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오히려 힘을 실어준다. 물론 나는 같은 논문을 반대 입장에서 발췌해서 말했다.
이제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었으니, 판단은 스스로 해보자.
이 논문을 근거로 비타민 C 무용론을 펼치는 영상을 보면, 무작위 이중 맹검 실험 결과 비타민 C가 여성에 있어 심혈관계 질환 감소 효과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논문을 살펴보면, 남자에게는 효과가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정말 자기 편한 쪽으로만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그 대담성에 박수를 보낸다. 아전인수를 하면서도 논문 링크를 남기는 걸 보면, 사람들이 링크를 설마 클릭하겠느냐고 얕잡아보는 것 같다. 이런 협잡꾼에게 얕잡아 보이지 말고, 논문 링크를 따라가 직접 읽어보자.
대체 왜, 돈도 안 되는 비타민 C로 논쟁을?
비타민 C 섭취, 특히 메가도스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유는 내 상상력 범위 바깥에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그림이나 동기에 의해 움직이지, 거시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들을 덜 건강하게 만들어서 병원 수익을 늘려보자는 생각으로 전 세계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저질 SF에나 나올 이야기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많은 신약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는 대형 제약회사들의 음모인데, 그야말로 음모다. 전 세계를 과점하고 있는 이들 업체의 행태는 게임 이론으로 설명되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이들이 담합하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 어렵다.
SNS와 동영상 포탈이 판치는 세상이라 관종이 많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추측이 그나마 그럴듯해 보인다.
비타민 C 메가도스가 시도해 볼 만한 게임인지에 관한 판단은 결국 스스로 내려야 한다.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모아 살펴보는 것도, 정보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 글을 통해 나누려고 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한 결과물이다. 그러니 비타민 C 섭취와 관련한 다른 문제들도 살펴보자.
알약은 소용없다고?
또 하나의 큰 이슈는 합성 비타민 C 제제의 효과성에 대한 물음이다. 시판되는 대부분의 비타민 C는 아스코르브산 단일 제제다. 가끔 로즈힙 오일 같은 것이 장식처럼 첨가되기도 하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설탕이나 젤라틴을 넣어 만든 음료나 젤리보다는 물론 훨씬 좋다.)
과일이나 채소에 흔한 자연 상태의 비타민 C는 파이토케미컬과 함께 작용하므로 더 효과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일이나 채소로 비타민 C를 오버도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크기의 레몬 한 개에는 비타민 C가 30~40mg 들어 있다. 40mg로 계산해도, 하루 1g이라는 최저 수준의 메가도스를 하려면 하루에 레몬을 25개 먹어야 한다.
레몬은 시어서 먹기 힘드니 맛있는 키위로 먹는 것은 어떨까? 맛 좋은 골드키위는 100그램당 비타민 C가 무려 109mg이나 들어 있다고 한다. 열 개만 먹으면 된다. 그런데 골드키위가 맛이 좋은 이유는 달아서다. 100그램당 11.1그램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는데, 그중 10.9그램이 당류다. 비타민 C 겨우 1,000mg을 챙기겠다고 설탕을 109그램, 그러니까 그 109배를 먹는 셈이다. 그냥 알약으로 먹자.
https://www.5aday.co.nz/facts-and-tips/fruit-vegetable-info/kiwifruit-gold/
경구 투여 대 정맥 주사라는 논쟁도 있다. 경구 투여는 별 효과가 없고 정맥 주사가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평소에 비타민 C를 먹어왔던 사람들만 고용량 정맥 주사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맥 주사로 대용량을 투입할 경우 지방에 쌓아 놓고 쓸 수 있는 비타민 D의 경우와 달리, 비타민 C 정맥 주사는 반대론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크나큰 낭비에 불과하다. 반면, 이왕재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고용량 투입은 의미 있는 일이다. 투입된 과도한 양이 체내를 거쳐 나가면서 할 일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냥 생리 식염수를 링거로 맞아도 뭔가 몸이 좋아지는 기분이 든다. 위약 효과 때문이다. 심리적 기대감에 기반하는 위약 효과는 뭔가를 한다는 느낌이 클수록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알약을 먹는 것보다는 주사를 맞는 편이, 그보다는 외과 수술을 한다는 말과 함께 마취를 하는 편이 효과가 강력하다. 비타민 C 정맥 주사의 경우도 위약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비타민 C 메가도스만큼 찬반 의견이 갈리는 건강 상식도 드물다. 나는 10년 가까이 비타민 C 메가도스를 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메타 연구에서도 말하듯, 비타민 C는 비용이 부담되지 않아 누구든지 시험해 볼 수 있다. 어떤 약이든 개인차가 있는 법이다. 비타민 C 메가도스는 큰 부담 없이 내게 맞는지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한 번 정도 시험해 볼 만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 내 의견이다.
파스칼은 신을 믿어야 하는 질문에 대해 확률론을 사용한 대답을 내놓았다. 신이 있다면 장땡이고, 신이 없어도 크게 믿지는 일 없다는 논리로, 신을 믿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이 논리가 매우 허접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신의 종류를 잘못 짚었을 경우, 즉 다른 신을 섬기면 가만 안 두겠다는 신이 존재하는데 그의 이름을 잘못 불렀을 경우의 크나큰 위험을 간과하고 있고, 둘째로 신을 믿는다면 해야 하는 수많은 귀찮은 일들과 수반되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타민 C에 대해서도 파스칼은 비슷한 결론을 내렸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