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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29. 2023

행복하게 사는 법

[책을 읽고] 마이클 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나는 에리히 프롬을 통해 노자를 알게 되었다. 교과서에 나오던 이름이 아닌, 철학 체계로서의 노자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서양인의 안내가 필요했다. 당연하다. 우리는 서양식으로 교육받는다. 이분법이라는 단어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에리히 프롬이 알려주기 전에는 몰랐다.


불교 철학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현재를 살아라."


너무 단순해서, 난해하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이 노자를 설명했듯이, 좀 더 이분법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마이클 싱어가 등판한다.


이 크나큰 자유는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해탈’이다. (133쪽)


사진: Unsplash의Rui Xu


제1단계 - 자아란 없다는 사실 깨닫기


우리가 어떤 세 가지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예컨대 화분과 사진과 책이 있다. 누가 이렇게 묻는다. ‘이 중에 어느 게 당신이오?’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느 것도 아니오! 나는 내 앞에 놓인 저것들을 바라보는 자요. 당신이 내 앞에 무엇을 갖다 놓든 상관없소. 난 언제나 그것을 바라보는 자일 테니까.’ 알겠는가, 이것은 이런저런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에 관한 이야기다. (32쪽)


멋진 문장이지만, 이분법적 사고에 호소하기에는 아직 너무 시적이다. 아주 분석적으로 설명해야, 논리 측면에서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현대인이다.


인간은 감각 입력에 따라 세상을 판단한다. 제일 중요한 감각은 물론 시각과 청각이다. 영화를 보는데 싱크가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다. 우리가 감각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현상이다.


예컨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면 소위 4D 영화란 게 있다. 도중에 화약 냄새가 나기도 하고, 물이 뿌려지기도 한다. 아직 장난 같은 수준이지만, 이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여 진짜 5D 영화가 존재하는 미래를 상상해 보자. 쉽게 말해, VR이다. 시청각은 물론이고 후각, 미각, 촉각도 제공하는 VR이다. 뭔가를 먹으면 그 맛을 느낄 수 있고, 밀고 당기고 꼬집는 느낌까지 생생히 전달한다. 이쯤 되면, 이것이 현실인지 VR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인간들이 바로 이런 VR을 삶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VR이다. 그 감각을 모두 생생하게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존재 자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영화의 비유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영화가 지루해질 때, 우리는 몰입에서 빠져나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은 얼마나 지났는지, 집에 가서 뭘 먹을지 생각한다. 바로 이때, 우리는 영화가 현실이 아님을 안다.


바로 이것을 자아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의식이 감각과 자아에 대한 몰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우리는 5D 영화가 현실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우리는 그저 거기에 몰입해 있던 관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의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도 일어날 수 있는데, 예컨대 질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에 묘사된 뇌졸중 경험이 그런 경우다. 임사 체험도 비슷한 경험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의식 전환을 의도적으로 할 수도 있다. 그 방법은 명상이다.


제4장에서 저자는 자각몽의 비유를 든다. 자각몽은 꿈을 생생하게 느끼는 동시에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현상이다. 자아라는 5D 영화를 자각몽처럼 인식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실체가 그 자아와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자아는 없다. 내가 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생생한 꿈이다.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제대로 존재할 수 있다. 상처도 구속도 받지 않는 영혼이 된다.


사진: Unsplash의Natalie Parham


제2단계 - 에너지를 흐르게 하라


우리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닫는다. 이렇게 하면 에너지의 흐름이 멈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에너지의 흐름은 당신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온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고대 중국의 의학에서는 그것을 기氣라고 했고 인도철학에서는 샥티Shakti라고 불렀다. 서양에서는 그것을 영Spirit이라고 한다. (70쪽)


에너지라는 형이상학적 단어를 쓴다고 평가절하할 것은 없다. 어쨌든 자신을 닫는 것은 노력을 요구하고, 에너지(기력)를 소진시키는 일이다. 쉽게 말해, 지친다.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자.


닫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자신을 지나쳐 가는 순간들을 경험하고 그 다음 순간을, 또 그 다음 순간을 경험해 가는 것을 뜻한다. 온갖 다양한 경험들이 들어와서 당신을 지나갈 것이다. 그런 상태로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완전히 깨어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것이 깨어 있는 존재들이 ‘지금’을 사는 방식이다. (80쪽)


우리는 판단한다. 이 판단들은 <각인>이 되어 우리 삶을 기록한다. 뇌과학이 파악하는 자아란 결국 자서전적 기억의 묶음이다. 이 묶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좋았던 각인에 집착하고, 나빴던 각인에 괴로워한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게 두면, 각인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현재를 살게 된다.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헛된 기대를 걸지 않게 된다.


고대 그리스 회의론자 피론도, 근대 현상학자 에드문트 후설도 에포케, 즉 판단중지를 말했다. 이들이 말한 에포케는 확실한 인식(앎)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었지만, 후설의 제자 하이데거는 이를 실존의 문제에 연결해 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에포케라는 멋진 말을 기억하며, 판단을 보류하면 그만이다. 판단하지 않는 것은 단지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등 여러 종교에서 가르치는 덕목이기도 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음식과 옷과 집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어서 바지의 얼룩이나 너무 크게 웃은 일이나 뭔가를 잘못 말한 일로 고민에 빠지는, 그런 사치를 누리고 있다. (91쪽)



제3단계 - 자아를 놓아 보내기


가시가 박혔다. 빼내려고 건드리니 아프다. 그래서 가시가 박힌 부분이 어디에 닿지 않도록 온통 신경을 쓴다. 이렇게 그 가시는 당신 인생의 중심이 된다. 두려움이나 외로움도 마음의 가시일 뿐이다.


가시를 어떻게 빼낼까 궁리하다 보면, 가시를 뺄 때 견뎌야 할 고통이 느껴진다. 결국 가시를 뽑지 못하게 된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빼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의 가시를 빼고 나면,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중심에 머물러 있으면 힘든 경험조차도 음미하고 존중하기를 터득할 수 있다. 예컨대 가장 아름다운 시와 음악의 일부는 고난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121쪽)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에 가시가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상상도 하지 못한다.


붓다가 인생은 고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킨 말이다. 사람들은 고통스럽지 않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조차 모른다. (123쪽)


그렇다면 마음의 가시를 어떻게 빼낼 것인가? 법륜 스님이 늘 하는 조언대로, 그냥 빼면 된다. 뜨거운 것을 쥐고 있으면서 어떻게 내려놓느냐고 묻거나, 그냥 내려놓으라는 말에 내려놓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냥 내려놓으면 된다. 


이 포인트 역시, 저자는 쉽게 설명한다.


당신이 마음과 맺고 있는 현재의 관계는 일종의 중독과도 같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당신은 이것을 다른 중독증을 대하듯이 대해야만 한다. (128쪽)


독하게 마음먹고 그냥 끊어내야 한다.

실제로는 어떻게 할까? 그것 또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매우 간단한 알아차리기 연습이 있다. 이것은 마음의 배후에서 중심을 잡고 머물러 있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자동차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잠시 멈추고, 자신이 텅 빈 우주공간 속을 돌고 있는 한 행성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그리고 삶의 통속극 속에 스스로 끼어들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라. 다시 말해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 자리에서 놓아 보내고, 마음의 게임에 끼어들지 않기로 했음을 자신에게 다짐하라. 자동차에서 내리기 전에도 같은 연습을 하라. (132쪽)


마음은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구다. 그 도구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자. 그 도구가 자신을 집어삼키도록 두지 말자.


여기서 좀 떨어져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시야를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맑은 날 밤에 밖으로 나와 하늘을 한번 쳐다보라. 당신은 정말 망망한 허공 속을 돌고 있는 한 행성 위에 서 있다. (138쪽)



제4단계 - 조건 없이 행복하기


이 책의 가르침이 마치 단계별 과제인 것처럼 정리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자아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우선 과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다음은 그냥 실천일 뿐이다. 법륜 스님 말씀대로, 뜨거운 것을 손에 쥐고 있어 괴롭다면, 그냥 놓으면 되는 것이다. 단계별 가이드 같은 것은 없다.


자아가 허상임을 깨달았다면, 다음에 할 일은 그저 현재를 사는 것이다. 더 좋은 말로 바꾸자면, 조건 없이 행복하면 된다. 


당신은 외부의 조건을 바꾸면 문제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외부 조건을 바꾸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한 적이 없다. 언제나 그 다음 문제가 일어난다. 진정하고 유일한 해결책은 ‘지켜보는 의식’이 됨으로써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40쪽)


법륜 스님이 늘 강조하는 것이다. 행복은 조건의 달성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라. 그 안전지대란, 몸에 박힌 가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울타리에 불과하다. 자아를 깨고 나오면 크나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사진: Unsplash의Hasan Almasi


때떄로 읽어보면 좋을 글귀들


아래는, 책 4~5부에 나오는 글귀들은 추린 것이다. 조건 없이 행복하기를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당신은 망망한 허공 속을 도는 한 행성 위에 있다. 당신은 여기에 단지 몇십 년을 머물다 떠날 것이다. 어떻게 매사에 열을 올리며 살 수가 있는가? 그러지 말라. (172쪽)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174쪽)


조건 없는 행복의 기술은 당신이 삶의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해 준다는 점에서 이상적이다. 그 할 일이란, 늘 행복하기 위해 자신을 놓아 보내는 것이다. (182쪽)


스트레스는 삶의 사건들에 저항할 때만 일어난다. 우리가 저항하는 일은 이미 일어났는데, 거기에 저항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185-186쪽)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 외에는 대처해야 할 것이 없음을 발견하게 되면 당신도 놀랄 것이다. (190쪽)


특히, 죽음에 관한 깨달음은 현재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어떤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언제든지 죽음을 생각해 보라. (195쪽)


평소 그들에게 품고 있던 자잘한 시기나 불평 따위에는 신경이나 쓰이겠는가? 그것이 그들과 함께 보낼 마지막 시간임을 안다면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줄 수 있겠는가? (196쪽)


죽음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다. 그것이 죽음의 실상이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바뀌어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은 사실 그다지 실제적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198쪽)


살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환자가 의사의 눈을 애처롭게 쳐다보며 이렇게 물어보는 것을 상상해 보라. ‘밖에 산책을 나가도 될까요? 한 번만 하늘을 더 쳐다볼 수 있을까요?’ 밖에 비가 온다고 해도 그들은 한 번만 더 비를 맞아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비를 맞기 싫어한다. 달려가거나 우산을 쓴다. (197쪽)


죽음이 모든 것을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사실은 깊은 평화를 가져다준다. 모든 것이 그저 시공간 속을 지나쳐 간다. 현명한 사람은 삶이란 결국 죽음에 속한 것임을 안다. 죽음은 때가 차면 당신에게서 삶을 돌려받으러 오는 자다. 죽음은 주인이고 당신은 세입자일 뿐이다. (202쪽)


타이틀 사진: UnsplashJohn 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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