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제이슨 펑, <당뇨 코드>
1~2주에 한 번씩 공복혈당을 잰다. 십중팔구 100을 넘긴다. 최근 10건 중 8번에서 100을 넘겼으니, 십중팔구 맞다.
체지방률이 10~11%이고, HDL이 90을 넘고, 16/8 간헐적 단식을 거의 매일 하고, 신체 활동 수준이 <매우 활동적>인데, 대체 왜 공복혈당이 높은 걸까?
별 걸 다 해봤다. 비타민 C가 혈당 수치를 높일 수 있다고 해서, 아침 비타민을 스킵하고 측정한 적도 있고, 혈당 수치를 낮춘다는 땅콩이나 식초도 먹어봤다. 그런데 혈당 수치는 그대로였다.
상복부 초음파를 해봐도, 간이 깨끗하다고 한다. 지방간이 전혀 없다. 요약하면, 높은 공복 혈당 수치를 제외하면 내게 당뇨 위험 인자는 없다.
그렇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높은 혈당은 현실이다. 혈당이 높으면 헤모글로빈에 당이 들러붙게 되고, 그렇게 당화된 헤모글로빈은 제 구실을 못한다. 그런데 내 심폐지구력은 20대 수준이고, 에너지 수준은 충분하다. 낮 시간에 졸리는 일은 1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다. 숫자 하나 때문에, 어쩌면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건 아닐까.
지방을 태우기 위해 필요한 단식 시간
24~36시간 단식 중에는 글리코겐이 신체 기능에 필요한 포도당을 모두 공급할 수 있다. (86쪽)
넘치는 혈당은 간에 의해 글리코겐으로 바꾸어 저장된다. 거기에서 더 넘치면 지방이 되어 쌓인다. 지방간, 췌장지방, 내장지방, 이소성지방... 그나마 체지방이 제일 낫다. 체지방은 쓰일 데가 있다. 당 떨어지면, 에너지로 전환된다. 언제 쓰이게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장기 사이에서 약간의 쿠션을 제공해주는 최소한의 내장지방을 제외하면, 다른 지방은 없는 게 정상이다. 괜히 "이소성" 지방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보기만 흉한 게 아니라, 이소성 지방은 인슐린 저항성의 주요 원인이다.
장기와 장기 주변에 쌓인 내장지방은 높은 인슐린 저항성의 주요 원인이다. 인슐린 저항성이 드러나기 전에 많은 경우 간에 처음으로 지방이 쌓이기 시작한다. (115쪽)
생각보다 글리코겐 저장량은 꽤 넉넉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철인 3종 경기 같은 걸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넉넉한 저장공간을 넘기는 수준으로 뭘 먹는 일을 일상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글리코겐 창고가 다 차면, 모두가 좋아하는 지방이 등판한다.
다행인 것은, 지방이 쌓여 베타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는 "지방췌장"은 복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 지방췌장에서 지방을 제거하자 베타세포에서 정상적으로 인슐린이 흘러나왔다. 지방에 의해 베타세포가 파괴된 것이 아니라, 그저 인슐린 통로가 막혔을 뿐이다.
중성지방과 LDL
간에 글리코겐이 가득 차면 지방신생합성(DNL)으로 새로 생성된 지방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이 중성지방 분자는 간에서 만들어져 초저밀도지단백질(VLDL)이라고 하는 특수 단백질과 결합하여 혈중으로 방출된다. 인슐린은 지단백질지방분해효소(LPL)를 활성화하여 멀리 있는 지방세포에 신호를 보낸 뒤, VLDL에 포함된 중성지방을 꺼내 지방세포 내에 장기 저장하게 한다. (87쪽)
위 단락은 탄수화물 섭취가 지방 축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혈중 콜레스테롤 구성이 변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즉,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넘치는 포도당을 간이 다른 물질로 바꾼다. 처음에는 글리코겐, 그다음에는 중성지방이다. 지방간이 심해 중성지방을 더 쌓을 공간이 없어지면, 간은 그걸 VLDL에 실어 신체 곳곳으로 수송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VLDL-c 수치와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증가한다.
일반적인 혈중 콜레스테롤 검사에서 VLDL 수치는 확인할 수 없다. LDL 값이 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실제로 측정한 값이 아니라 (초등학교 수준의) 방정식을 풀어 나온 근사값이다. 따라서 LDL 수치는 그냥 무시하는 게 좋다. 대신, 중성지방 수치를 확인하자. 중성지방 수치는 실측값이다.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높다는 말은 그야말로 혈액 내에 중성지방이 많이 떠다닌다는 얘기다. 왜? 간에 지방을 더 쌓을 공간이 없어서다.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사람의 간은 이미 푸아그라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혈중 콜레스테롤 검사에 중성지방 수치와 LDL 수치가 다 나온다는 얘기는, 핏속에 중성지방과 LDL-c가 다 존재한다는 얘기다. 즉, 중성지방이 LDL-c에 의해 운반되기도 하고, 그냥 떠다니기도 한다. 택배 박스가 운반 차량에 실려 있기도 하지만, 그냥 길에 나동그라져 있기도 하다는 얘기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LDL-c는 중성지방 여러 분자를 포함하는 거대 구조물이다. 무거워서 혈관에서 떠다니지 못하고 기어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혈관벽에 쌓이기 쉽다. 택배 차량이 버려진 택배 박스보다 위험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중성지방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메트포르민
메트포르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처방되는 제2형 당뇨병 약물이다. 이 약은 인슐린을 증가시키지 않고 그 대신 간에서 포도당을 생성(포도당신생합성)하지 못하게 하여 혈당을 감소시킨다. 인슐린 증가 없이 제2형 당뇨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하므로 체중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88쪽)
메트포르민 같은 약은 처음 봤다. 대개의 약은 증상만 고치려 한다. A -> B -> C로 이어지는 연쇄가 있다고 할 때, 대개의 약은 앞의 A, B를 그냥 놔두고 C만 고치려 한다. 당뇨 환자에게 인슐린을 투여하는 경우라든가, 고콜레스테롤 혈증에 스타틴을 처방하는 일이 딱 그렇다.
메트포르민은 A까지는 아니어도 B를 조정하여 C를 고치려 한다. 수치 조작을 하는 대신, 포도당신생합성을 방해한다. 물론 이 또한 몸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어떤 대가는 따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가 다른 약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다만, 실험 결과에 따르면 메트포르민은 혈당을 많이 낮추지는 못한다.
혈당 감소는 보통이었지만 심혈관 결과는 훌륭했다. 메트포르민은 놀랍게도 당뇨병 관련 사망을 42%, 심장마비 위험을 39%로 줄여, 더 강력한 혈당강하제들보다 효력이 훨씬 높았다. 다시 말해, 어떤 종류의 당뇨병 약을 복용했는지가 큰 차이를 만들었다. 메트포르민은 다른 약과 달리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혈당 저하 효과와는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167쪽)
왜 혈당을 충분히 낮추지 못할까? 메트포르민 복용자들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메트포르민은 포도당 신생합성만 막을 뿐이다. 즉, 메트포르민으로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지방을 너무 많이 먹어 포도당신생합성이 활발한 사람들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공복혈당이 꾸준히 높게 나오는 내가 그런 경우인 듯하다. 나는 식후 12시간이 넘은 상태의 공복에서 아침 혈당을 재는데, 앞서 말한 대로 십중팔구 100을 넘긴다.
원인은 지연성 탄수화물 아니면 지방인데, 나는 지방을 많이 먹으니 지방 과다 섭취로 인한 포도당신생합성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메트포르민은 나 같은 경우에 딱인 약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당뇨전단계 환자에게 메트포르민 처방은 허용되지 않는다.
약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돈이면 다 되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보니, 당뇨병 연구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니 당연하다. 당뇨병 치료제는 작동 방식만 해도 다양하다. 몇 개만 살펴보자.
- 메트포르민 - 부작용은 별로 없다. 심혈관계 사망 위험을 크게 낮춘다. 혈당 감소 효과는 그럭저럭.
- 인슐린 - 말도 안 되는 처방. 간을 보호할지 모르나, 다른 모든 세포(장기)를 위험에 빠뜨린다. 인슐린 저항성도 당연히 더 높인다.
- SGLT2 억제제 - 신장의 포도당 재흡수를 막아 포도당이 빠져나가게 한다. 사망 위험과 신장병 위험을 크게 낮춘다. 체중이 빠지는 (신나는) 부작용도 있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케톤산증 위험의 증가. 2017년 기준, 처방이 크게 늘고 있다.
- 아카보즈 (알파-글루코시다아제 억제제) - 탄수화물 소화 효소 차단. 당연한 결과로 복부 팽만 부작용.
- GLP-1 유사체 - 인크레틴 호르몬 효과 모방. 음식에 대한 인슐린 반응과 포만감을 높이고 위장의 운동성을 낮춘다. (인슐린 분비를 미세하게 증가시키지만 다른 효과에 묻혀 체중은 오히려 감소한다.) 당연한 부작용이 구토와 메스꺼움이다. SGLT2 억제제나 아카보즈보다 효과가 약하다.
저자의 결론은 간단명료하다. 인슐린과 체중이 감소하면 좋은 약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약이다. 따라서 아카보즈, SGLT2 억제제, GLP-1 유사체는 좋은 약이고, 메트포르민은 중립적이며, 나머지는 나쁘다.
그러나, 식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약으로 해결하려 하는가? (왜는 왜야, 먹는 거 자제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그렇지.) 일단 식사 조절을 해보자.
아주 기본적인 처방
간헐적 단식도 하고, 탄수화물 섭취 자제하고, 지방도 단백질도 질 좋은 것으로 챙겨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잠도 잘 자고, 스트레스 받지 않게 퇴사까지 하면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 모든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뇨병 산업이 짭짤한 초거대 산업이 된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저자 제이슨 펑은 그래서 딱 세 가지만 지켜보자고 제안한다.
#1 과당을 피하라.
#2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려라.
#3 진짜 음식을 먹어라.
탄수화물 섭취가 높을수록 반드시 인슐린 수치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정제와 가공이 인슐린 효과를 높이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 (224쪽)
과당을 피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액상과당이나 설탕이나 결국 반 이상은 과당이다. 설탕은 성분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당은 훨씬 어렵다. 다양한 이름이 동원되고 있어서다. 시판되는 소스와 드레싱에는 설탕이나 과당이 거의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과일도 적당히 먹어야 하고, 대체 감미료도 일단은 조심하는 것이 저자의 충고다.
그런데 제이슨 펑은 간헐적 단식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간헐적 단식은 어디 있나? 저자는 위 3가지 원칙 다음에 4번째 원칙을 제시하는데, 그게 바로 간헐적 단식이다.
간헐적 단식보다는 과당, 정제 탄수화물을 피하고 좋은 지방과 진짜 음식을 먹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보다. 찔리는 이야기다.
내 혈당은?
요약해 보자. 인슐린 저항성은 당뇨병과 그 친구들을 불러온다. 인슐린 저항성의 주요 원인은 이소성 지방이다. 이소성 지방의 대표주자가 지방간이다. 인슐린 저항성에 따른 증상들이 나타나기 한참 전에, 지방간이 먼저 나타난다.
지방간은 간에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킨다. 같은 방식으로 지방 근육은 골격근에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킨다. 고인슐린혈증이 있으면 골격근 안에 과다한 지방과 포도당을 강제로 밀어넣는다. 골격근이 꽉 차면 인슐린이 더는 안으로 밀어넣지 못한다. 이것도 앞에서 설명했던 것과 같은 넘침 현상이다. 골격근은 크기가 매우 커서 몸 전체의 인슐린 저항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122쪽)
그러니까, 지방간이 없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얘기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지방간이 관측되지 않는 나는 안전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내 혈당은 대체 왜 높은 걸까? 앞서 말한 대로, 지방 과식의 영향인 것 같다.
아는 게 힘(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말도 있고, 아는 게 병(우리나라 속담?)이라는 말도 있다. 선사 시대 우리 선조들은 당뇨나 암을 걱정하지는 않았겠지만 (걸릴 가능성도 없지만, 몰라서), 하늘이 무너질 가능성은 걱정했을 것이다. 또, 중용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