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아리랑>을 읽고 있다. <태백산맥>을 읽은 지 1년 반쯤 된 것 같아 집어 들었다.
역시 조정래. 대하소설이란 장르에 관해서는 과연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드라마를 연출하는 그의 능력은 과연 탁월하다.
조정래는 역시 대하소설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대하소설이 뭘까 검색을 했다.
수많은 인물, 긴 시간, 다양한 사건, 역사.
대하소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러나, 대하소설의 정의는 "분량"에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roman-fleuve, 말 그대로 "강 (같이 흐르는) 소설"이다.
10권 정도 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7권을 커트라인으로 잡으면 될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읽은 대하소설은
삼국지
대지 3부작
수호지
듄
은하영웅전설
해리 포터 시리즈
태백산맥
고구려
정도이니, 많지 않다.
나무 위키에 실린 대하소설 목록으로 세면 조금 더 나온다.
차일드44
빨강머리 앤 (속편까지 읽었으니)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레미제라블
돈키호테
백 년의 고독 (1권인데??)
그런데 정말 분량이 기준이라면, 웬만한 웹소는 다 대하소설이다.
계속 읽게 하는 애착
대하소설의 묘미는 역시 등장인물과 함께하는 시간에 있다. 영화에 비해 장편 드라마가 가지는 장점과 같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애착을 가지고 지켜보던 인물이 퇴장하면 큰 충격을 받기도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덤블도어, <은하영웅전설>의 키르히아이스와 양웬리, <레미제라블>의 가브로슈가 그런 경우다. (스네이프, 라인하르트, 장 발장은 주인공급이고, 결말부에 이르러 죽기 때문에 충격이라기보다는 여운이다.)
<삼국지>에서는 관우, 유비, 제갈량의 죽음이 비중 있게 그려지는데, 제갈량의 죽음 시점에서 소설을 끝내버리는 버전이 존재할 정도다.
<신조협려>에서 양과의 팔이 잘릴 때 책을 집어던진다는 사람들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나도 마찬가지다.
<워킹 데드>는 시즌 7에서 글렌 리가 사망하고 나니 더는 보기가 싫어졌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에서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세트로 정리될 때는, <수호지>의 끝부분이 떠올라서 기가 막혔다.
그런 의미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미완성인 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드미트리가 잡혀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는데, 이반이나 알료샤가 죽기라도 하면 충격이 장난 아니었을 것 같다.
마이클 싱어는 관찰 대상에 너무 몰입해서 애착을 가진 결과, 우리가 그 관찰 대상을 자아라 착각한다고 말한다. (부처님 말씀을 쉽게 풀어쓴 것이다.)
대하소설, 장편 드라마의 등장인물에 대한 애착을 보면, 과연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내 팔이 아니고 양과의 팔이 잘렸는데, 책을 왜 집어던지는 걸까?
애착이 가는 주인공은 꽃길만 걷고, 좋은 일만 겪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웹소는 과연 대하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