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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위쪽 공기는 어때요?

[책을 읽고] 황정아, <우주날씨 이야기>

by 히말

"다지선다 중에서 벌어지는 단기간의 상황 변화"라고 날씨를 정의한다면, 우주에도 날씨가 있다. 날씨라는 단어 자체가 그런 것 같다. 인류가 날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농업과 어업 때문이었을 것이고, 날씨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답은 go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대기권 아래에서 벌어지는 날씨가 주로 물과 태양광에 관한 것이라면, 우주날씨는 주로 입자와 전자기파, 그리고 자기장에 관한 것이다. 자기장이 포함되는 이유는, 물에 비해 현저하게 가벼운 입자와 전자기파가 자기장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미국 해양대기청의 우주날씨예보센터NOAA Space Weather Prediction Center, NOAA/SWPC는 우주날씨의 세 가지 요소 각각을 지수로 만들었다. 태양에서 나오는 엑스선의 세기를 지수로 만든 전파폭풍Radio Blackout 지수 R(전파), 태양에서 나오는 양성자의 개수를 지수로 만든 태양 방사선폭풍Solar Radiation Storm 지수 S(입자), 지구에 도달하는 지자기폭풍Geomagnetic Storm 지수인 G(자기장)다. (89쪽)


왜 E(Electromagnetic waves, 전자기파), P(Particles), M(Magnetic field)로 하지 않고 R, S, G로 명명해서 헷갈리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먼저 이름을 지었으니 불평해야 소용없다.


662602main_heliosphere-MOS_full.png 출처: NASA


태양풍


우리는 태양계에 살고 있는데, 달리 말하면 태양권(helioshere)이라는 거대한 거품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태양권은 태양풍이 외풍보다 강한 권역이다. 태양은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젊은 별이고, 태양을 구성하는 물질 역시 다른 곳에서 온 것들이지만, 현재 태양권 내의 물질은 거의 전부가 태양에서 기인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태양은 태양계 질량의 99.85%를 차지한다. 우리가 관심 가지는 우주날씨는 지구 주변의 것이므로, 주인공은 지구와 지구에 쏟아지는 것들이다. 지구에 쏟아지는 것들의 대부분이 태양에서 기원한 것임은 당연하다.


흑점 주기는 태양 활동 주기와 비례하는데, 태양 활동 수준에 따라 우주날씨의 변화무쌍함도 영향을 받는다. 엘니뇨나 라니냐와 마찬가지로, 흑점 극성기(태양활동 극성기)에는 더욱 극단적인 우주날씨가 나타날 수 있다. 흑점 주기는 대략 11년으로, 2023년 현재는 극소기에서 극성기로 옮겨가는 중이다.


오로라는 태양풍과 자기장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인데, 태양 쪽이 아니라 태양 반대쪽에서 주로 나타난다. 태양풍을 맞받는 방향에서는 자기장도 너무 강하기 때문에, 막강한 태양발 입자들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오로라를 설명하는 통설은 이렇다. 태양 반대 방향의 약한 자기력선이 합쳐지는 부분에서 태양풍 입자들이 자기력선을 따라 지구까지 흘러오다가 산란한다는 것이다. 자기력선이 합쳐진다는 얘기는 좀 황당하지만, 아무튼 현재 다수설은 이거다.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우주날씨와 관련한 많은 현상의 기전을 아직 인류가 모른다는 점이다. 오로라는 물론이고, 밴 앨런 벨트의 내측과 외측이 왜 분리되어 있는지도 우리는 모른다.


johny-goerend-x3WQMj5QkEE-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ohny Goerend


지구


(과학자라기보다 기업가인) 마르코니가 무선 통신에 도전했을 때, 많은 과학자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파를 쏘면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마르코니는 성공했다.


존재도 모르던 전리층 덕분에 마르코니는 횡재했다.


단파 무선 통신이 가능한 이유는 단파가 전리층에 반사되어 지표면을 향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전리층 입자들은 플라스마와 전자인데, 태양 활동의 결과이고, 따라서 밤에는 입자 수가 줄어든다. 그런데 단파 통신은 오히려 밤에 더 잘 되는데, 입자 수가 줄어든다고는 해도 전리층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낮에는 D, E, F층이라는 서로 조금씩 다른 성질의 전리층이 전부 존재하지만, 밤에는 F층만 빼고 거의 사라진다. 전리층이 단순해지니 통신 감도가 훨씬 좋아지는 것이다.


전리층은 중간권에서 열권에 걸쳐 있다. 참고로 오존층은 성층권에 있다.


위성 통신은 훨씬 더 짧은 (따라서 진동수가 심하게 높은) 전자기파를 사용하므로 전리층 따위와는 상관하지 않고 날아간다. 전리층 교란은 받지 않지만, 당연히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위성에서 받아 다시 지상으로 쏴줘야 한다.


이렇게 우주로 날아가는 "매우 규칙적인" 전자기파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것을 보면 과연 우주는 광활하다. 물론 위성 통신 이전의 단파 통신도 우주로 잘만 날아갔다. 전리층이 전부 다 튕겨낼 수는 없는 법이다.


origin.jpg Kessler Syndrome (출처: IEEE)


인간과 우주날씨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를 야기하듯, 우주날씨도 인간 활동에 영향을 받는다.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우주 쓰레기다. 케슬러 신드롬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단파 라디오나 듣는 시대로 돌아가 살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케슬러 신드롬이 실제로 벌어지려는 상황이 발생해도 인류는 그저 가만히 있다가 재앙을 맞을 것 같다.


우주 쓰레기의 주재료는 인공위성이다. 저궤도 위성과 고궤도 위성 중 어느 쪽이 수명이 짧을까? 태양과 더 가까운 고궤도 위성일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저궤도 위성의 수명이 더 짧다. 자전 속도가 빨라 태양과 더 자주 마주치기 때문이다. 태양풍을 맞아 삭아서 수명이 짧아지는 건 아니고, 태양전지가 충전과 방전을 더 자주 하다 보니 배터리 수명이 짧아져서다. (그러나 허블 망원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중요한 위성은 기워서라도 더 오래 쓰게 된다.)


수명은 배터리가 좌우하지만, 인공위성 제작비는 껍데기가 좌우한다. 방사선 차폐를 위해 위성을 감싸야 하는데, 알루미늄을 두껍게 코팅하려면 생산 단가가 미친 듯이 올라간다. 그래서 위성용 전자제품은 지상용 전자제품에 비해 100배 내지 1,000배 비싸다고 한다.


알루미늄의 녹는 점은 상대적으로 낮으므로, 위성이 지구로 떨어질 때 이 비싼 껍데기는 대부분 타 없어진다. 반면, 티타늄이나 스테인레스강으로 만드는 연료탱크는 대기권을 견디고 지표면에 도착할 확률이 높다.


북극은 자기력선이 열려 있어서 우주 방사선이 쏟아지는 편이다. 북극 항로를 비행할 때 비행기는 훨씬 더 많은 방사선을 맞는다. 북극 항로를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이야기다.


미국 동부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비행편이 주로 북극 항로를 이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파일럿이나 승무원이 아니라면 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북극 항로의 방사선 피폭은 북태평양 항로에 비해 15% 높은 정도라고 한다.


andy-holmes-LUpDjlJv4_c-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ndy Holmes


사족 하나


책 말미에서 오르트 구름이 상상 속의 산물이라는 언급을 보고 검색을 해봤다. 정말이다! 아직도 오르트 구름이 확인되지 않았다니. 20년 전에 알지도 못하는 어느 교수님께 오르트 구름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메일로 던졌었는데, 당시 교수님이 꽤 당황하셨을 것 같다. 오르트 구름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보이저 형제가 그곳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300년은 더 가야 한다. 오르트 구름을 벗어나는 데는 3만 년이 더 필요하다.


사족 둘


책에 등장하는 <코어>라는 영화를 유튜브에서 찾아봤는데, 어이가 없는 수준의 영화다. 맨틀을 마구 뚫고 들어가는 탐사선이라니, 하하하. 드라마에 가짜 역사가 자꾸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상식 밖의 영화 때문에 과학이 대중과 더 멀어지는 것도 문제다.


사족 셋


태양의 적색 거성 단계는 약 6억 년간 지속될 것으로 계산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때까지 인류가 살아남는다 해도, 어찌어찌 적응하며 상당히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주적 스케일에서 정말 먼지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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