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긋기] 송기숙, <녹두장군>
이 위대한 소설에 대해 내가 감히 할 말은 없다. 다만, 나중에 여운을 느껴보고자 인상 싶었던 구절들을 적어본다. 전자책이라 쪽수 표기는 어차피 정확하지 않아 생략한다.
녹두장군 1권
동학이라는 좌도左道 - 좌우라는 개념이 우리말에서도 이런 뜻이로 쓰이다니.
"전 접주님이 그렇게 산을 싸다니시다가 그랬던지 장성 갈재서 갈재 두령님하고 맞닥뜨렸던 모양이야. 칼을 휘두르며 그 봇짐을 풀어노라고 호령을 했겠지. 그러자 전 접주님께서 되레, 깡 불호령을 내렸어. 이 불한당 놈들, 그쯤 허우대가 멀쩡한 놈들이 기왕에 이런 길로 나섰으면 백성 늑탈하는 관가 봉물을 털든지, 못난 놈 괴롭히는 양반놈들한테 칼끝을 겨눌 일이지, 기껏 액색한 행인들 때 묻은 봇짐이나 노린단 말이냐? 이렇게 호령을 하시자 그 기가 얼마나 드셌던지 갈재 두령님이 그만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절을 했다는 거야. 세상을 객기 하나로 살아오신 갈재 두령님이 얼마나 기가 질렸으면 칼 든 사람이 맨 손 앞에 무릎을 꿇었겠냐?”
녹두장군 2권
"나는 호랑이 같은 분인 줄 알았더니 인자한 어머니 같네요.” - 전봉준을 처음 만난 사람의 소감.
"외적들이 쳐들어오면 있는 자들은 돈을 싸가지고 승지를 찾아 도망을 쳤지만, 밑바닥 백성은 도망치자도 도망가서 살아갈 마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당했지요. 사실은 백성이 가만히 앉아서 그냥 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있는 자들이 다 도망친 뒤에 남아서 제 사는 터전을 지켜 외적과 싸웠습니다. 여말 몽고군들이 쳐들어왔을 때 그랬고, 임진왜란 때나 병자호란 때도 다 그랬습니다."
"하늘같이 귀한 당신이 남을 괴롭히는 천한 짓을 한다면, 그것은 당신 스스로가 스스로를 그만큼 천하게 만드는 짓이오." - 인내천
"이 사람들은 동학도이기 전에 이 나라 백성입니다."
녹두장군 3권
임진왜란 뒤부터 도망노비가 급증하는 반면 자연증가 이외에는 노비가 생겨나는 일이 드물어 전체적으로 노비 수가 줄고 있었는데, 버린 아이를 구하는 길로 이런 법이 마련되자 노비가 생겨나는 새로운 제도가 생긴 셈이었다. - 버려진 아이를 노비로 만드는 조선의 혁신
녹두장군 4권
"아까 좌수께서 수령을 고을의 어버이라 하셨는디, 나는 수령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수령이 고을 사람들의 어버이라면, 선정을 베풀어 어버이처럼 고을 사람들 고통을 덜어주어야 할 것인데, 요사이 수령들치고 백성의 고통을 덜어준 사람이 어디가 있소? 당장 이 고을 사또만 하더라도 그런 치적이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 보시오. 내가 모르는 그런 치적이 있는가 한번 들어봅시다.” -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 고대 그리스에 태어났다면 변론으로 이름 날렸을 듯.
"백성의 고혈을 짜는 그런 일에는 뜻을 같이할 수 없으니 이 자리에서 나가겠소. 수령을 어버이로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부조를 하든지 조문을 하든지 알아서들 하시오.” - 조병갑의 부조를 거부하는 전창혁.
"살림을 불려나갈 때도 순서가 있다 이 말이네. 금년 농사지어서 걷어들인 것이 웬만하거든 집칸부터 마련하게." - 조선 시대에도 자산 마련은 부동산부터
"내 이미 당신의 강퍅한 성미를 알고도 소두로 나설 때는 죽음을 각오한 터이오. 지난번 당신 내간상 때 민부전 거출에 반대할 때부터 당신의 이런 보복을 각오했소이다." - 보복하는 조병갑에게 할 말을 하는 전창혁
"하늘은 벼락 뒀다가 어디다 쓸라고 저런 놈들을 보고도 겨울이고 여름이고 늘 파랗기만 한지 모르겄어.” - 고통 속에서도 이런 해학이
“그는 빈한하여 한때는 서당 훈장으로 생계를 도모하기도 하였사오나, 산서나 의서 등 술서를 많이 읽어 그 지방에서는 지관으로 이름을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침도 잘 놓고 화제도 곧잘 내는데, 그런 일을 해주고도 사례 같은 것은 전혀 불고하는 터라 유독 가난한 사람들한테 널리 인심을 얻고 있사옵니다. 그는 백성이 관아에 소청할 일이 있으면 기탄없이 장두를 섰기 때문에 고부 장두 중에 우두머리로 꼽혀왔사옵니다. 얼마 전에는 그 부친이 고부 군수 조병갑 나리 모상 때 민부전 까탈로 분란이 생겨 군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고 그 장독으로 죽은 일이 있사옵니다. 그 상을 당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사옵니다.” - 인물 전봉준 소개
4월 2일 새벽, 최시형은 내정의 부패와 외세의 침략에 대한 울분을 안은 8만여 명의 군중을 뒤로 하고 깜깜한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인내천을 기본사상으로 후천개벽을 부르짖어 만백성에게 변혁의 찬란한 꿈을 안겨주었던 동학은 최시형의 이 발걸음으로 백성의 꿈과는 한참 다른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 남접과 북접의 대립. 이후에 더욱 격화되고 만다.
녹두장군 5권
민영준은 평양 감사로 있을 때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고종한테 바친 뒤로 고종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전임 감사도 고종한테 금덩어리를 자주 바쳐 신임을 얻고 있었는데, 민영준이는 내려가자마자 대뜸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바쳐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고종은 입이 바지게가 되며 전임 감사를 도적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민비가 언니라고까지 받드는 진령군
교조 최제우가 최시형에게 법통을 정하면서 최시형에게 ‘북접주인’이라고 했으므로 그러면 북접에 대응하는 남접주인은 누구냐는 것이 지금까지 전 교단의 수수께끼가 되어오고 있었으며, 그것이 교도들 사이에서는 항상 심심찮은 화젯거리였다. 그런데 여태 김개범金介範이라고 불려오던 그가 갑자기 김개남으로 이름을 고쳤다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꼭 뺏긴 것이 있고 뜯긴 것만 있어사 나선가? 사람이먼 안 나서는 사람 없이 다 나서는디 나는 사람이 아녀?” - 왜 나서냐는 아내의 말에 대한 강쇠의 대답
녹두장군 6권
"임금도 하늘의 밥을 빼앗아 먹는 놈이니 쳐죽여 버려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게 해야 합니다. 임금과 하늘의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명분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이 길밖에 없으며 그런 생각이 머리에 박힐 때 거기서 나온 용맹이라야 진짜 용맹일 것입니다.” - 손화중의 말. 왕을 놈이라 지칭하는 사람이 나오게 한 것은 과연 고종(과 민비)의 업적이라 할 만하다.
판소리 〈적벽가〉 사설은 영웅들이 아니라 그 영웅들의 희생물이 되고 있는 밑바닥 군사들을 주체로 그 시각을 완전히 뒤집어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 엄청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녹두장군 7권
“군사들 수도 수지마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문젭니다. 남무영 병졸이나 전주 영병들은 신식 총을 가졌습니다. 신식 총은 4,5백보도 더 나갈 뿐만 아니라 화승총 한 발 쏘는 사이에 10여 발을 쏠 수가 있고 정확하기가 4,5백보 거리에 있는 참새도 떨어뜨린다고 들었소.”
전봉준은 전에 남원 임진한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백성을 위해서 언제든지 목숨을 내놀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마는, 백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어날 때는 구름같이 일어나지만, 무너질 때는 쥐구멍을 찾기에 바쁩니다. 그 꼴은 너무도 비참합니다.’
이용태는 고부 농민군을 잡기 위해서는 역졸이라는 인간 짐승의 모든 악마적인 속성 하나만을 칼날처럼 세워 사람 잡는 사냥판에 개로 내몰아버렸던 것이다.
"십 년 전에 이용태 같은 놈을 죽였다고 생각해 보게. 이용태가 지금 저 짓을 하겠는가? 똑같은 이치로 앞으로 10년, 50년, 100년을 생각해 보게." - 월공의 말
녹두장군 8권
순창 군수 이성렬은 이사문 말마따나 요사이 수령치고는 별종이었다. 백성 늑탈은커녕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뒤주까지 벌려 백성 형편을 낱낱이 살펴보며 휼미와 환곡을 적절히 풀었다. 수령들이 백성을 늑탈하는 것은 제 뱃속도 뱃속이지만, 위에다 돈을 바쳐 자리보전을 하자는 것인데 저런 사람이 어떻게 자리를 보전할까, 백성이 엉뚱한 걱정까지 할 지경이었다. 나라꼴이 제대로라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요사이 수령치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이성렬 소문은 전라도 일대에 좍 퍼지고 있었다. - 의외로 이런 사람들도 꽤 등장한다
녹두장군 9권
조병세는 근본 원인은 그동안 백성한테 쌓인 원한과 울분이라고 사건의 핵심을 꼬집어서 말한 것이다. 이런 정도의 말이나마 임금에게 곧이곧대로 한 사람은 여태까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동학은 사람 차별 않는 것을 신행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웠지만 그게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민들도 종이나 백정 등 천민들하고는 어울리기를 싫어했고 천민들도 상민들하고 섞이기를 싫어했으므로 부대를 따로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
농민군들이 별호로 부른 사람은 녹두장군 전봉준과 장태장군 이방언뿐이었다. - 장태로 총을 이긴 이방언
“이놈들아, 그런 같잖은 위세는 썩은 수령들한테나 부려라. 우리는 지금 그 윤음을 보낸 조정의 군대하고 전쟁을 하고 있는 의군들이다. 허튼 수작 작작하고 윤음인가 잠꼬댄가 그것이나 내놓고 가거라.” - 고종의 사신 이효응에게 대갈하는 김개남. 김개남이 이효응의 목을 치는 장면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 중 하나다. 이로 인해 농민군 사이에서 김개남의 인기가 치솟는다.
"알든 말든.” 허수아비 같은 작자가 알든지 말든지 무슨 소용이냐는 소리 같았다. - 고종을 무시하는 민비
녹두장군 10권
"백성과 나라를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 군대를 불렀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라 했다고 불한당을 불러 자식을 죽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부모겠습니까?" - 김개남. 프랑스 대혁명 혁명가들 중 에베르 내지 생쥐스트를 보는 듯하다.
이번에 이용태를 죽이면 열 명 나올 이용태가 다섯 명만 나오제마는, 안 죽이면 열 명 나올 이용태가 스무 명, 서른 명 나오요. 우리 후손들이 또 저런 놈한테 안 당하고 살게 할라면 저런 놈은 꼭 죽여사 쓰요."
“그이가 숨을 거둠시로 누님들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합디다. 집이 가난해서 누님들은 굶고 있는데, 외아들이라고 자기한테만 밥을 주면 그것을 넓죽넓죽 먹은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내 손을 잡고 꼭 그 말을 누님들한테 가서 전해달라고 해서 이러고 왔소.” - 농민군 나갔다 죽은 이쪼르르의 유언을 전하는 연엽
"그분이 바로 여기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면서 지었다는 〈애절양哀絶陽〉이란 시를 알고 있습니다." - 농민 달주가 다산의 <애절양>을 알고 있다.
녹두장군 11권
"조정 대신들이란 자들은 자기들 감투밖에 모르는 강도들이고 임금은 그 강도들 물주입니다."
"판서 발령 난 것이 경복궁 사건이 있었던 다음날인 지난 22일인데 그걸 마다하고 장군님한테 만나자는 글을 보낸 것이 28일이었습니다. 병조판서라면 보통 자리가 아닌데 그런 점에서 보면 김학진이에게는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 김학진이라는 비범한 인물. 김학진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고종에게 편의종사를 요청해서 받아냈고, 농민군이 일본군과 싸울 때는 후방 지원에 힘을 쏟았다. 나중의 행적은 안타깝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근대사에서 이 정도로 사람 구실한 관리가 있을까.
"지금 전라도를 호령할 실권은 장군한테 있습니다. 장군께서 오늘부터 여기 선화당宣化堂에 앉아 그 실권을 행사해 주십시오. 선화당을 장군께 비워드리고 이 사람은 다른 데로 나앉아 장군께서 하시는 일을 거들어드리겠습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관의 체통도 있고 농민군의 개혁이 합법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서 고을에 감결을 내릴 때는 이 사람 이름도 같이 써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 전봉준에게 실권을 양도하는 김학진
봉건제도의 핵심인 토지문제에 양측이 합의를 이루었다는 것은, 농민군과 개혁파가 개혁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연합과 합력·동맹 관계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비록 전봉준과 김학진 사이에서 이루어진 일이지만 이런 합의는 이런 개혁의 가능성이 바로 현실적으로 실재한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엉뚱한 풍설이 나돌고 있었다.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 있는 김옥균 동생 김각균金珏均이 감옥에서 탈출, 농민군에 들어가서 전봉준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김각균은 그의 형에 못지않은 인물이라며 전봉준은 이제 날개를 단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김옥균 관계 풍설은 지난 봄 농민군들이 황토재 싸움과 황룡강 싸움에서 이겼을 때도 나돈 적이 있었다. 죽은 김옥균 혼이 농민군 속에 나타나 농민군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상해에서 암살당한 김옥균 시체를 국내로 들여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한 다음 전국을 순회하며 효수를 하고 있을 때였다. - 농민군 사이에 떠도는 소문. 농민군 사이에서 김옥균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갈림길에 이르렀다. 전봉준은 고부 쪽을 한번 보고 나서 곧장 길을 걸었다. 달주는 가슴이 툭 내려갔다. - 사사로운 길을 버리고 모두를 위한 길을 가는 전봉준
“이 들판이 바로 옛날 백제군과 신라군이 싸운 황산벌입니다. 백제군과 신라군은 그때 이 황산벌에서 싸웠지만, 우리 북접과 남접은 오늘 바로 그 황산벌에서 손을 잡았습니다. 우리 앞날에 서광이 비치는 징조입니다.” - 북접 손병희와 남접 전봉준의 만남
녹두장군 12권
"장기 이치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쪽에 가만히 있는 말은 아무 구실도 않고 그냥 죽어 있는 것입니까?” 전봉준 말에 두령들은 머쓱해지고 말았다. 정말 그렇구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만약에 김개남 장군이 그 사이 나가서 싸우다가 허망하게 패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난번 우리가 능티에서 물러났을 때 그가 나가서 그 꼴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오늘 이리 와서 싸워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 김개남을 이해하는 전봉준
성질이 급하고 과격하기로 소문난 김개남이 악역을 자임하고 전국의 판세를 유지하려고 지금까지 꾹 참아온 것이다. 그 고독을 17일 동안이나 견디고 있다가 이제 패할 것이 빤한 전쟁마당으로 나가는 김개남의 비장한 모습이 덩실하게 떠올랐다.
"우리가 당하는 것 너무 한탄 마십시오. 우리 후손들 대에는 틀림없이 백성의 세상이 옵니다. 가정 하나를 바로잡자 해도 힘이 드는데 세상을 바로잡기가 쉬운 일이겠습니까?” 전봉준은 숭늉을 마시며 천연스럽게 말했다. - 압송되는 중에 여각에서 식사를 한 후 전봉준이 주모에게 하는 말
“아이고, 달주 대장님 아니시오? 만득이 대장님이 죽었소.”
만득이 부하가 달려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달주와 김승종과 다른 젊은이들이었다. 일행은 만득이 내외 시체 곁으로 갔다. 부축을 받고 오는 사람은 묵촌 이또실이었다. 모두 말없이 내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내 달주가 내외 곁에 무릎을 꿇었다.
“당신들마저 가고 말았구려!”
달주는 내외를 쓸어주며 속삭이듯 말했다.
“천하게 태어났지만 귀하게 돌아가셨소. 잘들 가시오.”
달주는 띄엄띄엄 말했다.
“전봉준 장군께서 우리는 죽어서 백성의 가슴에 묻힌다고 했소. 우리부터 당신들을 가슴 한가운데 깊이 묻고 고이 안고 가리다.”
김승종이 한마디 했다. 달주가 일어서며 길을 재촉했다. 조금 가다가 보성 쪽으로 빠지자고 했다. 달주는 꽹과리를 옆구리에 차고 손에는 아직도 꽹과리채를 들고 있었다. 일행은 구름에 달처럼 바삐 길을 재촉했다. 언뜻언뜻 비치는 달빛 아래 진눈깨비가 세차게 흩날리고 만득이 부하가 멘 작두칼은 유난히 날카롭게 번뜩였다. - 엔딩 장면. 이후에 이들에게 닥칠 비극을 생각하면 원통한 마음을 이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