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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30. 화염 정령

by 히말

박충기의 리드에 따라, 공격대원들은 지옥불 호수에서 떨어져 뒤로 후퇴했다.

멀리 아래로 보이는 지옥불 호수.

온통 불바다인 그 호수 위를 돌아다니는 화염 정령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마리를 잡는 것도 꽤 힘들었으니, 모두 겁을 집어먹기에 충분했다.


“잠깐, 여기서 정비를 하고 움직입니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다시 내려온 공격대는 앉아서 쉬었다.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았지만, 조슈아 나무는 그늘이 풍성한 종류가 아니다.

두 시를 향하는 태양은 강렬하게 그들 위로 내리쬐었다.


상황을 미리 아는 것처럼 대응하는 이준기를 사람들은 이미 목격했다.

말이 먹힐 상황이 만들어졌다.

어제 잡담을 했던 멤버들, 즉 문아린, 김새로미, 하정태가 이준기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상태는 물론, 박충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기의 브리핑 시작되었다.


“보셨다시피, 저놈들은 얼음 화살로 잡아야 합니다. 딜러분들 중 몇 분, 저와 함께 얼음 화살을 담당해 주세요. 얼음 화살이 많지 않으니, 소대당 한 명에게 얼음 화살을 나눠드리겠습니다. 1소대는 스나이퍼이신 소현배님이 하시고, 3소대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2소대는..."


“제가, 제가 할게요. 준기 오빠.”

누구보다 빠르게, 문아린이 손을 들었다.


“공략법은 간단합니다. 얼음 화살을 3~4 발 정도 맞으면, 화염 정령의 화염 오라는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아까 보셨듯이 그냥 물렁살 바보 몬스터에 불과하죠. 그러니까 화염 오라가 사라질 때까지는 탱커 한 분만 화염 정령에게 다가가는 게 좋습니다.”

"오호라." 한상태가 맞장구쳤다. "그래야겠네."


“마력 저항, 다들 별로 높지 않으시죠? 화염 저항이 높으면 화염 오라에서 받는 대미지가 크게 감소합니다. 많은 공격대원들이 화염 저항을 갖추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일단 메인 탱커 한 분이라도 갖추셔야죠.”


자기 얘기가 나오자, 한상태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말했다.

“마력 저항, 25밖에 안 됩니다. 마력 저항이나 화염 저항이 붙은 템은 하나도 없고요. 이것 참. 메인 탱커로서 부끄럽네요.”


박충기가 말을 받았다.

“상황을 몰랐으니, 준비 못 한 게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원정 들어왔던 공격대 중에 여기까지 진행했던 팀도 없었고요.”

"살아나온 사람도 몇 없었죠. 도망 나온 사람들이 해줄 얘기도 없었고요." 소현배가 덧붙였다.


“제가, 화염 저항템이 조금 있습니다. 하나는 빌려드리고, 하나는 팔게요.”

또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해서, 이준기는 빠르게 말을 끝내고 입을 닫았다.


"돈을 받고 팔겠다고?" 공격대원들 중 몇몇이 웅성거렸다.

박충기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던전에 자선활동 하러 들어온 것도 아니고. 공격대원들 목숨이 걸린 일인데. 공격대장이자 관할 길드 마스터로서, 최대한 공정한 값을 치주겠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이준기는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링크했다.

공격대원 전체의 상태창에 이준기가 링크한 내용이 표시되었다.


- 소방용 부츠

- 신발. 일반 등급.

- 물리 저항 0. 화염 저항 30.


“던전 입구 자판기에서 40골드에 구입한 겁니다. 가격이 맞는지는, 나중에 확인해 보시면 되겠죠. 100골드 청구해도 될까요? 이런 사소한 물건으로 폭리 취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연하지. 100골드 주겠네.” 박충기가 재빨리 대답했다.


“빌려드리려고 하는 템은 이겁니다.”

이준기가 아이템을 링크하자, 여기저기에서 탄성과 논평이 흘러나왔다.


“헉.”

“우왓!”

“에픽템이네?”

“이런 건 대체 어디에서...?"


- 마력 저항의 펜던트.

- 장신구. 에픽 등급.

- 착용 효과: 마력 저항 +5

- 사용 효과: 7개 영역 중 하나를 골라 해당 계열 마력 저항을 5분간 25만큼 증가시킵니다. 사용할 때마다 아이템이 영구히 파괴될 가능성이 10% 존재합니다.


“빌려드리는 것이긴 한데, 저한테도 리스크가 상당히 큽니다. 사용할 때마다 무려 10% 확률로 아이템이 아예 사라져 버릴 확률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 이런 에픽 아이템이 사라져 버리면.”

“에픽급 이상 아이템 중에 이런 식으로 사용할 때마다 부서질 확률이 붙은 게 꽤 있죠.”

“저도 하나 쓰다가 부서져 봐서 잘 압니다. 그 고통은…”


“펜던트를 사용하면 5분간 화염 저항을 25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상태 탱커님 화염 저항이 85까지 높아지죠. 한상태 탱커님 레벨을 고려하면, 화염 오라로 인한 대미지가 절반 이상 감소한다는 이야깁니다.”


“그건, 훌륭하군요. 화염 오라 때문에 힐 하기 무척 힘들었거든요.”

평소 말이 없던 길수연이 말하자, 모두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내 돈으로라도 사야겠어, 그건." 한상태가 말했다.

"아니, 이건 공격대 문젭니다." 박충기가 한상태를 말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탱커님이 개인 돈을 지출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길수연이 호응했다.


“좋아요. 이준기 님, 사용할 때마다 다음번에 펜던트가 부서질 확률이 증가하는 거니까, 사용할 때마다 10 골드를 드릴게요. 그 정도면 괜찮을까요?” 박충기가 물었다.


사용할 때마다 부서질 확률이 증가한다는 박충기의 말은 확률에 관한 사람들의 오해를 보여주는 틀린 명제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아니고, 사용료를 정확하게 매기는 것도 아니다.

이준기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건, 진짜 소방용 부츠네. 소방대원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걸.”

한상태가 소방용 부츠를 신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훨씬 더 고급져 보이는 금속제 전투 장화가 한상태의 인벤토리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은 화살 문제인데, 저한테 얼음 화살이 36개가 남아 있습니다. 살짝 보니까 화염 정령을 열 마리는 잡아야 길을 낼 수 있어 보입니다. 충분히 샀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소현배 님은 얼음 화살을 만들 물의 책을 조금만 남겨 주세요.”

“알았어요.”

“우선 제가 드리는 얼음 화살을 쓰시고, 나중에 모자라면, 스킬로 만들어 주세요.”

“네.”


그렇게 이준기의 공격대 첫 브리핑이 끝났다.


***


일단 정보가 입력되고 나자, 메인 탱커 한상태의 노련함이 다시 빛을 발했다.

되도록 먼 거리에서 화염 정령의 로밍 범위를 확인한 다음, 전략을 짰다.

공격대장 박충기, 메인 힐러 길수연, 그리고 이준기까지 모두 4명이 전략을 논의했다.


“전부 해서, 10 마리만 잡으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리 위 전투니까, 애드 거리를 잘 재야 해.”

"대열도 중요하죠. 딜러들도 화염 오라가 꺼지기 전에는 원거리 공격을 해야 하니까요."


“화염 오라 대미지를 피하더라도, 호수를 건너는 동안 공격대원들은 체력이 조금씩 소모될 겁니다. 그야말로 타는 듯한 더위와 싸워야 하니까요.”


“한 마리당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아까는 하나 잡는데 5분 정도 걸렸어요. 하지만 이제는 3분 내로 가능하지 않을까요?”

"화염 오라 없앨 때까지 2분 내로 끊어줘야 해. 펜던트 발동 효과가 5분이잖아. 한 번 발동에 두 마리는 잡아야지."


"부서질 확률이 있으니, 조금 빠르게 진행하는 게 낫겠어요."

“좋아. 갑시다!”


자기 소유의 힐링 포션은 물 마시듯 들이키는 한상태였지만, ‘마력 저항의 펜던트’는 조심조심 다루었다.

도발 당한 화염 정령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려, 최후의 순간에 펜던트를 사용했다.


사용할 때마다 10%의 확률로 사라지는 아이템이 5번 사용 후에 사라지지 않고 있을 확률은 59%, 열 번 사용 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확률은 35%에 불과하다.

운이 아주 나쁘지 않다면, 펜던트를 5번 발동시켜 10마리를 모두 잡고 건널 수 있다.


펜던트가 사라지면 단지 이준기의 재산상 손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화염 정령 사냥이 훨씬 어려워지고, 공격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이준기, 문아린, 그리고 소현배는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한상태가 탱킹을 시작하면 얼음 화살을 날렸다.

얼음 화살의 디버프가 중첩하면서 화염 오라가 꺼지면, 딜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화염 정령을 에워싸고 몰매를 퍼부었다.

몰매를 퍼붓는 동안 화염 정령 탱킹은 2탱, 성나린이 담당했다.


한상태는 다음 화염 정령을 풀링했다.

아까와는 다른,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공격대는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이제 끝이 보이는군요.”

여덟 번째 화염 정령을 잡고 나서 한 타임 쉰 다음, 한상태가 아홉 번째 화염 정령을 풀링했다.


10 미터.

5 미터.


두 걸음 앞으로 다가온 화염 정령을 한번 쳐다보고, 한상태는 펜던트를 발동했다.


- ‘마력 저항의 펜던트’가 어둠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습니다.


마력 저항의 펜던트가 부서졌다.


"이런!" 한상태가 큰 소리로 외쳤다. "펜던트가 부서졌다!"


한상태가 말하지 않아도, 공격대는 모두 상태창으로 들어온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쿨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길수연은 남은 책으로 얼마나 힐을 넣을 수 있을지 셈하기 시작했다.


화염정령의 머리.png 화염 정령(의 머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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