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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34. 오크 전쟁기지

by 히말

“권영호!”

이제 두 마리밖에 안 남은 엘리트 오크 경비병에게 콜을 부르며 ‘스파크’를 시전하던 박충기가 외쳤다.


“권영호 님!”

공격대원들의 상태창을 공유받은 상태로 공격대원들의 체력 상태를 체크하던 하정태도 놀라서 외쳤다.

하정태는 권영호를 향해 가장 빠른 치유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나 들어가지 않았다.

하정태의 주위를 돌던 하얀색 빛의 책들이 권영호를 향해 날아가지 않았다.


하정태는 뭔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치유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나 빛의 책들은 그의 주위를 돌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무생물에는 힐이 들어가지 않는다.


***


단 한방에 권영호를 죽인 오크 족장이지만, 전설급 방패를 든 한상태 상대로는 고전하고 있었다.

권영호를 도끼질 한 방에 날려 버리고, 오크 족장은 그 스윙을 그대로 이어 자신을 쫓아온 한상태에게 도끼를 내리찍었다.


전설급 방패 ‘아스트라아제’가, 도끼의 궤적을 한상태의 머리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한상태의 장검이 곧바로 반격에 나섰지만, 오크 족장은 검날을 손목 브레이서로 튕겨냈다.


한상태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오크 족장이라면, 이미 몇 번이나 상대해 봤다.

그러나 이렇게 센 놈은 처음이었다.


길수연의 노련한 힐이 아니었다면 오크 족장을 붙잡고 있기도 버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탱킹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딜러진의 누군가가 죽어 나갔을 것이다.


‘권영호 하나만 죽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봐야 한다.’


마지막 경비병이 쓰러지고, 공격대원들이 달려와 오크 족장을 둘러쌌다.

한상태는 공격을 받아내기에만도 힘이 벅찼다.

그래서 오크 족장은 아직도 팔팔했다.


그러나 이제 열두 명의 공격대원에 둘러싸인 상황.

한상태 한 명을 상대로는 압도적인 우위로 몰아붙이던 오크 족장이었으나, 이제 막아야 할 날붙이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화염 낙인이 찍히고, 독극물에 중독되고, 패시파이어의 ‘둔화’에 걸리면서 오크 족장의 체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체력이 반 정도로 줄어들자, 오크 족장의 눈이 선홍색으로 번뜩였다.


- 오크 족장이 광란 상태로 돌입합니다!

- 오크 족장이 전쟁 도끼를 휘둘러 문아린에게 29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 오크 족장이 주먹 강타로 윤동에게 22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


오크 족장의 육중한 몸이 넘어지며 땅을 울렸다.

자기들끼리 싸우던 주술사 부대 잔병들이 공격대를 향해 칼끝을 돌렸다.

주술사 한 놈과 부하 세 마리.

공격대원들의 일점사에 한 마리씩 쓰러지는 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 2시간 내에 차원문이 소멸합니다.

- 보물 상자가 생성되었습니다.

- 던전에서 나가는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으아, 끝났다. 아자자자자!”

장혁수가 기지개를 켜면서 외쳤다.


공격대원들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던전 밀었잖아요? 축하할 건 좀 하자고요.”


윤동직이 장혁수의 멱살을 잡았다.

“뭐냐, 넌? 사람이 죽었는데 소풍 온 기분이야? ㄳㄲ인 게 그렇게 자랑스럽냐?”


장혁수가 자기 멱살을 쥔 윤동직의 손을 치면서 대답했다.

“아, 정말. 왜들 지랄이야. 구원자라는 게 원래 죽어 나가는 직업이야. 그거, 몰랐어?”

“당장 죽여주마. 이 ㅅㅋ.”

윤동직이 다마스커스를 꺼냈다.


“오호라. 아저씨, 괜찮으시겠어요?”

훨씬 월등한 무기, ‘오캄’을 꺼내 쓰다듬으며 장혁수는 입맛을 다셨다.


“뭐 하는 짓들이야!”

한상태의 전설급 방패, ‘아스트라아제’가 날아와 윤동직과 장혁수를 맞춰 쓰러뜨리고 한상태의 손으로 돌아갔다.


***


동료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잠깐 가진 후, 공격대원들은 오크 족장의 천막 바로 앞에 생성된 보상 상자 주변에 모였다.

슬픔은 슬픔이고, 지난 나흘간의 고생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며 눈이 빛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성의 한계인가.

모두들 상태창을 다시 확인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 차원문 소멸 보상: 에픽 아이템 1개, 레어 아이템 2개 이상.


공격대장 박충기가 상자를 열었다.

황금색 빛이 새어 나왔다.

전설급 아이템이 나왔다는 이야기.


공격대원 대다수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박충기가 상자에서 꺼낸 전설 등급 아이템을 상태창에 링크하자, 일부는 갈망을 담은 탄성을, 일부는 아쉬움에 찬 한숨을 내질렀다.


- 아킬레우스의 샌들.

- 신발. 전설 등급.

- 물리 저항 40. 마력 저항 30.

- 착용 효과: 이동 속도가 3% 증가합니다.

- 발동 효과: 피격 시 일정 확률로 잠시 동안 이동 속도가 25% 증가합니다.

- 사용 효과: 다른 차원으로 스며들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은신 상태로 돌입합니다. 은신 상태는 1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이동 이외의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 은신 상태가 해제됩니다.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합니다.


에픽 등급 아이템도 나왔다.


- 척추파쇄자

- 양손 도끼. 에픽 등급.

- 대미지 등급 D+. 공격 속도 5초.

- 착용 효과: ‘전투준비 태세’. 전투에 돌입하여 첫 공격을 받을 경우, 소모된 책 중 한 권을 랜덤으로 재생시킵니다.

- 발동 효과: ‘척추파쇄’. 유효 타격 시 일정 확률로 적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30의 추가 대미지를 입힙니다. 최대 체력 대비 현재 체력이 낮을수록 발동 확률이 증가합니다.


전리품 배분 방식은 현재 한국 표준이라 할 수 있는 경매.

아이템에 대해 가장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 그 아이템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아니, 그냥 황금만능주의다.


차원문과 구원자가 등장한 이후 더 벌어진 빈부 격차, 그리고 더 거세진 황금만능주의.

구원자로 각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

인생은 로또라는 생각이 굳어진 게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은 아이템이 많이 나왔군요. 공평하게 하기 위해, 모든 아이템에 대해서 동시에 경매를 진행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아이템을 쓸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거죠. 경매 대상 아이템은 모두 네 개입니다.”


- 아킬레우스의 샌들. 전설 등급 신발.

- 척추파쇄자. 에픽 등급 양손 도끼.

- 스피릿 링크. 에픽 등급 반지.

- 숲 지기의 장갑. 레어 등급 장갑.


공격대에 네 명이나 참가하고 있는 문경새재 길드가 유리한 상황.

그러나 네 명의 돈을 다 쓸어모은 것 같은 금액을 박충기가 입찰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형채가 더 많은 돈을 제시해서 ‘아킬레우스의 샌들’의 최고 입찰자가 되었다.


양손 도끼 ‘척추파쇄자’는 샌들을 포기한 몇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진 결과, 문아린이 가져갔다.

힐러 전용 반지, ‘스피릿 링크’는 길수연이 가져갔다.


최아람은 가진 돈을 길마 박충기에게 몰아주었기 때문에 입찰도 할 수 없었지만, 하정태는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부을 태세였다.

길수연이 템 욕심이 없다는 것, 이준기는 잘 안다.


그래서 이준기는 손을 들고 말했다.

“어차피 힐러 전용 반지입니다. 입찰도 좋지만, 힐러 세 분끼리 의논해서 결정하면 좋지 않을까요.”


박충기도 동의했다.

같은 길드 최아람이 입찰 경쟁에서 아예 빠질 상황이었으니, 단박에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이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힐러분들 이번에 정말 수고 많으셨으니.”


힐러 세 명이 협의할 것이라고는 말했지만, 물건이 물건인 만큼,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했다.

“제일 고생한 사람한테 양보해야죠.”

“레벨 낮은 사람은 앞으로도 기회 있잖아요? 메인 힐러님한테 드려야…”

“저렙이라고 앞으로 저런 템을 구경한다는 보장이 어딨나요?”


이준기가 한마디 보탰다.

“그렇게 애드가 나고도 전멸하지 않은 건, 메인 힐러님 공이죠. 길수연님 아니었다면…”


애드 이야기를 하자, 한상태도 자기 의견을 말했다.

“다른 힐러님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길수연 힐러님 아니었으면 전멸했을 거야. 여기서 보상템 상자 같은 것, 열어보지도 못했을 거라고.”


최아람과 하정태는 여론에 밀려 길수연에게 반지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길수연은 공평하게 해야 한다면서 손사래를 쳤지만, 이번에는 문아린이 말했다.

“하긴 그 아이템, 준기 오빠 아니었으면 구하지도 못했을 거잖아요? 준기 오빠 의견은 어때요?”

“사실, 저도 한상태 탱커님과 의견이 같습니다.”

이준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정적으로 대답했다.


메인 탱커, 그리고 아이템을 얻는 데 도움을 준 이준기의 의견이 나오자, 다들 공격대장 박충기를 쳐다보았다.

박충기가 밀려나듯 말했다.

“그럼, 스피릿 링크는 고생을 많이 하신 메인 힐러 길수연님께 드리겠습니다. 다들 동의하시죠?”


‘숲 지기의 장갑’은 윤동직이 가져갔다.


경매 결과에 대해 말이 많았다.

소현배의 리드 하에, 문경새재 길드가 돈을 모아 전설템을 가져가려고 한 정황은 분명하다.

전설템을 낙찰받은 김형채가 코리아 길드 소속이라는 점도 사람들 사이에 긴장을 높였다.


코리아 길드라면 강성 협회장 파벌, 즉 박충기의 문경새재와는 앙숙이다.

경매 결과에 따라 골드와 아이템을 교환하고, 정산금을 배분하는 과정이 지연되었다.


“저는 1층 입구로 나가겠습니다. 던전도 한 번 다시 둘러보고, 1층 자판기에서 보급품도 좀 챙기려고요.”

이준기는 그렇게 말하고 공격대와 헤어졌다.


장혁수가 따라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번 레이드 중에 장혁수가 적의를 보인 대상은 한둘이 아니다.

그중 가장 만만한 상대에게 ‘오캄’을 써보고 싶을 것이다.


그구된_표지.png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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