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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35. 일대일

by 히말

이준기는 1층 오두막 근처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장혁수를 기다렸다.

장혁수가 오캄을 꺼내든 채 불량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의 기척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러나 이준기를 노리고 장혁수가 따라왔듯, 장혁수를 쫓아올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윤동직, 소현배는 물론 장혁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고의는 아닐지 몰라도, 오크 무리를 애드 시켜 촉망받던 탱커 성나린을 죽게 한 것도 장혁수다.

장혁수가 자기보다 레벨이 낮은 이준기를 첫 사냥감으로 정했듯이, 다른 사람들도 이준기 다음으로 레벨이 낮은 장혁수를 만만하게 볼 것이다.


레벨 차이는 경험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만, ‘오캄’이라는 출중한 무기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이준기는 생각했다.

살벌한 대미지에, 발동 효과도 훌륭하다.

양손검 패시파이어의 우월한 리치를 이용해서 장혁수가 가까이 붙지 못하게 해야 한다.


레벨은 장혁수가 현저히 높다.

이준기가 가진 것은 정보의 우위.


구원자는 다른 구원자의 공격에 대해 기본적으로 50%를 저항한다.

이걸 아는 구원자는 현재 전 세계에도 몇 없을 것이다.

길드 전쟁이 한참 진행된 다음에야 유명해진 사실이다.

장혁수가 구원자 남궁훤을 죽이기는 했지만, 이런 디테일까지 확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9레벨의 장혁수.

일반적으로 스탯을 분배했다면 체력은 약 30 정도여야 한다.

그러나 이미 구원자를 살해한 장혁수의 스탯은 그 이상이라는 것, 이준기는 안다.

체력은 약 35. 나머지 스탯도 그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요소를 떠나 결정적인 차이는 역시 경험이다.

많은 사람을 죽여 온 장혁수.

그러나 그가 공정한 대결에서 승리한 대상은 없다.


일반인들에 대한 연쇄 살인, 그리고 소현배와 2대1로 잡은 남궁훤 뿐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를 만나면, 그것만으로 장혁수는 공포에 질릴 것이다.

이준기에게 장혁수는, 계산해 볼 것도 없는 잡몹이나 다름없다.


나무 그늘에서 벗어나며, 이준기가 장혁수를 향해 외쳤다.

"나, 여기 있다."


"어쭈? 날 기다린 거야, 설마?"

장혁수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너도, 날 쫓아온 거잖아?" 이준기가 말했다.

"주제 파악을 조금은 하고 있었군." 장혁수가 인벤토리에서 오캄을 꺼냈다. "그럼 이제 죽을 시간이라는 것도 알겠네?"

"날 죽이고 싶은 거지?" 이준기가 물었다. "왜냐?"


"왜는 얼어 죽을... 네놈 면상이 맘에 안 들어."

장혁수가 오캄을 붕붕 휘두르며 천천히 다가왔다.


"확실히 해두자. 네가, 먼저 공격한 거야." 이준기도 인벤토리에서 패시파이어를 꺼내 쥐었다.


"당연하지. 나 혼자 공격할 거고, 넌 죽을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 장혁수는 이준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


"자... 잠깐!" 장혁수가 오른손에 오캄을 든 채로 왼손의 힐링 포션을 들이켰다.

"잠깐이라니?" 이준기가 다가서며 말했다. "우리, 지금 서로 죽이려는 거잖아?"

"어... 어떻게!" 장혁수가 숨을 몰아쉬며 떠들었다. "너 따위가 이렇게 센 거지?"


패시파이어를 든 이준기는 멀쩡한 반면, 장혁수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빠른 공속의 오캄을 패시파이어로 막아내는 이준기의 움직임에, 장혁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런 전개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너, 군대도 안 다녀왔지?" 이준기가 물었다.

"군대 같은 건 너 같은 양민ㅅㅋ들이나 가는 거잖아."

"네가 죽여온 것은, 저항도 하지 못하는 상대들이었잖아. 남궁훤 빼고 말야."

"그래, 남궁훤, 그 ㅅㅋ도 내가 죽였는데, 어떻게 너 따위가..."


힐링 포션으로 상처가 아문 장혁수가 오캄을 휘두르며 이준기에게 달려들었다.


"나, 기억 안 나?" 이준기가 몸을 한쪽으로 돌려 가볍게 피하며 물었다.

"네가 뭔데?"

"신림동."

"신림동?" 장혁수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준기를 바라보았다.


"하긴, 네놈이 사람을 죽인 게 한두 번이 아니겠지."

"신림동?" 장혁수가 다시 물었다.

"몇 달 전, 신림동에서 너는 사람을 죽였어. 경찰 앞에서 말야."

"경찰? 그런 일이 있었나?"


장혁수는 뭔가 생각 나기라도 한 듯, 뒤로 물러서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경찰? 신림동 그 어벙한 짭새? 그게 설마, 너였다고?"

"역시, 기억은 피해자에게만 남는 거구나."

"으하하하! 그게 한이 맺혔구나? 이거 아주 통쾌한걸! 사이다야, 사이다!"

"이제 곧 고구마가 될 거다." 이준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림동 그 여자는 오늘 네가 죽어야 할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니까."


"약자는 찌그러져 있으란 말야! 그때처럼!"

그날을 회상하며 자신감을 얻었는지, 장혁수는 오캄을 쥔 오른손을 치켜들고 도약해 왔다.


***


- 패시파이어로 11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 상대방이 ‘둔화’에 걸렸습니다.


“크아아아!”

패시파이어에 맞고 쓰러진 장혁수가 일어났다.

패시파이어의 둔화 효과에 걸린 손이 저렸다.


"죽기 전에, 용서를 빌 기회를 주겠다."

이준기가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까는 소리."

장혁수는 뒤로 물러서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 화염 보호막. 불의 책 3권 소요. 피해를 흡수하고, 흡수된 피해의 50%를 상대에게 튕겨냅니다. 총 30의 피해를 흡수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헬렌 카자크의 화염 보호막을 지겹도록 보아온 나다.’

이준기는 장혁수가 외는 주문이 무엇인지 즉각 알아챘다.

인벤토리에 패시파이어를 넣고, 이준기는 장혁수를 향해 다가섰다.


"뭐... 뭐야?" 무기도 없이 다가오는 이준기를 보고 놀란 장혁수가 말을 더듬었다.

주문이 중단되었다.


"계속해 봐, 화염 보호막. 그거 쓰고 도망가려고?"

"부... 불 특화야, 너도?"


10분이나 싸우고 상대방의 테크 트리를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는 장혁수가 가소로웠지만,

사실 99%의 구원자는 그렇다.


"마지막 발악을 해보란 말이다." 이준기가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으아아아!"

장혁수가 등을 보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패시파이어의 둔화에 걸린 채 달아나는 그의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준기는 가볍게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공중에서 장혁수의 등을 발바닥으로 찍어 내리며 착지했다.


스릉.


인벤토리에서 이준기의 오른손으로, 패시파이어가 이동했다.


땅에 코를 박은 채, 장혁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사... 살려줘! 뭐든 줄 테니까! 돈은 얼마든지 있어!"


“장혁수!” 이준기가 다가서며 크게 외쳤다.

“네... 넵!" 장혁수가 몸을 뒤집고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탱커 성나린에 대한 과실치사.”

“으응?”

“남궁훤에 대한 사적인 단죄.”

“무... 무슨 소리야!” 장혁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신림동에서 네가 죽였던 이미연 씨에 대한 살인을 포함한, 몇 건인지 파악도 되지 않은 연쇄살인에 대해서,"

“뭐라는 거야! 오해야, 오해라고!" 장혁수가 오크처럼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사형에 처한다.” 이준기가 문장을 끝맺었다.

"그... 그러지 마! 살려줘!" 장혁수가 흙바닥 위에서 네 다리로 꾸물거렸다.


이준기가 패시파이어를 높이 들어 올렸다.

이준기와 패시파이어의 그림자가 하나가 되어 장혁수 위로 드리워졌다.


"으아아아!"

장혁수가 오캄과 다마스커스를 양손에 쥐고 달려들었다.


챙!


이준기는 양손으로 힐트를 잡고 패시파이어를 옆으로 뉘여 장혁수의 공격을 튕겨냈다.

탱킹의 기본이다.


"죽어, 죽어, 죽어!"

뒤로 밀렸던 장혁수가 양팔을 마구 휘저으며 다시 다가왔다.


이준기는 단지 패시파이어의 검날을 앞쪽으로 돌리기만 했다.

긴 검날이 달려들던 살인귀의 몸통을 꿰뚫었다.


“이준기, 네놈 따위에게 내가…”

이준기가 장혁수의 몸에서 패시파이어를 거둬들이자, 장혁수의 몸이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땅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제기랄… 서라벌 그룹 후계자인 내가… 너 따위 양민 ㅅㅋ한테…"


사방이 조용해졌다.

오후 햇살이 스며드는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장혁수.png 장혁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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