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43. 에너미 앳 더 게이트

by 히말

“이거, 레알?”

“랭크 B?”


바로 길 건너편이라, 구원자들은 종로타워 23층 회의장에 앉아서도 상태창을 띄워 차원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차원문 고유번호 10394. 랭크 B. ‘FFA’.

- 차원문 소멸 조건: 오크 사원의 붕괴.

- 차원문 입장 조건: 최소 입장 인원 8명.

- 차원문 소멸 보상: 에픽 아이템 1개 이상.

- 퇴각 페널티: 1레벨 강등.


“무시무시한 페널티군.”

“최소 입장 인원은 또 뭐야? 최대가 아니고?”

“오크 사원의 붕괴가 소멸 조건인데, 이름이 FFA?”


왁자지껄 도떼기 시장이 된 회의실.

한 사람의 예리한 코멘트가 모든 사람들을 갑자기 침묵시켰다.


“FFA, 이거 프리포올(free for all) 아닌가요? 그러니까, 모두가 서로 적이 되는.”


바로 그거다.

입장 후 서로가 적이 되는 던전 포맷, FFA.

전 세계에서 한국, 그것도 서울 종각에 처음 등장한 포맷.

아직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유형.


"설마, 그럴 리가..."


사람들은 FFA가 뭔가 다른 걸 의미할 거라는 희망으로 휴대폰 검색을 시작했다.


“FFA. First Free Ascent. 프리 클라이밍, 즉 자력 등반 방식으로 처음 등반에 성공하는 걸 FFA라고 하네요. 이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오크 사원이 산 위에 있는 거죠.”

“Free Fatty Acid. 자유 지방산. 이거 아녜요?”

“그게 말이 되냐?”


“Free Fire Area. 자유롭게 아무 화기나 사용이 허가되는 공간. 헉!”

“그건 Free For All이나 비슷하잖아. 무섭다고!”

“Field Force Automation. 이건 어때요? 그러니까, 판매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쩝. 말도 안 되는구나.”

“프랑스 풋볼 연맹이 오히려 말이 되네. 에라.”


길을 지나다 차원문 등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경찰서와 112에 신고 전화를 쏟아부었다.

종로경찰서 소속 전경 부대가 빠르게 움직여 종각역을 에워쌌다.

종각역 사거리가 완전히 통제되고, 종각 뒤편 피맛골에 광범위하게 소개령이 내려졌다.

포위 범위가 넓고 복잡해서 삼청동 전경 부대까지 동원했다.


종로타워에도 곧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비 직원과 함께 23층으로 올라온 경찰 경위가 차려 자세로 경례하며 말했다.

“수고하십니다, 구원자님들! 침착하게 소개령에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도협이 코웃음을 쳤다.

“침착? 소개? 경위님, 우리가 뭔지는 알고 오신 것 같은데, 우리가 왜 소개를 합니까? 뭐, 설마, 인트로덕션, 그거 하라는 건 아니죠? 음핫핫.”


“아, 네. 구원자님들이시긴 하지만…”

“어디에서 오신 거예요? 종로경찰서? 김학래 총경이 보낸 거요?”

“네! 김학래 서장님이 보내셨습니다.”

“하! 어이가 없네. 잠깐 기다려 봐요. 전화할 테니.”


이도협은 곧바로 전화를 들었다.

“이런, 미친. 전화통에 불났나 보구만. 개인 번호로 걸어도 먹통이네.”


이도협은 다른 번호를 눌렀다.

“아, 한 과장? 하하하! 지금 우리 건물 바로 앞에 차원문이 생겨서 서장님 전화에 불 난 거 같네요. 지금 여기, 경위님이 우리 건물에 들어와서 우리들보고 나가라고 하시는데. 하하하, 그러게 말예요. 이게 무슨 개소립니까. 서장한테 빨리 전해요, 나한테 전화하라고.”


인상을 쓰며 전화를 끊은 이도협은, 경위의 명찰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대단히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이봐요, 이천학 경위? 서장이 곧 전화할 테니, 잘 들어요. 알았죠?”

이천학 경위가 차려 자세로 얼어붙은 채 땀을 흘렸다.


***


“이봐, 준기 씨. 준기 씨 잘난 건 알겠는데, 지난 주말에 뉴스 나오고 뭘 또 하겠다는 거야? 욕심이 끝이 없네. FFA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

“최초 자유등반 아닐까요? 오크 사원 붕괴가 산 위에 있나 보죠.”


물론 거짓말이다.

FFA는 프리포올이고, 두말할 것도 없이 데스매치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나머지 동료를 싹 다 죽여야 하는 배틀로얄은 아니다.

원래 역사에서 벌어졌던 전멸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준기가 들어가야 한다.


최소 입장 인원 8명. 그 조건만 아니라면 혼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인 던전.

그러나 최소 입장 인원 조건이 걸린 만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8명이 전원 클릭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되지 않는다.


“준기 씨도 유머 감각이 있네. 뭐, 일단, 알았어. 이제 중견 랭커인 20레벨 준기 씨가 줄을 서 준다면, 뭐, 나로서도 환영이야.”


***


이도협은 아직까지 원래의 자기 방, 즉 부회장실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권영호가 쓰던 방은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탑픽과의 합병이 예정되어 있지만, 이도협은 자신이 통합 길드 수장이 된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당연하잖아. 우리 길드 머릿수가 탑픽 두 배는 되는데.’


문제는 역시 파벌이다.

회장 권영호가 반협회장 파벌이었기 때문에, 길드 멤버들 중에도 명시적으로 반협회장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길드 내 레벨 3위인 한택수, 그리고 넓게 봐서 한택수 라인으로 볼 수 있는 탱커 윤동직.


이제 윤동직도 레벨 20을 달았으므로 그냥 무시할 상대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갑자기 레벨 20이 된 이준기는 더더욱 주의할 상대.

이도협으로서는 ‘미궁’ 던전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한 일이 있어서 더욱 껄끄럽다.


‘느낌이 오잖아. FFA. 프리포올.’


이도협은 빨간 글씨로 ‘주목’이라고 쓰인 야구공을 손안에서 이리저리 돌렸다.


‘차원문이라는 걸 누가 만들어서 보내는 건지 몰라도, 우호적인 신은 아니겠지. 장난이 심한 절대자 정도 되려나? ‘해운대’ 던전에서 공격대원들 사이에 드잡이가 있었다는데. 장난기가 있는 신이라면, 구원자들 사이에 치고받는 걸 보고 싶어서 저런 차원문을 만들었을지도.’


이도협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길드 멤버 명단을 훑어보았다.


‘이준기, 이거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느낌이 좋지 않아. B급 던전이라면 나도 좀 꺼려지는데, 그걸 가겠다고?’


이도협은 컴퓨터 화면에 길드 회원 명단을 띄웠다.


- 길드 회원 명단. 2023년 9월 20일 현재.

- 이도협. 레벨 27. 딜러.

- 한택수. 레벨 25. 탱커.

- 남경철. 레벨 24. 힐러.

- 변희영. 레벨 24. 딜러.

- 고창혁. 레벨 23. 딜러.

- 정하은. 레벨 22. 탱커.

- 김한동. 레벨 21. 힐러.

- 유채리. 레벨 20. 딜러.

- 윤동직. 레벨 20. 탱커.

- 이준기. 레벨 20. 딜러.

- (총 3쪽 중 1쪽)


‘뭐, 나쁘지 않군. 20레벨 이상만 10명이라. 여기서 두 명 정도 빠져도 길드는 잘 돌아가겠지. 문제는, 한택수 이 자식이 순순히 던전에 들어갈까?’


***


9월 22일 저녁 뉴스 헤드라인은 길드 합병 소식이었다.


“오늘 첫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11시. 서울 소재 길드 ‘충무공’과 ‘탑픽’이 합병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길드 명칭은 당분간 ‘충무공-탑픽’으로 하고, 아이디어 공모와 설문조사를 통해 정식 명칭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새롭게 출범한 통합 길드 회원들은 인터콘티넨털 하모니 볼룸에서 축하 파티를 진행하고 있었다.

탑픽의 전 회장 오대영이 임시회장, 충무공 전 부회장 겸 회장 대행 이도협이 임시 부회장을 맡고, 한 달 내에 회장단 선거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오대영도 이도협도 기자들을 별로 안 좋아해서, 축하 파티는 구원자들만 참석하고 있었다.

한참 부어라 마셔라가 진행된 다음, 이도협이 자리에서 일어나 꽐라 초기 단계의 혓바닥을 굴리며 말을 했다.

“이렇게 즐거운 자리에서, 이, 일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하, 한 가지만 공지하겠습니다.”


충무공 길드 회원들이 이도협을 연호했다.

“이도협! 이도협!”


“아, 네. 캄사합니다. 다름 아니라, 오늘 오후 3시부로, 정부 측에서 종각 차원문을 우리 길드로 인계했습니다. 협회에서도 찬성했고요. 다, 당연하잖습니꽈? 우리 빌딩 바로 앞에 생겼으니.”


좌중에서 손을 번쩍 든 한 회원이 말을 했다.

“파티 모집하시는 겁니까?”


“네, 네. 그, 그겁니다. B급 던전, 무섭죠. 하지만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법. 정찰하고 퇴각해도 좋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위주로 탐색조를 꾸릴까 합니다.”


진짜로 술에 취한 건지, 연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의 말은 B급 던전의 무게감을 없애는 효과가 있었다.

정찰만 하고 퇴각해도 좋다는 말이 먹혔는지 공격대 자리가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충무공-탑픽 연합 길드에서 총 4명.


- 마상욱. 26레벨. 전 탑픽 길드. 딜러.

- 한택수. 25레벨. 전 충무공 길드. 탱커.

- 하민서. 25레벨. 전 탑픽 길드. 딜러.

- 이준기. 20레벨. 전 충무공 길드. 딜러.


그리고 협회 차원에서 모은 다른 길드 소속 4명.


- 소현배. 26레벨. 문경새재 길드. 딜러.

- 주석. 25레벨. 브릴리언트 길드. 딜러.

- 김형채. 25레벨. 코리아 길드. 딜러.

- 문아린. 23레벨. 신선자 길드. 딜러.


다들 1레벨 강등이라는 퇴각 페널티를 감수하겠다는 사람들이었다.

아이템을 빼앗기는 것보다 레벨 강등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구원자들은 대개 레벨 강등보다 아이템 빼앗기는 것을 더 아쉬워했다.


소현배, 김형채, 문아린. 모두 ‘해운대’ 공격대 멤버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정찰이라 생각하고 지원한 모양이지만, 이준기는 당연히 던전을 깰 생각이다.


이번 던전의 포맷을 생각하면, 아는 사람들이 포함된 건 아주 좋지 않다.


‘프리포올, 위키피디어를 찾아봐라. 데스매치라는 항목으로 연결된다.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던전에 지원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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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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