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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지출 0원

[책을 읽고] <0원으로 사는 삶>

by 히말

흔한 미니멀리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집었다.

예상대로 뻔한 프롤로그가 지나가고, 본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

뭔가 이상하다.

정말로 "0원"으로 사는 이야기였다.


***


주인공은 워홀로 간 런던에서 일자리를 얻는 행운을 누린다.

그렇게 시작된 영국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런던이 어떤 곳인가?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 3대장을 꼽는다면, 당연히 포함될 도시다.


해고를 당하면서, 그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마주친다.

그리고 결정한다.


"돈이 없다면, 돈을 안 쓰면 되지."


그렇게, 그녀의 0원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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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의 삶은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학부 시절 읽었던 Jack Kerouac의 <On the Road>가 대표적이다.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 또는 알렉산더 수퍼트램프("왕거지")의 삶을 다룬 영화, <Into the Wild> 역시 좋아하는 영화다.

(나는 나중에, 그가 나온 대학교에 가서 1년을 지내게 되는데, 세상은 참 오묘하다.)

이 영화는 히피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한다.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Nomadland> 역시 좋아한다.

노마드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 속에서 친숙하지만,

노마드는 그저 유목민일 뿐이고,

정착 생활이 당연한 21세기에 유목민이 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0원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삶은 저소비를 지향한다. (저소비가 강제된다.)


다큐멘터리에서 소위 <쓰레기통 다이빙> 역시 접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보니, 그것도 쉬운 게 아니다.

마트 쓰레기통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연주의 농법을 주장하면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경우도 들은 적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는 귀농인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도 비슷한 전개가 많다.


이처럼 다양하고 희귀한 경험을 단 한 사람이, 그것도 비교적 단시간 동안 거쳐갔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게 소설이 아니고 경험담이라니.


***


읽는 내내, Jack Kerouac의 <On the Road>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잭 케루악의 책은 수십 년 전에 나온 책이다. (지금 체크해보니 무려 1957년에 나온 책이다.)

1957년에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 가능할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21세기라서 더 가능한 것 아닐까?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은 유선 전화를 가져본 적이 없지만, 지금은 거의 모두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책에는 레인보우 개더링이라는 것이 나온다.

자연주의적 삶의 극한적인 형태라고나 할까.

다같이 모여 같이 먹고, 자고, 노는 것이다.

전기나 통신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언제나 조명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1957년이라면 등장할 수 없었던 것들이 등장한다.

"횃불"을 든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배터리로 작동되는 헤드램프나 플래시 따위의 조명을 사용한다.

태양광 전지로 충전 또한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다.


1957년과는 달리, 기술 발전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해졌고, 더구나 저렴하게 누릴 수 있다.

18세기의 로빈슨 크루소와 달리, <Castaway>의 톰 행크스는 이런저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1957년에 나온 소설의 주인공은 자기 선택을 후회했지만,

21세기에 같은 선택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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