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1)
미래는 1984가 아니라 멋진 신세계일 것이다
1부의 제목은 <기술적 도전>이다. 우리의 상상력을 초과하여 벌어지는 현재의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온 환멸, 그로 인해 우리의 일, 자유, 평등이 어떻게 될지 이야기한다.
20세기 초, 우리에게는 세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전체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자유주의다. 이제는 하나뿐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자유주의에조차 환멸을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또한, 지금의 중국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한다. (용기 있는 발언이다.)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는 시간만이 대답해줄 것이다.
전례 없는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27쪽)
진시황은 채찍질로 사람들을 동원했지만, 지금의 거대 기업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제 곧, 인간의 노동력이 별 필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날아오는 채찍에는 분노가 치밀겠지만, 일자리가 아예 없는 것에 대해 누구에게 분노를 표출해야 할까?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대개 같은 처지에 있다면?
또한 우리에게는 인스타와 넷플릭스의 안락함이 있다. 편의점 알바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 <후리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해답이 있을까? 기대와 함께 우려를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는 나를 이 책의 도입부가 강력하게 휘어잡은 것은 당연하다.
인류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힘든 시련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과정에서 인류의 충성을 얻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무엇보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시험받게 될 것이다. (38쪽)
인간은 필요없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패할 때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장악할 미래의 직업군에서 누락되는 것들이 있을 거라는 희망적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https://brunch.co.kr/@junatul/31
그러나, 위 글에서도 이미 보이듯, 정서적인 것도,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도, 인공지능은 잘만 배워나갔다. 우리가 인간만이 가진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었을 뿐이다. 현대 과학은 아직도 시냅스와 우리의 정신 작용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뇌의 비밀을 거의 알아낸 것 같다.
'인간의 직관’이라고 과시해온 것이 사실은 ‘패턴 인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40쪽)
미드저니가 만든 작품이 공모전 대상을 탄 일은 이제 옛날 이야기다. 스크립트 몇 줄로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SORA 역시 충격적이었지만, 바로 며칠 후에 더 경악할 일이 일어났다.
https://humanaigc.github.io/emote-portrait-alive/
그림 딱 1장, 그리고 소리 파일을 넣어주면, 동영상이 나온다. 모나리자 그림과 (G)I-DLE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를 입력하면, 모나리자가 (G)I-DLE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이 나온다는 말이다.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아직도 상상력과 일반 지능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인간에게 기회가 남아 있는 것 같이 서술하고 있지만, 이 책이 출판 된 것은 2018년이다. 이제 그도 생각을 바꿨을 것이다.
대니얼 대닛이나 안토니오 디마지오가 인간의 의식이란 것을 정말 흥미롭게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상상의 영역이 대부분이다. 인간 의식의 비밀은, 제3의 영역인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냥 얻어 걸려 밝혀지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6년 전) 저자의 주장과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럼에도 저자의 통찰은 빛을 발한다.
미래 경제가 우리를 소비자로서조차 필요한 존재로 여길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그 역할도 기계와 컴퓨터가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57쪽)
노동자로서 가치가 사라진 인간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소비자로서 가치를 들먹인다. 기본소득제가 가져올 수많은 긍정적 효과 중 하나도 바로 소비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다. 왜 못한단 말인가?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을 때, 딥러닝에서 흔히 쓰이는 잔재주는 더미 데이터로 보충하는 것이다. 물론 그 더미 데이터는 수집한 데이터를 조금씩 변형한 것이다. 데이터 소스로서 인간의 가치는, 이미 침식당한지 오래다.
저자는 기본 소득 대신 <기본 서비스>를 지급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곧 덧붙인다.
이것은 사실상 공산주의가 그리던 유토피아의 청사진이다. (59쪽)
공산주의가 실패했는가 소련이 실패했는가 하는 질문을 일단 옆으로 치우고 생각해보자. 그 실패가 인간의 본성 때문인지 상황 때문인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나 기본 서비스는커녕 기본 소득조차도 <합의>를 필요로 한다. 합의 자체도 어렵지만, 그 합의의 범위 또한 문제가 된다. (결국 이기심의 바운더리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뒷간 같은 국가들’이라 부른 나라의 실직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이 세금을 송금하는 데에도 과연 미국의 유권자들이 동의할까? 그럴 거라고 믿느니 차라리 산타클로스와 부활절 토끼가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믿는 편이 낫다. (60쪽)
무엇이 <기본>인가에 대한 합의도 어려울 것이다. 기본과 기본을 초과한 사람들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것인데, 이 격차는 심지어 제도에 의해 합리화된다. 유발 하라리가 보여주는 생각의 확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가장 암울한 동시에 거의 확실한 전망을 보여주며 제2장을 마무리한다.
우리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은 훨씬 무서운 시나리오다. (65쪽)
저자는 이 부분을 다음 장, <자유>에 대한 말머리로 사용하고 있지만, 나는 그 내용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무서운 시나리오는 영화 <월-E>에 아주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월-E>의 미래 묘사가 달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표현한 것이다.
***계속***
https://brunch.co.kr/@junatul/1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