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사원을 무너뜨리는 미션.
처음 화면에 나온 설명은 대단히 불친절했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니 스텝 바이 스텝으로 대단히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다음 단계는… 저쪽 경비병을 잡는 거네요.”
“그렇네. 세 명이니 스킬 낭비하지 말고 그냥 무기만으로도 되겠는데?”
“제가 회오리로 하나 날릴까요?”
“아냐, 괜찮을 것 같아. 스킬 아끼자.”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모든 기술을 쏟아붓듯이 해서 간신히 물리쳤던 엘리트 오크 경비병.
이젠 적절히 패주면서 백스텝 몇 번 밟으면 쓰러진다.
이 몬스터를 처음 잡았을 때 이준기는 3레벨이었지만, 지금은 21레벨.
그때는 보급품 무기, 지금은 에픽 무기 두 개를 들고 싸운다.
문아린 역시 23레벨을 도박으로 따 모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준기가 기대한 수준 이상이었다.
대개의 다른 구원자들과 마찬가지로, 문아린도 지금까지는 탱힐딜을 갖춘 파티로 몬스터를 사냥하기만 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책임을 오직 자신만이 진 적은 지금이 처음일 터.
경비병 셋을 모두 눕히고 나서, 숨을 몰아쉬는 문아린을 향해 이준기가 말했다.
“솔로잉, 이전에도 해본 거야?”
“아뇨. 이게 솔로잉이에요?”
“뭐, 둘이니까 솔로잉은 아니지. 하지만 지금 우리 파티는 완전 이레귤러잖아. 탱딜힐, 정규 편성이 아니고.”
“그래서 힘들어요. 헥헥.”
“처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하는걸. 고마워.”
“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준기 오빠보다 레벨이 두 개나 높은데.”
“하하.”
이준기는 인벤토리에 퀘템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확인했다.
“균형석 두 개를 다 모았으니, 이제 기계실로 가야지?”
“미션 설명에 따르면, 그렇네요. 기계실 평형추에 균형석 두 개를 넣고 스위치를 돌려버리면.”
“기계실로 통하는 골목에, 여기에서 두 번째로 센 몬스터가 나올 거야, 아마.”
“헤헤, 또 이준기 표 예언이네요.”
“뭐, 그런 거지.”
기계실 계단으로 이어지는 골목에서 경비 두 마리를 가볍게 처치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골목이 꺾이는 곳에서 벽에 몸을 숨기고 이준기는 기계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몬스터, 스톤 골렘.
처음 보는 문아린은 놀랄 수도 있다.
“아린아, 혹시 골렘이라고 알아?”
“골룸이요? 마이 프레셔스?”
“음. 그 녀석처럼 나름 귀여운 놈은 절대 아니고.”
“엑. 혹시 뭐 징그러운 거예요?”
“아니. 그냥 돌로 만든 로봇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 처음 봐서 놀랄까 봐 가르쳐 주시는 거?”
“움직이는 돌덩어리니까, 도끼에 타격 안 받는다고 놀라지 말라고.”
“에? 정말요? 도끼에 타격을 안 받는다고요?”
“두 번에 한 번은 타격이 아예 안 들어갈 거야. 그건 알고 덤벼야지.”
오빠는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으려다가, 문아린은 멈췄다.
그런 질문에는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이미 아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전략은?”
“음. 잠깐.”
이준기는 ‘이르헬의 눈’을 발동해서 문아린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 23레벨.
- 전문화: 물 5, 바람 9, 흙 9.
- 강인함 60. 민첩성 50. 통찰 20. 집중 15.
- 성흔: 없음.
- 획득 스킬: 공성타, 바크스킨.
- 인벤토리: 척추파쇄자, 다마스커스, 오크 분쇄자의 검, 강화 국궁, 일반화살 20개, 체인메일+1, 토끼 사냥꾼 장갑, 중급 힐링 포션 7개, 기본 식량 팩 6개.
공성타, 바크스킨이라니, 꽤 훌륭한 희귀 스킬을 가지고 있다.
스탯은 초반에 조금 막 찍은 감이 있지만, 꽤 준수한 상태다.
구원자로 각성하고 귀족 놀음이나 하는 보통의 구원자들과는 다르다.
읽어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준기는 연극을 시작했다.
“아린이 스킬 트리가 어떻게 되더라?”
“물, 바람, 흙요.”
“획득 스킬은 뭐 가지고 있어?”
“공성타랑 바크스킨 있어요.”
“오, 공성타! 그걸 쓰면 되겠다.”
“이거요?”
- 공성타. 바람 1, 흙 4 소요. 사정거리 5미터. 주변에서 불러 모은 흙 원소 결정체를 모아 바람의 에너지로 날려 강력한 충격 대미지를 가합니다. 물리 저항에는 영향을 받으나, 물리 방어를 무시합니다.
스톤 골렘은 날붙이 공격을 50% 확률로 무시하는데, 충격 대미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공성타 대미지는 그대로 들어간다.
“공성타로 개시해요?”
“그게 좋을 것 같아.”
“그럼, ‘바람의 가호’ 이거 넣고 공성타 쓸게요.”
“역시, 아린이 최고.”
문아린은 ‘바람의 가호’를 썼다.
다음 1회 공격에 한해 힘과 민첩을 10 증가시키는 기술.
공성타 대미지 역시 상당히 증가한다.
초록색 책 1권과 갈색 책 4권이 떠올라 문아린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3초간 정신집중을 하고, 문아린은 벽 바깥으로 한 걸음을 내밀면서 스킬을 날렸다.
“공성타!”
스톤 골렘이 기척을 감지하고 이쪽을 바라보더니, 공성타의 충격을 받고 뒤로 쓰러졌다.
빠르게 달려온 이준기가 패시파이어를 들어 쓰러진 골렘에게 내리쳤다.
- 스톤 골렘이 공격을 완전히 무효화했습니다.
“흠, 역시.”
이준기가 뒷걸음질을 치는 사이, 공성타를 날리고 뛰어온 문아린이 일어서는 스톤 골렘을 향해 척추파쇄자를 휘둘렀다.
- 스톤 골렘의 단단한 외피가 당신의 공격을 무력화했습니다.
“와아, 진짜 단단하네요!”
문아린이 옆으로 비키면서 외쳤다.
이어지는 이준기의 패시파이어. 찌르기 공격.
- 스톤 골렘에게 14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 스톤 골렘이 ‘둔화’에 걸렸습니다.
“아싸!”
문아린이 외쳤다.
스톤 골렘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이준기와 문아린이 복도의 양쪽에 서서 앞뒤로 스텝을 밟으며 양손검과 양손 도끼를 휘둘렀다.
***
섬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쌕쌕거리며 자던 주석이 눈을 떴다.
“으자자자!”
기지개를 켜고 나서, 주석은 사뿐히 점프하며 일어섰다.
“아침, 먹어야지. 아니, 브런친가?”
주석은 인벤토리에서 기본 식량 팩을 꺼냈다.
분명히 몸에 좋을 것 같은, 대단히 맛이 없는 커다랗고 딱딱한 빵.
하지만, 허기를 없애주기는 한다.
“흠…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겠지. 뭘 먹을까? 치킨? 피자? 초밥? 어휴 배고파.”
3라운드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하민서를 처치했다.
사원 나무 아래에 숨어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조금 더 기다리니, 이준기와 문아린이 나타났다.
두 명을 한꺼번에 사냥하는 건 조금 무리일 것 같아 기다렸다.
문아린이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지는 건 처음 봤지만, 아마도 사원 입장을 클릭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혼자가 된 이준기 앞에, 주석은 멋지게 나타나 도발했다.
그러나 이준기는 산뜻하게 줄행랑을 쳤다.
'소문으로 듣던 것과는 달랐다, 이거지. 그러나 방심은 하지 않는다.'
이준기가 사라진 다음, 다섯 번째 생존자를 찾기 위해 주석은 두 개의 '게스 후'를 써야 했다.
남은 한 명은 김형채였다.
서둘러 표시된 위치로 가봤더니 마치 거미줄에 걸리기라도 한 듯 달리는 자세로 얼어 있었다.
우스운 꼴을 마음껏 조롱해 주면서 간단히 정리.
그게 어제 오후 네 시쯤이었다.
문아린과 이준기를 쫓아 곧바로 사원으로 올라가면 매복에 당하기를 자청하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신중한 이준기라면, 밤중에 급습하는 걸 걱정하고 밤을 새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주석은 나무 그늘 아래서 신나게 잠을 잤다.
그리고 지금, 토요일 아침 늦게까지 충분히 잤고, 이제 허기도 해결했다.
‘시간제한은 24시간. 그게 오늘 두시 반까지. 그렇다면 네시간 반 정도 남았네? 서둘러야 하나?’
주석은 느긋하게 상태창을 열었다.
- 오크 사원으로 진입하시겠습니까?
“물론이지.”
***
“후우! 시간 많이 잡아먹네요.”
“수고했어, 아린아.”
“준기 오빠 따라다니면, 두 명이서 던전 다 깨고 다닐 거 같은데요.”
이준기는 정말 그래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문아린은 자기 몫을 충분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투명할 정도로 솔직한 사람이다.
쓰러진 골렘에서 전리품을 줍고 난 다음, 둘은 기계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계실은 생각보다 좁았다.
평형추가 어디 있는지는 그냥 봐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실린더같이 생긴 거대한 통 안에, 색이 다른 두 가지 액체가 섞여 있었다.
그 두 가지 액체가 서로 층이 나뉘어 실린더 내의 공간을 반씩 차지하고 있었다.
“균형석을, 여기 두 군데에 맞춰 넣고, 스위치를 올리면…”
평형추 실린더가 잠깐 흔들리더니, 들어 있던 액체의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아래쪽 액체가 거의 사라지자, 실린더가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심하게 흔들렸다.
“이제 나가자!”
기계실 전체가 흔들리는데도 흥미롭다는 듯이 실린더를 쳐다보던 문아린.
이 게임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둘은 기계실을 빠져나오고, 돌문을 밀어 닫았다.
닫은 문 안쪽에서 점점 더 크게 삐걱거리고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 된 거예요?”
“그렇지.”
“그런데 왜 미션 클리어 메시지가 안 나와요?”
“그건 아마…”
히든 몬스터가 있다는 말이다.
즉, 사원 2층에 있는 신관실에 가봐야 한다는 얘기.
기계실 평형추를 파괴하면 원래 미션은 끝나게 되어 있다.
미션 종료 메시지가 안 나온다는 것은 신관실에 있는 오크 대사제가 마법을 동원해서 사원의 붕괴를 막고 있다는 말이다.
딱히 나쁜 일은 아니고,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는 것.
히든 몬스터는 레어급 이상의 아이템을 반드시 드랍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잡을 이유가 없었던 오크 대사제를 잡아야 하니 조금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지만.
“2층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에? 왜요? 미션 설명에도 그런 건 안 나오네요.”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도, 사원이 안 무너진다. 그렇다면 몬스터를 싹쓸이해 보기라도 해야지.”
“정말요?”
“적어도 여기 총책임자는 잡으라는 얘기겠지?”
이준기를 따라, 문아린은 복도를 지나 1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들어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