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61. 주석

by 히말

장혁수, 소현배.

왜 그들과는 달리 살의나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까?

주석과 칼날을 교차하며 이준기는 생각했다.


배시시 웃는 살인미소 캐릭터라서?

살인미소?

어쩌면 장혁수보다 더한 사이코패스다.


이준기와 주석.

검날 네 개가 현란하게 교차하며 불꽃을 튀겼다.

리허설이 잘된 2인 1조의 군무를 보는 듯하다.


분명히 둘 모두, 날붙이 상대방의 몸에 닿게 하려고 저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칼날 네 개는 상대방의 몸에 닿지 못하고 중간에서 서로 만나기만 할 뿐이다.


“오오, 이준기 선배. 자신감 가질 만하네요. 저렙이라고 깔보면 안 되겠네.”

“주석, 너도 대단한데. 죽이기에는 실력이 아깝다.”

“누가 누굴 죽일까요?”

“글쎄. 궁금하냐?”


이준기는 주석의 칼날을 오른쪽으로 제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잠깐 옆으로 기울었지만 금방 몸의 균형을 되찾은 주석이 한쪽 발을 중심으로 가볍게 피벗 해서 뒤로 돌았다.

돌아선 주석을 향해, 이준기의 숏소드, ‘오캄’이 위에서부터 수직으로 내려왔다.


피핏!


주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 준기 오빠!”


이준기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귀검, 주석이 장기로 내세우는 희귀 스킬.

가공할 위력이지만, 겨우 2초 동안 지속될 뿐이다.

2초 동안만, 전신 모든 감각의 날을 세우면 된다.


- 귀검. 어둠 4, 바람 6 소요. 즉시 시전. 자신의 이동 속도를 400%, 공격 속도를 100% 증가시킵니다. 2초 동안 지속됩니다.


공격 속도가 두 배가 되는 것, 분명히 엄청난 위력이다.

그러나 다섯 배로 증가하는 이동 속도가 훨씬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귀검’의 제물이 되는 사람들은 그 빠른 이동 속도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만다.

빠른 발놀림에 현혹되지 말고,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포인트.


챙!


“어라?”


단검이 이준기의 무기에 막힌 주석이 뒤로 두 걸음을 빼면서 말했다.

이준기도 무기를 앞으로 세운 채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대꾸했다.


“놀라긴 아직 이른데.”


다시 거리를 벌린 둘이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준기 선배, 잘난 척 할 만하네요?”

“어때? 우리 제안대로 함께 오크 사원이나 정리하는 건?”

“그건 항복하는 거잖아요. 저도 자존심이 있는데.”

“자존심이 중요해? 귀검, 그거 책 소모가 심해서 몇 번 더 못 쓸 텐데?”


희귀 스킬 귀검에 대해 아는 이준기에 대해, 주석은 다시 경계심을 느꼈다.


“우와, 이준기 선배 공부 많이 한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별걸 다 아시네.”

“네 말대로, 쪼렙이니까. 살아남으려면 공부해야지.”


대화를 끌면서, 이준기는 ‘이르헬의 눈’을 통해 주석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 26레벨.

- 전문화: 어둠 10, 바람 14, 마나 2.

- 강인함 60. 민첩성 80. 통찰 20. 집중 10. 물리 저항 25. 마력 저항 10.

- 성흔: 없음.

- 획득 스킬: 귀검.

- 인벤토리: 썬더볼트, 크레센트, 강화 국궁, 강화 화살 20개, 세련된 가죽 장갑, 애쉬 슈라우드, 숲 지기의 장화, 중급 힐링 포션 9개, 기본 식량 팩 4개.


‘무기는 괜찮은 편이지만, 성흔도 없고 획득 스킬도 귀검 하나뿐이다. 스탯으로 나타나지 않는 재능이라는 건가.’


“겨우 20, 아니 21레벨이라면서요. 이 선배 정말 대단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습이라도 할 걸 그랬어요.”

“너도 대단하다. 주석. 정말 대단한 실력이군.”

“길드에서 유망주 취급받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 유망주 시절은 지났나? 암튼, 뭐 그랬어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 다시 시작할까?”


설득이 안 된다면 실력으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 없다.

오른손의 검을 치켜든 이준기가 주석을 향해 돌진했다.

기다렸다는 듯, ‘귀검’을 써서 이준기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주석.


피핏!


순간, 움직임을 멈춘 이준기는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평소의 다섯 배 속도로 움직이는 주석이 방향을 틀어 이준기를 향해 날아왔다.


챙!


평소 속도로 돌아온 주석, 그리고 이준기가 서로 다시 칼날을 대고 있다.


문아린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40분.

전투를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지만, 양쪽 모두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이준기 선배, 아이템은 안 써요? 뽑기 아이템요.”

“응, 그거? 난 이미 썼는데?”

“뭔데요?”

“컵라면. 어제저녁에 아린이랑 하나씩 먹었지. 두 개 나왔거든.”


이준기가 문아린을 살짝 바라보고, 문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엉? 정말요? 아이템 두 개 뽑은 게 다 컵라면이라고요?”

“나도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야. 운수 오지게 좋지?”

“뭐, 저도 똑같은 거 두 개 나왔는데, 어제 김형채 선배한테 다 썼습니다.”

“그렇군. 공평하네.”

“공평하네요. 그렇죠, 아린 누나?”


문아린은 대답하는 대신 주석을 노려보았다.


“대답도 안 해주시네. 좋아요, 좋아. 갑니다!”


다시 ‘귀검’을 발동해서 이준기에게 날아드는 주석.


‘썬더볼트의 효과로 발동하는 마지막 귀검. 이것만 피하면 된다.’


이준기는 정신을 집중하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석조 건물, 돌로 된 바닥이라서 그런지 발소리가 더 잘 들린다.

주석은 미처 그 차이를 계산에 넣지 못한 모양이다.


챙!


오른쪽 뒤에서 달려드는 주석의 칼날.

이준기는 앞으로 한 발을 디디면서 오른손의 ‘오캄’으로 주석의 공격을 쳐냈다.

주석이 연속 동작으로 왼손의 단검을 찔러왔다.


푹!


주석의 왼손에 들린 단검, 크레센트가 이준기의 갑옷을 뚫고 들어왔다.

단검이 이준기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아하!”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주석.


다음 순간, 이준기의 검이 주석의 빈 허리를 가르고 들어갔다.


“헉!”


‘귀검’의 속도 버프가 끝난 주석이 왼쪽 허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그의 왼손이 비어 있다.

힘이 들어간 어깨 근육에서 주석이 칼날을 빼내지 못한 것이다.


이준기가 빠르게 달려들어 오른손의 오캄을 휘둘렀다.

쓰러진 채 왼손을 뻗어 오캄을 막으려던 주석.

이준기의 오캄이 주석의 왼손을 관통했다.


"끄아아아!"


물론 어깨보다 신경이 더 많이 분포된 손이 더 아프기는 하겠지만,

어깨를 찔리고 가만히 있었던 이준기와 달리 주석은 소리를 질러댔다.

주석은 찔린 왼손을 품에 감싸 안으며 굴렀다.


퍽.


돌바닥에서 거둔 시야를 상대를 향해 돌리는 사이, 주석의 시야가 좁아지고 흐려져 갔다.


***


9월 25일 정오.

하루 전 오전 11시에 진입했던 공격대가 차원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서히 소멸하는 차원문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공격대원들을 향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차원문을 둘러싼 군인들이 기자들을 제지하며 거리를 벌리려고 애썼다.


"차원문이 소멸합니다!"

"오크 사원을 붕괴시킨 거군요?"


차원문 바깥으로 나오는 사람이 더는 없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외쳤다.

"지금 이게 생존자 전부인가요?"


순간, 기자들이 얼어붙었다.

너무 적다.

사상 최악이라 해운대 차원문조차 인명피해 수준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 그게..."

문아린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피곤한데요, 나중에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하면 어떨까요?"

이준기가 말했다.


군중 사이에서 최정윤이 기자들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충무공-탑픽 길드 소속 최정윤입니다! 저에게 질문 주시면 메일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 문아린이 물었다.

"준기 구원자님은 언제나 예상보다 빨리 나오시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죠."


"그럼, 부탁할께요, 최정윤 대리님."

이준기는 문아린의 손을 잡고 군중을 헤치며 걸었다.


이준기.png 이준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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