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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 나무

앙리 4세와 오바마 대통령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것

by 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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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가 그린 <에스파냐 대사를 접견하는 앙리 4세>라는 그림이다. 앵그르야 엄청 후대 사람이니, 보고 그린 것도 아니고 다만 상상화일 따름이지만, 이 그림은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앙리 4세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당나귀나 노새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 대사 앞에서 이게 웬 국가 망신이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격' 좋아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국격은 그런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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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남자가 아이의 장난에 장단을 맞춰주는 모습이다. 백악관을 방문한 직원의 아들은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거미줄을 쏘는 시늉을 한다. 허례허식이나 가면을 쓸 이유가 가장 없을 이 상황에, 오바마 대통령은 기꺼이 노력을 쏟아붓는다. 이 사진이 단지 연출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환경미화원과 주먹 인사를 나누는 그의 모습, 그리고 빈 라덴 검거 작전 때 브리핑 룸 가장 말석 의자에 쭈그려 앉아서 설명을 듣던 그를 기억한다.


국격이라는 게 정말 존재한다면, 앙리 4세나 오바마 대통령의 저런 모습이야말로, 국격을 높이는 요소일 것이다.


참고로, 앵그르의 그림과 오바마의 저 사진을 내게 소개한 것은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라는 책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가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연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연기할 필요가 없는 순간에도 한 아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제3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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