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케이스 하나 분량의 짐.
그리고 평온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나에겐 최고로
사치스러운 행복의 모습이거든요 (시메노 나기, <밤에만 열리는 카페 도도>, 프롤로그 중에서)
이사짐을 쌀 때마다, 도대체 이걸 왜 아직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물건들을 만난다.
어떤 소설을 읽는데, 주인공이 캐리어 2개 분량의 짐으로 셋방에 이사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시대적 배경은 20세기 초다.
아무리 1인 가구라 해도, 캐리어 2개 분량의 짐이라는 데 꽤 깊은 울림을 받았다.
(그 짐에는 스컹크 1마리와 그를 위한 우리까지 포함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자기 집이라는 건 생각도 못하고 셋방에 살던 사람들을 우리는 문학 작품에서 자주 만나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수많은 작품들, 위고의 레미제라블레, 심지어 1920~30년대 우리나라 소설들까지.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자.
주인공 두 명에게는 짐이랄 것이 아예 없는 수준이다.
고골의 <외투>는 또 어떤가?
반면, 톨스토이의 주인공들은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 간다.
그들도 들고 다니는 짐은 별로 없다. 여행 가방 몇 개 정도?
대저택과 별장에 (하인들을 포함해서) 필요한 것들이 다 갖춰져 있으니 여행은 가볍게 다닐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 역시 마지막 장면을 보면, 부자와 결혼하게 된 여주인공에게 갑자기 짐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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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케이스 하나 분량으로 과연 짐을 쌀 수 있을까?
일주일 분량의 속옷 만으로도 벌써 공간이 꽤 찬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화끈한 덕분에 계절별로 옷이 필요하다.
부엌용품을 생각하면 머그컵 하나, 밥그릇 하나, 그리고 라면 냄비 1개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사사키 후미오처럼 식사 때마다 곧바로 설거지를 해야 함을 물론이다.
요리를 적게 하려면 전자레인지도 필요하다.
미세먼지가 무서우니 공청기도 있어야 한다.
겨울 아토피 악화를 막으려면 가습기도 있어야 한다.
도라에몽 주머니가 있으면 참 좋겠다. (발더스 게이트에서도 무한의 가방은 필수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