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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19. 2024

신화가 세상으로 내려오면
선악이 사라진다

[감상평] 이상규, <호랑이 형님>

작화, 스토리, 세계관, 캐릭터 무엇 하나 부족한 요소가 없는 완벽한 웹툰, 호랑이 형님.

칭찬할 점이 끝이 없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독특한 개성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점은

등장인물들의 선악 구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듯.



제1부는 아랑사라는 아이를 지키는 호랑이, 산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추이와 황요라는 두 캐릭터는 외모만으로도 악당 그 자체다.

그러나 에피소드 몇 개만에 추이의 과거가 드러나고, 독자는 추이의 울부짖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흰눈썹의 말대로, 살기가 막막해 사냥감이 많은 땅을 찾아왔을 뿐이다.


추이가 호랑이를 사냥한 것이 악행이라면, 소가 풀을 뜯는 것도 악행이다.

이후로도 추이의 선한 면모는 계속 드러나는데, 부하들을 아끼고, 힘을 남용하지 않으며, 공정하고 관대하다.

다만, 나는 산군의 팬이기 때문에 추이를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


제2부의 서사는 1부에 비해 훨씬 길고 복잡해서, 주인공도 계속해서 바뀐다.

그러나 역시 중심 캐릭터는 빠르와 이령이다.


빠르는 그동안 전설 내지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성장형 주인공'이다.

단지 실력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바뀐다는 점이 놀랍고, 그 변화가 굉장히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는 점이 경이롭다.


선악이 불분명한 작품이라 말했지만, 빠르는 작품 제목에서도, 시놉시스에서도 드러나듯 이 작품의 메인 주인공이고, 그런 이유로 선역이 아닐 수 없다.


1부 막바지에 등장한 이령보다 더 악랄한 인물은 이 웹툰에서 찾기 어렵다.

그의 악행은 2부에서도 이어진다.

그런데 동기를 알기 어려운 그의 행동에 대한 실마리가 2부 종반부로 가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가 단순한 대악당이나 중간 보스가 아니라는 의심을 가지는 독자들이 늘어난다.

그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3부에 이르러, 우리는 조금 더 큰 그림을 보고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3부 프롤로그는 그동안 궁금했던 이 작품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놀랍게도, 세계관의 근원에는 여신 아부카허허 대 악마 예루리라는 선명한 선악 구도가 존재한다.


시놉시스는 빠르+무케+아랑사+가우리 대 흰눈썹이라는 선명한 선악 구도를 보여주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는 이 구도가 이루어지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과 사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최종 보스로 흰눈썹은 너무 약하고,

미래 최강 후보인 무케와 아린의 조각을 가진 아랑사가 함께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빠르 역시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3부 프롤로그를 보고 나면, 이 작품의 진정한 선악 구도는 악마 예루리와 그를 막을 자들이다.


누가 예루린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팬들이 추측을 내놓고 있으며, 그것 또한 즐거운 상상의 영역이다.

시놉시스대로라면, 예루리가 흰눈썹에게 빙의해야 하겠지만,

'흰눈썹'은 어쩌면 고유명사가 아닌 '흰색 눈썹'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압카가 아주 강력한 후보다.)


예루리에 맞서는 최후의 전쟁에서, 주인공 쪽 진영에 누가 포함될지 생각해 보자.

주인공 빠르와 그의 파티, 즉 무케, 아랑사, 아비사, 가우리는 당연히 포함될 것이고,

빠르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추이 역시 이쪽에 설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부터 어려워진다.

추이는 아랑사의 아버지, 즉 아린과 불구대천 원수 관계다.

무케의 아버지 무커를 죽인 것도 추이다.


추이와 같은 편인 황요, 그리고 황요가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흰눈썹이 최종 보스 '흰눈썹'에게 대항한다고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극에 달한다.

게다가 황요는 빠르의 부하들을 몰살해서 그에게 크나큰 슬픔을 안겨준 인물이다.

(빠르가 우는 유일한 장면이다.)



신화의 단계에서는 분명했던 선악 구도가,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복잡하게 뒤섞여 버린 느낌이다.

작가 본인이 분명하게 절대선이라 말했던 가우리, 그리고 구다국 사람들 정도를 제외하면 이 작품에서 절대선 또는 절대악이라 부를 만한 인물은 찾기 어렵다.


절대악에 가장 가까워 보였던 이령도 나름대로 억울한 사정을 많이 겪었다.

이령의 입장에서 볼 때, 완달은 아버지가 아니라 원수에 가깝다.


강약약강 불량배에 불과한 녹치조차 동족에 대한 연민, 황요에 대한 보은 같은 긍정적인 요소를 보인다.


선한 요소가 거의 없는 캐릭터로는 '제' 백초거가 있지만, 이미 은퇴한 인물이라 최종 보스가 될 수 없다.

(제와의 전쟁 에피소드에 대한 독자 평가가 박한 이유에는 너무 평면적인 악역 설정도 있다고 본다.)


D&D 세계관에서 드루이드는 진정한 중립(true neutral) 성향이다.

세계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이라는데,

호랑이 형님 세계관에서 이 신념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구망이다.


그가 추구하는 질서는 악마 예루리가 영원히 봉인된 선한 세상일까,

아니면 선과 악이 공존하며 견제하는 균형의 세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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