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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필요한가?

[책을 읽고] 대니얼 데닛 ,<직관펌프> (3)

by 히말
lloyd-newman-NQexDDK9P9w-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Lloyd Newman


무한 후퇴의 중단과 '셈이다' 연산자


기초적 원자 벽돌의 수준을 넘어서면 항상 어느 정도의 행위자성(agency)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지향계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19장 중)


예를 들면 신경 세포의 행동을 마치 그것이 어떤 의도를 가진 것처럼 해석할 수 있다. 더 적절한 사례로 나는 데닛 자신이 서평(후기)을 쓰기도 했던 도킨스의 유전자를 들고 싶다.


이런 식으로 어느 수준에 행위자성, 즉 지향계를 인정하면, 설명의 무한 후퇴가 방지된다. 예컨대, 세포 이전에는 물리적 태도를 취하고, 세포부터는 지향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느 수준(상기 사례에서 세포)에 선을 긋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언제부터 세포였냐는 질문이다. 흔히 말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이건 아주 전형적인 철학적 질문이다. 그런 질문에 무슨 쓸모가 있냐는 환청이 들리는 그런 질문 말이다. 그러나 데닛은 철학자다. 그래서 대답한다.


우리가 '셈이다' 연산자라고 부르는 것은 인지과학에서, 진화 과정에서의 다윈의 점진주의에 해당한다. 세균이 있기 전에 세균인 셈인 것이 있었고, 포유류가 있기 전에 포유류인 셈인 것이 있었으며 개가 있기 전에 개인 셈인 것이 있었다 - 이런 식이다. (21장 중)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데닛 이전에도 그랬다.) 닭이 아닌 어떤 생물이 진화하여 닭이 된 것인데, 그 생물이 알껍질을 깨고 나온 시점 전에 그 생물을 닭이라 부를 것인지 (이 경우 달걀이 먼저다) 그 시점 이후에야 닭이라 부를 것인지의 문제다. 따라서 이건 그저 언어의 문제다. (살다 보니 내가 전기 비트겐슈타인에게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다 생기는군.)


christian-bowen-CKurYAr-5YM-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Christian Bowen


그러나 이 질문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바로 점진주의다. 어느 시점에 닭 아닌 생물이 알을 낳았는데 거기에서 닭이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닭을 나은 그 생물은, 데닛에 따르면 닭인 '셈이다.'


이로써 설명 단계를 계속 전 단계로 돌리는 무한 후퇴도 피할 수 있고, 지향계와 지향계가 아닌 것 사이의 선을 그을 필요도 없다. (그 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연구(공부, 철학, 사유)를 위해 그 선을 반드시 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 일이 가지는 중요한 결과는, 영혼(데닛은 '마법의 조직'이라 부른다)이나 신, 본질 따위를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플러스 알파'를 배제한다. 얼마나 상쾌한가.



설계적 태도와 지향적 태도


이해가 있을 수 있기 전에 이해 없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3장 중)


예를 들면, 뇌가 그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지기 전에, 신경 세포 사이의 '기계적 배선'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윈 식으로 말하자면, 날기 위해 날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어떤 조직이 있었고 어느 순간 생물이 그걸 이용해 날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인데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철학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3부에서 설명되는 컴퓨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트랜지스터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그들은 어느 순간 '가상기계'의 단계에 돌입한다. 어느 순간 뇌가 되는 신경 세포들의 연결과 마찬가지다. 컴퓨터는 뇌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용하다. (지금 벌어지는 AI 혁명이 그 증명을 종결하는 중이다.)


해부학적으로 온갖 차이가 있음에도 프랑스어 사용자들의 뇌에 어떤 유사성이 있는가는 '가상기계 수준'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어 사용자들은 모두, FVM, 즉 프랑스어 가상 기계를 가졌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25장 중)


조금 더 쉽게 비유하자면, 프랑스어 OS가 깔린 것이다.


anthony-choren-lYzap0eubDY-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nthony Choren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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