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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A-free가 더 위험하다

[책을 읽고] 계명찬, <화학물질의 습격>

by 히말

화학물질을 피하는 방법, 아니, 화학물질과 함께 사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피하는 방법이란, 사실상 없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욕구 피라미드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안전을 강조하는 마케팅은 먹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GMO-free, 유기농, 친환경, BPA-free 따위의 레이블이 넘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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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A-free가 더 위험하다


책의 주제가 화학물질인 만큼, BPA(비스페놀A)에 주목해보자.

소위 환경호르몬이라 불리는 위험한 물질이다.

BPA-free는 괜찮을까?

아니다. 더 위험하다.


BPA에 관해서는 많은 실험 결과가 나와 있고, 위험성 역시 알려져 있어 조심할 생각이라도 한다.

그러나, 대체물질인 BPF나 BPS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나와 있지 않을 뿐이다.

화학구조가 유사한 만큼 (그래서 이름도 비슷한 것이다) 호르몬 체계에 비슷한 교란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거의 확실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BPA를 피하는 방법도, 사실상 없다.

수도관의 내부 코팅제로 쓰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병 생수로 샤워를 하지 않는 이상, 피부로도 침투된다.

물론, 플라스틱 병 생수가 더 안전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가장 위험한 것만이라도 피하는 차선책을 택해야 한다.


영수증 한 장에 들어 있는 비스페놀A의 양은 캔 음료나 젖병에서 나오는 양보다 수백 배 많다. (1부 2장 중)


땀이 나거나 로션을 잔뜩 바른 손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게다가, 피부를 통해 흡수된 BPA가 경구 투여된 것보다 체내에 더 오래 잔류한다.



플라스틱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우려도 이제는 꽤 상식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미세 플라스틱, 그거 별 영향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혈액과 세포 소기관에서까지 나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얼마 전에는 뼈조직의 일부를 플라스틱이 대체하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상상력도 필요 없다.

플라스틱으로 된 뼈가 과연 튼튼할까?


대체적으로 가장 단단하고 안전한 플라스틱은 PP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건 제조 단계에서의 얘기다.

세상 모든 물질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도 닳는다. (풍화한다.)

플라스틱이 닳으면? 물론이다.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


그런데 그 플라스틱을 가열하고, 매운 음식을 담고, 흔들어대면?

더 빨리 닳는다.


이 책은 고맙게도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지만, 단순하게 기억하는 것이 더 편하다.


플라스틱은 원래 용도로, 짧게 사용하고 재활용하자.


MV5BZWM1YzRhODktZDE1MC00NzBlLTk0NGMtOGNhZDQyMmJiZGFiXkEyXkFqcGc@._V1_FMjpg_UX1000_.jpg 나는 로보캅. 그런데 뼈가 (생활) 플라스틱 재질이야.


아래는 심화학습이다.


PC(폴리카보네이트)는 대체로 투명하다. 원재료가 BPA다. 말이 필요없다. 식당에서 투명한 플라스틱 물컵이 나왔다면, (호텔이 아닌 다음에야) 매우 높은 확률로 PC 재질이다. 물 마시기를 잠깐 자제하자.


PET(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는 약자가 더 유명하다. PET병이라는 것도 있지만, 대개 중간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생수병 재질을 확인해 보자. PET 역시 BPA 유사물질을 만들어낸다. 햇빛은 모든 플라스틱을 참 잘 분해한다.


CP(코폴리에스테르)는 꽤 생소한 이름이다. BPA 대체물질 중 그나마 양심적인 것으로, 아직까지 실험 결과는 꽤 괜찮은 편이다. (호르몬 유사 효과를 낸다는 연구도 있다.) 다만, 매우 비싸다. 따라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PS(폴리스티렌)은 이름에서도 보듯, 스티로폼의 원료 물질이다. 그냥 봐도 위험해 보이는 물질이다. 예전에 스위스에서 일회용 커피컵으로 스티로폼을 줘서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스티로폼은 조금만 가열해도 녹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근처에도 가지 말자. 다만, PS는 다른 플라스틱과 섞어 쓰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재질을 잘 확인해 보자.


PVC(폴리염화비닐). 또 유명한 이름이다. 왜 유명할까? 위험해서다. PVC는 플라스틱 주제에 내열온도가 65도에 불과하다. 끓는 물이 아니라 약간 뜨거운 물도 담아서는 안 된다. 워낙 유명해져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식당용 랩에는 아직도 PVC 재질이 허가되어 있다. 짬뽕 배달은 자제하는 게 좋다. (가정용 랩은 전부 다 PE 재질이므로 훨씬 더 안전하다.)


과불화화합물. PFOA가 대표적이고, 테팔 코팅으로 유명하다. 독성은 약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배출이 거의 안 된다고 보면 된다. 듀폰 사와 관련된 유명한 영화 때문에,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려져 있다. 9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과불화옥탄산 혈중 농도가 최고로 나타났다. 일본, 미국의 30배라고 한다. 편하기는 하지만, 조심해서 사용하자. 특히, 프라이팬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가열하지 말자. ("일단 프라이팬을 덥혀 주세요.") <절대미각 식탐정>에도 등장하는 살인 트릭이다. 오래된 프라이팬, 특히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은 당장 갖다 버리자.


9788925892313.jpg "적당히 타면 맛있어!" (그렇긴 하지...)


화장품, 세정용품


화장품 업계에 파라벤 프리가 열풍이다.

그러나 파라벤은 위험성이 알려져 있어 사용량이 규제되며, 독성이 가장 약한 편인 보존제다.

BPA와 마찬가지 상황이다.

파라벤이 들어 있지 않은데 유통기한이 긴 화장품이 있다면, 더 위험하다고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천연 화학물질이라고 다 안전한 것도 아니다. (독은 자연에 널려 있다.)

예를 들면, 라벤더는 에스트로겐 유사 효과를 나타낸다. BPA와 마찬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세정제도 대개 유해할 수밖에 없다.

세정제는 유화제이며, 물과 기름을 섞는다. 그래야 때가 빠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때만 단백질, 지방이 아니다.

우리 몸도 단백질, 지방이다.

베이킹 소다, 구연산으로 대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세정력이 약한 것은 감안해야 한다.


(사족이지만, 세정용품은 내가 캐나다 P&G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할 때 담당했던 제품군이라 왠지 반갑다.)



숨 막히는 화학물질들


폐를 통해 들어오는 물질들로 유명한 것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들로, 새집증후군으로 유명해졌다.

벤젠은 세상 도처에 깔려 있으므로 피할 수 없다. 냄새가 강하므로 쉽게 알아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자.


시너의 주원료인 메틸벤젠(톨루엔), 난연제, 잉크도 당연히 유해하다.

콩기름 인쇄는 안전 마케팅 중에 그나마 양심적인 부류에 속한다.



먹거리


MSG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넘어섰다.

이런 종류의 의견에 다수결을 적용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MSG가 안전하다는 의견은 첫째,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다 (각종 독도 자연에 존재한다), 그리고 둘째, 위해성이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한다.

위험하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안전하다는 사람들이 많이 즐기도록 양보하고 싶다.


공유재인 지구를 다치게 하므로 그냥 놔둘 수 없는 기후변화에 대한 반대 의견과는 달리,

MSG나 GMO가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냥 많이 즐기면 된다.

주변에 권하지는 말란 말이다.


최근까지도 동물 실험을 통해 MSG가 생식 능력 저하를 유발한다거나 새끼의 뇌 및 신경 발달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1부 7장 중)


식품 첨가물에 관해서 이 책은 간략히 훑어보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 워낙 정보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나는 커피 캡슐 때문에 오랫동안 알루미늄에 대해 조사했는데, 지금은 그냥 적당히 즐기고 있다.

연구결과를 보면, 뇌내 알루미늄 축적은 치매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BPA가 이슈가 되면서 PC 재질 투명 물컵은 예전에 비해 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제조가 불법도 아니며, 예전에 구매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재활용 표기 중 'other'라고 표기된 것은 중합체(믹스)이거나, CP일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CP가 가장 안전한 재질이나, 미래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생산단가가 비싼 CP 재질일 가능성보다는 중합체일 가능성이 높다.

투명한 물컵을 멀리하는 단순한 전략이 좋지 않을까.


페트병 생수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다.

미세 플라스틱은 너무 높거나 낮은 온도에서 더 잘 발생한다.

꽝꽝 얼린 페트병 생수를 쥐었다폈다하는 것은 (내가 예전에 잘 그랬다)

미세 플라스틱 조각을 열심히 생산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되새겨보자.


커피믹스 봉지로 커피를 젓는 것도 위험하다.

코팅제로 쓰인 납이 용출될 수 있다는 것이 무려 식약처의 설명이다.


캔 안쪽의 코팅제는 BPA 에폭시 수지다.

캔음식을 멀리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지만, 과연 그게 쉬울까?

단체급식에는 캔음식이 종종 사용된다.

급식 대상이 아니라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식당은 대규모로 식자재를 소모하는 곳이며, 대규모 식자재는 캔으로 조달하는 쪽이 싸고 편하다.


화장품에 들어 있는 파라벤 등의 환경호르몬을 피하려면, 적어도 목 부근에는 화장품을 좀 줄여보자.

갑상선이 위치한 곳이다.

파라벤의 호르몬 교란 연구에 따르면, 여자들의 갑상선 질환이 남자들보다 많다고 한다.

화장품의 영향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방부제가 적게 들어간 화장품이라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부패로 인해 세균을 바르게 될 수도 있으니, 작은 용량으로 구입해 빠르게 소모하자.


어패류에 축적되는 미세 플라스틱이나 중금속은 주로 내장에 집중된다.

내장을 제거하고 섭취하는 것은 꽤 효과적인 전략이다.


중금속이나 여타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데 제일 좋은 것은 땀이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운동으로 땀을 흘리면 좋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얘기는 아니지만, 견과류에 풍부한 피트산은 미네랄(금속)과 킬레이트 결합을 아주 잘 한다.

영양학자들은 견과류를 너무 많이 먹으면 칼슘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견과 섭취를 통해 중금속을 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그냥 내 무식한 생각인데, 누군가 실험을 해주면 참 고마울 것 같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동물 실험을 세포 실험으로 대체하는 제조사들이 많다.

그러나 세포 수준에서 확인된 실험 결과가 동물 실험에서 뒤집어지는 것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nature.com이나 pubmed에서 논문 몇 개만 훑어보면, 아주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동물권도 좋지만, 세포 실험에서 확인된 안전성은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기타 메모


- 혈중 수은 농도와 인슐린 저항성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발견되었다.

- 신생아의 제대혈에서 200여 종의 화학물질이 검출된다. (태반 배출로 산모는 많은 양의 중금속을 배출할 수 있다.)

- 일반인에 비해 치매환자에게는 DDT가 더 자주, 더 많이 검출된다.



화학물질에 적당히 노출되자?


2015년 미국 내분비학회 발표에 따르면, 환경호르몬의 건강 영향은 U자 모양의 그래프를 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 농도에서 오히려 영향이 적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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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조금 찾아보니, 아 U자 모양의 그래프는 일반적으로 생체 항상성(homeostasis)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즉 독소가 너무 적게 투입될 경우, 생체가 대응 자체를 하지 않는(못하는) 것이다.

이 발견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저농도 노출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로 삼는 편이 안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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