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이 제일 싫다

[책을 읽고] 생물학 명강 라이브 1 (2)

by 히말

생물이 가장 두려워하는 감각은 가려움이다


아토피 환자들은 피가 나도 벅벅 긁어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가 나면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든다.

가려움이 조금쯤 해소되는 느낌이다.


나는 이 현상이 그저 하나의 감각으로 다른 감각을 혼동하는 현상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책에 따르면, 동물이 느끼는 감각은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이 챕터의 저자(나흥식)는 이를 감각의 먹이사슬이라 표현하는데,

통증은 가려움을 잡아먹고, 촉각은 통증을 잡아먹는다.


통증이 있으면 가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토피 환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이 위계에 따라 가려움 대신 통증을 추구하며 마구 긁는다.

가려운 곳을 긁는다는 동물의 행위는 바로 이 위계질서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지독한 통증으로 유명한 대상포진은 바이러스가 통각 신경을 공격하는 병이다.

세포 안으로 칼슘이 밀려들면서 통각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문제는, 바이러스가 끝을 모른다는 점이다.

바이러스가 통각 신경을 쉬지 않고 공격하다 보면, 결국 통각 신경은 사멸한다.


통각이 죽었으니, 이제 통각이 덮고 있던 감각, 즉 가려움이 활성화된다.

대상포진 환자들은 이제 가려움에 고통받는다.


다들 알다시피, 매운맛은 통각이 느낀다.

매운맛 공격을 계속 받다 보면, 통각은 죽을 수 있다.

아토피 환자들은 매운 음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운 음식은 대개 정크푸드라서, 아토피 환자들은 이미 조심하고 있기는 하다.)


brown-dog-scratching-itself-royalty-free-image-1618849483_.jpg 절대 참을 수 없다


전이암의 스펙터클한 모험


암으로 인한 사망의 90% 이상이 전이에 의한 것이라 한다.

'암세포의 위험한 여행'이라는 챕터에서 저자(김미영)는 이것을 암세포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암세포의 입장에서, 이는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기존 인프라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새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 혈류라는 생소한 환경을 견뎌내야 한다.

바다(혈류)를 건너 신대륙(전이위치)에 정착하는 모험과 비슷하다.


이를 단계별로 살펴보면 이렇다.

1. 주변조직으로 영토 확장 (바다까지 영토 확장)

2. 혈류로 침입 (바다로 진출)

3. 혈액순환계에서 생존 (바다에서 살아남기)

4. 타기관 혈관벽에 부착 (신대륙 해안가 상륙)

5. 혈관 밖으로 이동 (해안가에서 개척지로 이동)

6. 새로운 기관에서 증식 (개척지에서 살아남기)


장난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렇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하지 않았던가.

전이암을 공격하려면, 저 6단계의 각 단계에서 효과적인 공격 방법을 찾으면 된다.


책에 나오는 얘기는 아니고 그냥 내 와일드한 상상이지만,

전이암 세포가 바다로 나와 항행 중일 때

혈액암에 특히 효능이 좋은 (글리벡 같은) 치료제를 투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더구나, 전이암 연구에 따르면 암이 인체를 정복하는 루트는 패턴을 보이는 듯하다.

예컨대 유방암은 보통 폐로 전이된 이후, 거기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 뇌로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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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및 부록


모든 챕터가 서로 다른 저자에 의해 쓰인 이 책은, 무질서하지만 흥미로운 지식을 많이 제공해 준다.

첫 번째 글은 RNA splicing을 중심으로 유전자 검사, 그리고 맞춤형 의료를 접목해 정리해 보았다.

두 번째 글은 그냥 지나가기에 아까운 두 가지 주제를 각각 다루었다.


아래에는 그렇게 하고도 남은, 버리기에 아까운 메모들을 공유한다.


-- 치매에 걸려 길을 못 찾는 쥐를 운동시키면, 운동의 종류와 상관없이 기억력이 회복되어 길을 찾는다.

-- 맛 감각은 선천적이다. 맛을 모르는 아기에게 쓰거나 떫은 맛의 음식을 먹이면 표정이 일그러진다.

-- 엽록체는 식물세포의 진핵세포 분열법이 아니라, 원핵세포 분열법으로 분열한다. 엽록체가 시아노박테리아와 같은 원핵세포에서 유래되었다는 강력한 증거다.

-- 뿌리혹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미 분화한 뿌리세포가 역분화하여 줄기세포가 된 다음 재분화를 거친다.

-- 병든 식물 잎에는 점들이 보이는데, 자살 반응에 의해 죽은 세포들의 흔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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