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톰 필립스, <진실의 흑역사> (1)
책의 정체
<인간의 흑역사>를 쓴 그 톰 필립스의 책이다.
촌철살인 블랙 유머를 느끼려면, 조금 느린 페이스로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
원제는 Truth, '진실'이라는 담백한 제목인데,
사실은 콜론(:) 뒤에 '오나전 개소리(total bull**it)의 간략한 역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우리나라 출판사는 필립스의 책들을 <흑역사> 시리즈로 몰고 가려는 듯하다.
그래서 다음 책 제목도 <썰의 흑역사>다.
(아니, 이 사람이 낸 책이 딱 세 권인데 벌써 전부 번역되었잖아?)
<인간의 흑역사>가 인간 역사의 어두운 면을,
<썰의 흑역사>가 가짜 뉴스에 관한 것이라면,
이 책은 헛소문과 사기꾼에 관한 것이다.
톰 필립스가 현재 주필로 일하는 비영리 법인 이름은 <풀 팩트(Full Facts)>이며
이름이 시사하는 것처럼 팩트체크 전문 기관이라 한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당연히 드는 생각이지만,
팩크체크가 필요한 것이 요즘만은 아니었다.
인간 역사는 언제나 거짓말과 헛소문, 사기꾼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 정보 기술이 임계점을 넘어선 요즘,
팩트체크는 생존기술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는 은둔자 미치코 가쿠타니를 열받게 하여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를 쓰게 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토하는 피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느낌이다.
반면, 이 책을 쓴 톰 필립스는 쓴 웃음을 던진다.
바늘이 숨겨져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일단 웃기는 얘기가 나오기는 한다.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현실 자체가 정말 웃기지 않는가.
딱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부정확한 정보
첫 챕터부터 필립스는 비범함을 뽐낸다.
누군가에게 현재 시각을 물었는데, 잘못된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의 수를 나열하는 것이다.
뻔한 것들을 제외하고, 좀 비범한 것들을 적어보면 이렇다.
당신은 전화로 물었고 상대방은 시계를 보고 와서 전화로 알려주었는데, 시계와 전화가 좀 멀다.
시계를 (얼마 전에 보고) 종이에 적어놓은 시간을 알려주었다.
화성의 현재 시각을 알려주었다. (그 사람은 NASA에서 화성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었다.)
몇 시냐고 묻고 5시라고 대답하는 것이 사실은 둘 사이의 암구호다.
그냥 창의력 대장이다, 조금 웃겼다, 라고 반응하고 싶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이런 시나리오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종이에 적힌 시각을 믿는 행위는, 오래된 정보나 의심스러운 정보를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경우에 해당한다.
화장실 낙서를 곧이곧대로 믿고(?) 기사를 쓰는 경우는 물론,
예컨대 앵커 효과, 즉 처음 보는 물건 가격을 경매시작가에서 추정하는 행위도 이런 경우다.
4시 47분인데 4시 50분 내지 5시라고 대답하는 현상, 즉 대강 전하기는 언제나 일어난다.
오차(시계와 전화 사이의 거리) 보정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 역시 흔하다.
화성 시각을 알려주는 경우는 황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양쪽 화자의 맥락이 다른 경우다.
같은 단어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전문용어의 사례는 흔하다.
(저자가 예로 드는 것은, 콜럼버스가 책에서 본 신대륙까지의 거리가 아랍 마일로 쓰여 있었다는 사례다.)
그러나, 이 책은 거짓말에 관한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10분 간 대화하면서 평균적으로 3번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연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다.
이 결과조차 거짓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자는 하룻동안 자신이 거짓말을 몇 번 하는지 적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정확한 계측이 불가능했다.
워낙 자연스럽게, 숨 쉬듯이 거짓말을 하다 보니, 거짓말을 한다는 자각이 없어 기록이 불가능했다.
거짓말이 발생하고 퍼져나가는 이유
1. 노력 장벽. 거짓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그 대가에 비해 크다.
2. 정보 공백. 정보 비슷한 것이 보이면 근거 없이 일단 받아들이고 본다(앵커 효과).
3. 개소리 순환고리. 거짓이 인용되며 널리 퍼지고, 더해지는 현상. 이 책에 줄기차게 나온다.
4. 진실이라 믿고 싶은 마음. 마음의 평화를 원하는 우리들에게 당연하다.
5. 자존심의 덫. 우리는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6. 무관심. 귀찮다.
7. 상상력 부족.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대부분 참이라고 전제할 수밖에 없다.
MECE도 아니고, 잠깐 생각해 보면 다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일단 틀을 잡아 놓고, 게다가 이름까지 붙이니 그럴싸하다.
특히, '개소리 순환고리' 같은 것은 앞으로 수많은 사례를 설명면서 나올 예정이다.
나올 때마다 설명하느니, 이름 하나로 퉁치면 효율적이다.
자, 이제 서론이 끝났으니 거짓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