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톰 필립스, <진실의 흑역사> (2)
가짜 뉴스의 시작
의외로, 인쇄술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사용된 영역은 다름아닌 뉴스였다.
이른바 뉴스레터라는 것이 구독 서비스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무려 16세기 말이다.
다시 말해, 뉴스레터는 인쇄술 보급보다 먼저였고, 당연히 손글씨였다.
그러던 것이 인쇄술로 인해 폭발했다.
당시 뉴스레터는 유명인 근황을 재미없게 나열한 것에 불과했는데, 오늘날의 연예인 가십란 같은 거였다.
그런데 이 산업에도 경쟁이 꽤 치열해서, 경쟁사 편집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싣는 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죽게 된 그 편집인은 그 사실을 반박하려 했지만,
통신 기술이 빈약했던 당시에 그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이 일은 미국에서 벌어졌다.)
한 챕터를 통째로 들여 서술하기에는 다소 따분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짜 뉴스라는 것이 대중매체 그 자체와 동시에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허위 정보의 시대
앞서 말했듯이, 처음 등장한 뉴스레터는 손으로 필사한 것을 우편으로 부쳐주는 서비스였다.
거기에 인쇄술과 교통 발전이 더해지면 대체 무엇이 탄생할까.
대통령이 외계인이라든가 하는 허무맹랑한 뉴스가 실린 황색지라고 하면,
일단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더썬>이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이 고매한 신문은 그 역사가 엄청 길다.
이미 1835년에 달나라 생물학에 대한 연재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달 표면에 사는 다양한 동물들의 생태를, 대형 망원경으로 살펴본 결과를 실은 것이다.
이 대담한 신문은 정보 출처도 적어놓았는데, 저명한 과학저널인 <에든버러 과학 저널>이라고 했다.
이 놀라운 뉴스가 헛소리라는 것을 밝힌 것은 경쟁지(?) <모닝 헤럴드>의 편집인 고든 베넷이었다고 한다.
독자가 혹시 궁금해할까 봐 첨언하자면, 영국 영어에서 ‘이런 망할’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속어 ‘고든 베넷’의 기원은 이 사람이 아니다. ('허위 정보의 시대' 중)
기사를 아주 정확하게 쓰는 일은 매우 어렵다.
무엇이 진실인가, 라는 질문 자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일 자체가 워낙 엄청난 일이라서 그렇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건초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아야 하는데, 건초더미는 태풍에 휘날리고, 건초더미 속에 애초에 바늘이 있긴 있는지 확실치도 않고, 농부는 건초더미 관련 질문은 모두 변호사에게 하라고 하는데, 로이터 기자는 이미 두 시간 전에 와서 바늘 가족의 독점 인터뷰를 따낸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허위 정보의 시대' 중)
그러나 물론, 더썬의 편집인이 달 표면 생물 이야기를 지어내며 그것이 사실이라 믿었을 가능성은 없다.
대개의 헛소리는 진실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저 많이 팔고 싶은 욕심이 만든 거짓이다.
결국, 시간이 약이다.
오늘 신문은 내일의 튀김 포장지일 뿐이라는 옛말이 있다고 한다.
콩 산맥
'킹콩' 할 때의 그 콩(Kong)이다.
이 장엄한 산맥은 아프리카를 동서로 가로질러 남북간 교류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대한 산맥이다.
이런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요즘에는.
그러나 아직 아프리카가 미지의 땅이었던 시대라면 어떨까?
어떤 탐험가는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거대 산맥이 있을 것이라 나름 합리적으로 추측했다.
나일 강 정도 되는 강이 존재하려면, 엄청 높은 산맥에 수원지가 있을 것이라 상상한 것이다.
애로스미스의 지도는 앞서 살펴본 각종 아프리카 지도 제작 기법 중에서도 ‘아 몰라, 가운데는 그냥 비워놔’ 유형의 좋은 예다. ('환상의 땅' 중)
사기꾼과 정치인
다음 챕터는 유명한 사기꾼들에 관한 얘기다.
속이는 것 자체를 즐긴 (경제적 이익에 별 관심이 없었던) 퍼드넌드 디매러라든가,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줄기차게 사기를 친 블라디미르 그로모프 같은 사례는 흥미롭기는 하다.
그러나 사기꾼이 거짓말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 다음 챕터는 정치인에 관한 것이다.
사기꾼은 사기를 치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정치인이라는 단어의 1차적 의미는 분명히 그렇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정치인이라는 단어에 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느낀다.
누구나 마주치는 ‘정직이냐 거짓말이냐’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정치인은 정직을 택했을 때 손해를 볼 만한 요인이 훨씬 많다. ('정치인의 거짓말' 중)
이 챕터를 읽으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아메리칸 인디언이 머릿가죽을 벗긴다는 전설을 만들어 퍼뜨린 것이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사실이다.
이유는?
그들이 영국 정부와 연합하여 미국 건국 세력에 맞섰기 때문이었다.
장사꾼
일단 된다고 우기기’ 자세는 경영 분야에서 용납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업가 정신의 필수 덕목으로 꼭꼭 가르칠 정도다. ('장사꾼의 거짓말' 중)
장사꾼 역시 단어 자체에 그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 단어다.
3대 거짓말 중 하나가 믿지고 파는 장사꾼 아닌가.
(그런데 믿지고 파는 시나리오는 꽤 많이 일어나는 시나리오다. 손익분기점을 언제나 넘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아직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소프트웨어, 개인용 컴퓨터)을 팔겠다고 계약했다.
'여자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던 엘리자베스 홈즈도 같은 행동을 했다.
그러나 빌과 스티브와는 달리, 그녀는 약속했던 물건을 배달하지 못했다.
배를 가라앉혀 간척지를 만들었다는 정주영 회장도,
그 대담한 계획이 실패했다면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 챕터에서 재미있는 내용이라면, 에아나시르라는 3,500년 전 사기꾼에 관한 이야기다.
이 사람에 관련된 서판이 너무 많이 발견되어, 그의 '동괴' 판매 사기가 지금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맺음말
다음 챕터는 '집단 망상'에 관한 것인데, 마녀 사냥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 집단 망상의 전성기 아닐까.
그래서 저자는 이어지는 맺음말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우리가 더 진실해지려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거짓의 광대하고 풍요로운 벌판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뭘 틀렸는지 더 잘 알 수 있고, 올바르게 고쳐나갈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개소리 연구가가 되어야 한다. ('맺는 글' 중)
다음 책, <썰의 흑역사(원제: 음모)> 역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개소리 연구가가 되기 위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