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2)
국가란 국민이다
<변호인>에서 송강호의 일갈을 듣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다.
국가란 국민이란 단순한 사실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게 배우지 않았으니까.
국가의 정의라면, 우선 국제법이 떠오른다.
국가의 3요소는, 영토, 국민, 그리고 주권이다.
국민이 맨앞도 아니다.
생각해 보자.
국제법, 즉 국가간 관계를 정하는 법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는 적어도 주권을 가져야 한다.
단일국가였다면 중동 패권국에 도전할 만한 쿠르드는 그 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아니다.
일제 강점 시대, 우리나라가 국가가 아니었던 이유 역시 단지 주권 때문이었다.
그러나, 법이라든가 정치의 영역이 아닌, 순수한 진실의 영역에서, 국가는 국민이다.
쿠르드족은 지금도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는 국가인 반면,
사우디나 쿠웨이트는 국가 아닌 것을 억지로 묶어 국가라 부르는 집합체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이들을 괴뢰정부로 기록할 것이다.
국가는 국민이다.
후투족과 투치족은 서로 다른 국가를 만드는 편이 낫다.
가장 늦게 신생국으로 태어난 나미비아와 동티모르 역시, 이미 국가였다.
영토와 주권을 빼앗긴 채 고통받으며 독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교과서처럼 쓰여 있다.
대학교에서 '국가론'이란 과목을 가르친다면 훌륭한 교과서 후보다.
이렇게 좋은 책이 단지 정치색 때문에 평점 3점 대를 받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이 책은 미시적으로도 참 좋은 분석들을 많이 담고 있지만,
교과서 답게, 거시적으로 개괄해 보자.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국가주의적 국가관, 즉 국가 그 자체를 본질이라 생각하는 관념이다.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주의적 국가관의 핵심이다.
그동안의 우측 정당들, 그리고 현 국힘이 이 노선이다.
유시민은 "이념형 보수"라 칭하고 있다.
M1소총 분해조립을 정해진 시간에 마치지 못하면 벌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국가는 나더러 자기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노라는 맹세를 아침저녁으로 외치게 했다. (39쪽)
국가와 정부의 구별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대개 국가주의자들인데, 예를 들면 영화 <변호인>의 차동영이 그렇다.
태극기를 흔들며 국가의 존립을 외치지만, 실상은 어떤 특정 인물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권자의 약 1/3은 이 그룹에 속하기 때문에, 이념형 보수 정당은 언제나 안정적인 득표를 기대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국가주의적 국가관은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짐이 곧 국가라고 말한 루이 14세에게 다들 수긍했으니, 국가와 정부가 같은 것이라 믿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두 개의 관념을 분리시킨 것이, 국가주의적 국가론자들의 가장 큰 공이다.
(신기하게도, 동양에서는 이미 맹자가 이 둘을 분리해서 가르치고 있었다. 아니, 서양에서도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구별되던 개념이 중세 이후 혼합되어 버린 것이다. 정교일치가 이 혼합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이란 등 일부 국가에서 재확인되고 있다.)
둘째, 자유주의적 국가관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탄생한 것이 국가라 본다.
로크, 루소, 밀로 대변되는 바로 그 국가관이다.
실상은 어떻든, 현재 세계 대다수의 국가들이 표방하는 국가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범 민주당 계열이 이 노선으로, 유시민은 "시장형 보수"라고 칭하고 있다.
그렇다. 민주당은 보수 정당이다.
이 국가관의 핵심은 국가로부터의 자유, 국가로부터의 보호다.
다시 말해, 국가가 개인에게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 마르크스주의적 국가관은 국가를 지배계급의 도구로 본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으로 척결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나타났 듯,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조국이 있었고, 조국은 혁명보다 소중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효용성이 없는 국가관이며, 이 노선을 따르는 정당은 그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도 중국 공산당도 조국을 사랑한다.
국가의 목적
그러나 국가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앞선 세 가지 관점으로는 부족하다고 유시민은 설명한다.
국가가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 즉 목적론적 국가관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론적 국가관이라면 우선 플라톤과 맹자가 떠오른다.
플라톤은 철학자("철인")가, 맹자는 덕이 있는 자가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결국 하나인데, 이상적 국가 내지 이상 사회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적론은 지성이 아직 제대로 발달하기 전인 어린아이들이 애용하는 사고방식이다. 한때 이런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엄마는 내게 밥을 해주기 위해서, 강아지는 나와 놀아주기 위해서, 냉장고는 시원한 음료를 주기 위해서 있다. 그런데 아빠는 내게 해주는 것이 없다.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111쪽)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의 말미에서,
"이 책이 미래 세대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이 말은 자유론이 나오고 15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현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자유주의적 국가론,
즉 어떻게 하면 국가가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어떻게라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에는 대개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 하는 각론에 이르면, 사람들의 대답은 여전히 분열되어 있다.